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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준비] 10월17일: 지리산 프로젝트 어떻게 시작되었나? 본문

연재/지리산 종주 다큐

[준비] 10월17일: 지리산 프로젝트 어떻게 시작되었나?

gunbbang 2013. 10. 28. 11:41

 

10.17() 지리산 프로젝트 어떻게 시작되었나?

 

131017, 이 날은 영화팀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 날이다.

12월에 있을 학습발표회에서 영화팀은 어떤 영상을 만들어 상영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했다. 어떤 의견이 나오든 받아들일 각오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자기들 할 얘기만 하며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최후의 방도를 쓸 수밖에 없었다.

건호에게 회의를 진행하도록 한 것이다. 건호는 앞에 서서 하나 하나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제법 잘 따라주며 다양한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영화를 찍자는 의견, 다큐멘터리를 찍어보자는 의견, 학교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단재학교 3을 찍어보자는 의견, 각자에게 의미 있는 영화를 골라서 그걸 사람들에게 설명해주자는 의견까지. 막상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수많은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생각하는 게 달랐기에 의견들이 부딪히긴 했지만, 결국 두 가지로 압축되기에 이르렀다.

영화를 찍자는 것과 다큐멘터리를 찍자는 것으로 말이다. 영화는 작년에 찍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큐멘터리에 비해서 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최근에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느냐에 따라 선택이 좌우된다. 생각의 방향성이 결국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뜻인데, 이번 회의를 통해 그와 같은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양평에서 학부모 모임이 있어서 가던 길에 봤던 양수리의 풍경. 보여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작은 어긋남이 천리의 뒤틀어짐을 낳는다

 

10월 초에 영화팀은 부산 영화제에 참석하러 부산에 내려갔다. 이 때 주원이가 선택한 영화는 전주영화제에서 고른 샤히드란 영화에 이어 영화팀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줬다. 그 영화는 바로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다.

대학 영상과에서 영상 관련 지식을 쌓던 4명의 청춘들은 어느 날 갑자기 돈 없이 해외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겐 영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숙박업소를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어주고, 무료로 기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대략 난감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어떤 특정 개인만 그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라면, 그건 상상 속에서만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허황된 생각일지라도 여러 사람이 공감한다면, 그 땐 상황이 달라진다. 어떻게든 현실에서 이루기 위한 방안을 힘을 모아 마련하려 하기 때문이다. 손바닥 한 쪽만 휘둘러선 어떤 리듬도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두 손바닥을 휘두르면 소리를 낼 수 있고 그건 곧 리듬까지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공명할 때 상상은 현실이 된다.

결국 그들은 배짱 좋게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들고 해외로 나간다. 돌아올 미련조차 버리기 위해 학교까지 자퇴하고 떠난 것이다.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뒤를 돌아보지 마라를 현실에서 그대로 녹여낸 대담성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중반까지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갈등이 고조되었고, 돈까지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귀국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릴 정도의 위기 상황이었다. 결국 그들이 내일 돌아가자고 합의한 그 날에, 그들을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고 그런 전화를 계기로 호텔 광고까지 맡게 되며 1년씩이나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된다

 

열정 또한 전염된다. 열정 가득한 사람들이 빚어낸 아름다운 영화.

 

그 영화를 보면서 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젊음의 힘은 불확실하더라도 부딪히고 돌파하려 하는 저력일 텐데, 그 영화는 그걸 영상으로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감명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나 보다, 단재학교 아이들도 영화를 본 후에 뭔가 가슴 뛰는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뒤틀림을 받아들이다

 

학습발표회에 영화를 찍고 상영하는 일은 우리에겐 어찌 보면 편하고도 쉬운 일이다. 영화를 찍는 게 쉽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해본 일이기에 다른 일에 비하면 쉽다는 말이다. 하지만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전해준 열정은 우리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선택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일상을 찍기보다 뭔가 극한의 체험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얘기는 나올 수도 없고, 누군가 이런 얘길 꺼내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을 테지만, 지금은 의미부여가 확실히 되었기에 당연한 말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극한의 체험으로 하기로 합의한 후엔, 어떤 체험을 할 것인가하는 문제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도보여행을 하자는 의견과 지리산 종주를 하자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도보여행을 하면 2번이나 도보여행을 했던 나의 경험을 살려 여행을 하면 되는 것이고, 지리산 종주는 한 번 천왕봉을 등반해본 건호를 의지하며 여행을 하면 된다.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결국 지리산 천왕봉을 등반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천왕봉에서 본 운해와 일출. (출처- 산청문화관광)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깜짝 깜짝 놀란다. 첫 째, 예전엔 서로의 의견을 맞추려 노력하지 않았는데, 이젠 설득도 할 수 있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疏通소통이란 한자는 트일소와 통할통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로, 트여 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예전에 흙장난을 해본 사람은 안다. 흙의 가운데를 움푹 파고 거기에 물을 부으면 물은 멈춰 있을 뿐, 어디로도 흘러가지 못한다. 그 때 한 곳의 흙을 허물면 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터진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트일 때에 비로소 흘러가며, 흘러갈 때 비로소 통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지금 마음을 터서 사람들과 통할 수 있게 되었다.

둘 째, 얼마 전만해도 힘듦을 피하려 했으나, 이젠 맞서려 한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산을 탄다는 것, 그것도 천왕봉까지 가야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이와 같은 자신이 만든 벽들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막상 산을 오르기 전까지 불안과 공포가 느껴질 테지만, 그걸 겪어나가는 것 또한 각자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벽은 벽이지만, 막상 넘어서고 나면 더 이상 벽일 수 없다.

 

 

그래서 우린 가을 속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1111일부터 지리산 산행을 하려고 한다. 물론 그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찍고 편집하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체력도 좋지 않고, 산행에 경험도 거의 없는 우리들이 그와 같은 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하는 과정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11월 첫 주는 등반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 정하여 체력을 기르며, 셋째 주엔 본격적인 천왕봉 등산 일정을 진행하려고 한다.

 

 

체력 다지기 일정

 

1: 남한산성 등반

5: 북한산 등반

7: 관악산 등반

11~17: 지리산 등반 및 다큐멘터리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