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김씨표류기 - 지금 하고 싶은 게 있어~ 본문
도보여행 중 청주에서 진천으로 향하던 길에서 였을 거다.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정재영이 나와 영화를 소개하더라. 좀 어리 숙한 듯했지만 위트 있고 포근하게 말하더라. 그 영화는 <김씨표류기>였다. 곧이어 나온 질문은 왜 하필 ‘김씨’라고 했는지 였다. 수많은 성씨 중에 ‘김씨’를 택한 것이니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가장 흔한 성씨이기에 그렇게 한 거라고 대답하지 않은가. 좀 김이 빠지는 소리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일에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할 까닭도 없고 그런 까닭이 꼭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어떤 의미든 부여하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이 문제인 거겠지. 그 때 그 방송을 들었던 게 하나의 인연이었는데, 저번주에 만난 친구가 이 영화를 추천해주는 거였다. 생각이 남다른 친구여서 그 친구가 추천해주는 영화는 꼭 챙겨본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를 권해주니깐. 그런 두 인연이 겹쳐서 이번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김씨는 자살을 할 생각으로 한강에 뛰어든다. 하지만 운 좋게도(?) 그는 살아난다. 하지만 밤섬에 갇히게 된 것이다. 바로 옆에 63빌딩도 보이고 배들도 지나다니니 나갈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나가려고 힘써 보지만 곧 포기한다. 나가봐야 이미 소용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으려 했던 것인데 무슨 미련이 있을까. 그래서 그 곳에 죽으려 넥타이를 풀러 나무에 묶는다. 거기에 목을 매달면 저 세상으로 가게 될 거다. 하지만 그의 본능적이 욕구들이 한순간에 밀려와 그 행동도 제지당한다. 그리고 그 때 맛본 꽃술의 단맛이 입안에 감돌면서 맘도 바뀐다. 그는 언제든 맘만 먹으면 ‘쉽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을 미루어두고 외딴 섬에서 나홀로 캠핑을 할 준비를 한다.
이 영화는 09년에 상영했던 영화중에 가장 짜릿한 충격을 안겨줬던 영화다. 그 미감이 혹 <지구를 지켜라>처럼 황당하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색채는 어찌나 다양하던지 노란색인 줄 알고 봤는데 어느덧 새빨간 색으로 변하더니 또 초록색으로 변했다. 그만큼 어떤 기분, 어떤 생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맛을 느끼고 다른 색을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첫 감상은 죽음마저도 미루게 한 그 ‘희망’으로 모아졌다. 누구나 일확천금을 희망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지름길, 편법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바보취급하며 한껏 비웃는다. 어떤 게 좋은 삶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김씨’는 자신의 희망을 이루기 위해 눈앞에 불연 듯 다가온 ‘누군가가 이루어 놓은 희망’을 덥석 잡아채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 용기에 박수를 쳤다. 결국 그가 희망을 성취하고 눈물을 흘릴 때 나도 눈물이 흘렀다. 그건 누구나 쉽게 얻는 것이지만 그에겐, 그리고 나에겐 아주 특별했고 아주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그 뿌듯한 성취감이 가슴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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