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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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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후기]강의

수유+너머와 접촉하다

gunbbang 2011. 7. 31. 23:30

물이 흐른다. 그러다 바위를 만난다. 물의 흐름은 막히고 멈춘 듯하다. 서서히 서서히. 흐름이 멈춘 물은 바위를 끼고 옆으로. 조금씩 옆으로. 바위를 감싸 안 듯이. 흐름엔 어떠하리란 기약 같은 건 없다. 부딪히면 부딪힌 대로, 뚫리면 뚫린 대로 흐른다.

드디어 수유+너머에 접촉한다. 바위가 막고 있어 돌고 돌아 여기에 온 것이다. 궁즉통이란 -되기라는 걸, 이렇게 명확히 알려주는 경우가 있을까. 어느 경로건, 어느 상황이건 꼭 오고 싶었던 공간에 온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수유+너머의 첫 인상

 

조금 헤매긴 했다. 이주노동자 공간과 같이 있더라. 건물은 오래되었다. 전북 구도청의 건물의 분위기와 엇비슷한 느낌이다. 이런 저런 단체가 모여 있어 도대체 어디가 수유+너머인지 헛갈리더라. ‘한겨레 교육처럼 들어서면 바로 안내데스크가 보이고 사람들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각 강의실에서 수업만 하고 다른 공간은 잠겨 있거나 이야기를 할 만한 사람도 없더라. 3시간 정도가 남은 상황이기에 그냥 계단에 덥썩 앉았다.

생각과 많은 부분이 달라 첫인상도 별로였지만 낯선 느낌이 그냥 그렇게 발산되는 거라 느껴졌다. 그래도 계단은 시원한 편이니,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지. ‘수유+너머9월엔 또 이사 간다고 한다. 변이를 두려워 하지 않는 능력이 참 대단해 보인다.

글쎄 3층으로 올라오니 익숙한 공간들이 있다. 카페, 세미나실, 식당 등. 서로 인사할만한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잡힌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곳은 카페다. 카페 이름이 뭐였더라. 트랜스?? 뭐 요런 거였던 것 같은데 생각은 나지 않는다. 아무튼 내가 둥지를 삼을 만한 공간을 만난 것 같다. 기쁘다. 나를 최대한 비우고 말랑말랑한 스폰지처럼 다가서 보자.

 

 

 

 

 

글쓰기 공작소, 핵심언어를 바꾸라

 

요약노트에 강의가 끝난 후 서울에서 자야 한다는 것 때문에 완전히 몰입하진 못했으나 충분히 짜임새 있고 변이에 대해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강의라고 썼다. 비록 앞으로 나올 글쓰기 공작소2권의 내용을 다시 말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사유가 담기기까지의 육성과 사고체계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감동받았던 건 다른 게 아니었다. 글쓰기 테크닉을 다루는 것임에도 그 말단의 기술이 몸과 맘의 조화라는 기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논리가 가능하다. ‘글을 잘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너의 신체를 바꾸고 너의 가능성(파묻힌 마음)에 집중하며 세상과 삶에 대하여 고민하라.’ 글쓰기는 신체와 우주의 조응 속에 나오는 천지자연의 울림이다. 그 울림을 절단, 채취할 수 있으려면 자연과의 감응력, 글은 울림을 지닌다. 그걸 이만교쌤은 개구리 언어왕자의 언어로 도식화해서 보여줬다. 당연히 글을 쓴다는 것은 왕자의 언어를 회복하는 것이고 그건 출판언어’, ‘창의적 언어(입말언어문자언어출판언어창의언어로 발전되는데, 최소한 출판언어가 생활화되고 체득되어야만 창의언어로 발전할 수 있음)로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도식화에 백 퍼센트 동조할 순 없지만 고민이나 고뇌 뒤에 좀 더 나간다는 것이므로 이해는 된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자신의 핵심 언어를 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글은 시작된다는 말씀되시겠다.

 

 

 

글쓰기 공작소 - 입말의 부정

 

이만교쌤은 이오덕 선생님의 입말이 입말의 핵심어를 캐취한 말이기에 자신이 이야기하는 개구리 언어로써의 입말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오덕 선생님이 주장한 입말에 대해서는 긍정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수준이 높긴 하되 입말이란 한계를 가지는 것이기에 출판언어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난 동의할 수는 없었다.

출판언어는 표준어로 한정되어 정제된 언어를 말한다. 그건 인간적 개성, 단어의 개성, 사회문화적 개성이 사리진 생명력 없는 언어덩어리일 뿐이다. 그런 언어로 사유하고 말하면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 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는 말장난이 아닐까. 걸러지고 정제된 체계 내에선 절대로 자신의 목소리가 나올 수 없다. 물론 그런 과정을 거쳐 다시 그런 출판언어의 본질마저 놓아버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는 걸 테지만 입말을 그런 식으로 상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깊이와 논리로 무장한 입말도 있다고 생각한다. 질박하고 투박하지만, 그래서 쉽게 다가설 수 있지만 깊이를 지닌 입말도 있다고 생각한다.

 

 

 

 

 

뒷풀이 - 지방은 문제가 많은 곳? 서울은 그렇지 않은 곳?

 

첫 날에 뒷풀이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갈 사람은 남으라고 했지만 우연에 몸을 맡길 생각이었기에 남았다. 뒷풀이에서 용기를 내어 잠 좀 재워 줄 수 있는 분이 있나요?”라고 물어볼 생각이다. 말이 안 된다고 지레짐작 하지 않고 던져볼 것이다. 그 말에 공명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언가 새로운 인연의 장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내 소개를 마치고 말을 던지니 반응이 별로 없었다. 옆에 계신 분은 아직도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 분이 다 있네요.”라고 했고, 이만교쌤은 거기에 전주라잖아라고 덧붙였다. 그 말엔 노골적인 무시가 들어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세상 물정을 몰라라는 말이 담겨 있던 것이다. 말하는 내내 시골(지방)과 서울의 차이를 들먹이며 서울이 우월한 마냥 말하는 부분에선 폭소가 터지는 걸 참았다. 더욱이 집이 전주라던 편집자 형까지 전주 친구들은 주량이 일당백이라는 둥, 전주는 소비도시이기에 서로 먹고 먹히는 짓만 한다는 둥, 시골과 서울의 차이를 인정하는 듯한 말을 하는 데선 기가 막혔다. 최대의 반역자는 자국민이라더니, 서울신화의 선구자는 지방출신들이었던 것이다. 온갖 안 좋은 건 지방에 갖다 붙이고 좋은 건 서울에만 붙여놓은 격이니, 오리엔탈리즘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어제 전주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오며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란 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이 집이고 고향이라고 할 때의 헛헛함에 비할 바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자라지 못한 걸 한으로 여길지언정, 대도시에서 자라지 못한 걸 아쉬워한 적은 없다. 도심의 냉혹함, 경제적 사고, 만인을 적으로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시골의 자연주의, 평온함, 정서적 안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고민은 자연을 보듬어 안고 같이 살아감으로 행복을 누리겠다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 너를 밟고 나만 승승장구하겠다는 마음은 없다.

 

 

 

서울역 근처의 찜질방에서 자기

 

뒷풀이 음식은 최악이었다. 맥주는 오래되었거나 청소를 게을리 했는지 발효된 듯한 꺼림칙한 냄새가 났으며, 두부김치는 조미료 범벅이었고, 통닭은 완전히 탔으니 말이다.

서울 길거리마다 그냥 자는 사람들이 많더라. 이게 한국의 모습이고 서울의 이기이며 가진 자의 횡포다. 이런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좋은 도시라고 말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개구리 언어를 쓰는 사람이 아닐까.

동향의 편집자 형은 한길사에 다닌다고 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물어보니,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냥 사장과의 면접에서 요즘 얘들 책 정말 안 읽어라는 몇 마디 말만 나눴노라고 한다. 뚜렷한 소신도 출판에 대한 마인드도 없어 보였다.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 뽑는 기준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잠자리는 찜질방에 마련했다. 내가 그렇게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자기 갈 길을 가기에 바쁘더라. 만남이 여운을 낳지도 관계에 대한 변화를 낳지도 않았다. 나에게 피해나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조급함을 보았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빈 방 있다고 자고 가라는 아주머니, 그 곳에서 하릴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 나는 어떤 사람이고 가까이에 오면 혹 바퀴벌레라도 본 양 놀랐고 나에게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나의 이런 모습이 도시인들의 모습이며 아까 전 모임에서 보았던 모습이다. 맘을 활짝 열고 투기하지 못하는 마음. 그들에게 난 노숙자이거나 여관아주머니와 같았을 뿐이다.

 

 

 

수유+너머의 소감

 

내가 생각한 것처럼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건 좋았으나, 타인에 대해선 확 열려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그래서 쉽게 다가설 수 없다는 건 아쉬웠다. 하지만 공간에 대해서도, 소유에 대해서도 주장하지 않는 건, ‘쫌생이 도시내기란 잣대로 봤을 땐 확실히 대단한 것이긴 하더라. 이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니, 본격적으로 접촉해봐야지.

글쓰기 강좌는 많은 것을 주었다. 청킹 업&다운을 통한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나, 자신의 언어습관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이 맘에 들었다. 하지만 첫 날엔 자는 문제로, 둘째 날엔 집에 오는 문제로 노심초사하고 있었으니, 나의 뼈저린 한계라고나 할까.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는 게 이다지도 힘든 일이구나. 과연 남은 3일간은 더 전심치지할 수 있으려나. 더 밀착해야 하는 게 숙제라면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