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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킹콩을 들다 - 도전 했고 실패했고 또 실패했고 그렇게 성공했다 본문

후기/[후기]관람

킹콩을 들다 - 도전 했고 실패했고 또 실패했고 그렇게 성공했다

gunbbang 2009. 7. 19. 19:49

 

 

어제 영화를 봤다. 전주라디오 ‘행복발전소’라는 프로에서 이 영화의 이름을 듣고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다보니 스포츠 영화에도 별로 관심이 없지만 보고 온 사람들의 평도 꽤 좋고 내용도 괜찮다고 하니 더 보고 싶었던 거다. 솔직히 꽤 슬프다고 하니까 더 끌린 건지도 모르겠다. 요샌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들이 왠지 더 끌린다. 물론 슬픈 영화라는 말만 듣고 갔다가 실망만 하고 돌아온 경우도 꽤 많았지만 말이다.

 

이 영화엔 미덕이 있다. 적당히 웃겨줄 줄도 알고 적당히 가슴 답답하게도 했으니까. 중간부분까진 그냥 저냥 봤다. 재밌긴 했지만 왠지 모를 짜여진듯한 장면이 자주 눈에 띠였으니까. 가난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감싸주려는 선생님이란 소재는 진부했고 별 어려움 없이 역도부가 조직되고 급식 시설이 완비됐으며 심지어는 합숙소까지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진 상황에선 기가 질리고 말았다. 한껏 아이들의 여건을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서 선생님은 전지전능한 그 어떤 실체로 보여 지게 만들었으니까. 이 정도 되면 머지않아 ‘이지봉교’가 등장할 거란 걸 알 수 있다. 더욱이 그들의 상호작용엔 부모의 역할이 빠져 있다. 영자는 고아가 되었으니 합숙을 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하더라도 다른 아이들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딸이 합숙하도록 내버려둘 부모들은 별로 없을 테니까. 학부모들을 배제하였기에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장면을 재현할 필요야 없었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영자를 제외한 아이들도 고아‘처럼’ 보이게 됐다. 바로 이런 비현실적인 모습들이 영화에 몰입하게 되는 데 방해가 되었다. 과연 이 영화를 '좋은 영화'로 기억하게 되긴 할까?

 

그런데 중반 이후부턴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그네들이 첫 시합에서 ‘묵사발’ 당하고 한동안 침울해 있다가 다시 의기투합하게 된 이후부터 말이다. 훈련은 혹독했고 그네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천천히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며 세상에 우뚝 설 준비를 해나갔던 것이다. 바로 그 부분에서 울컥했다. 그들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그 힘듦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내 자신이 떠오르더라. 역시 영화의 감동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할 때 생긴다. 이를 테면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많이 힘들었겠지. 임용을 준비한 지 벌써 4년째다. 벌써 3번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여전히 쳇바퀴 돌 듯 제자리에 멈춰 있는 나. 수없이 머리 속엔 ‘포기’ ‘절망’ 이란 단어가 스친다. 여기서 거꾸러진다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나인데 그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거다. 비인기 종목이란 설움, 혼자와의 싸움이란 외로움. 그걸 극복해 나가며 성장하고 꿈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이 나에겐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포기해선 안 된다’ 금메달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동메달을 딸지라도 그 순간 열심히 한 자신이 대단할 뿐이다. 그런 장면들을 보고 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아니 다잡아야만 했다. 난 그네들보다 여태껏 더 많은 혜택을 누리며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렇기에 그네들에 비해 두 배, 세 배 더 힘내어 달려야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세상엔 어둠이 깔려 있었다. 내 마음 속에 깔려 있던 어둠처럼 칠흙 같은 어둠. 하지만 난 이 영화를 통해 그 어둠에 빛을 밝힐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꾸밈없는 진솔한 열정으로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