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편집자 입문 - 1. 30년을 해야 진정한 전문가다 본문
합정역 SBI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워낙 지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헤맬 필요가 없었다. 막상 강의실로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더라. 태반이 여성들이었다. 30명 가운데 5명 정도의 남성이 보였을 뿐이다.
강의 시작 전의 떨리는 기분
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왜였을까? 그건 아마도 자꾸 무언가를 새롭게 해야 된다는 압박 같은 게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무언가 잔뜩 떠맡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긴장한 것은 확실히 작년에 ‘수유+너머’를 찾아갔을 때와는 달랐다. 그 땐 그와 같은 어색한 환경을 즐겼으며 무언가 떠맡겨지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왜 이렇게 된 거지? 그새 내가 많은 것들을 지닌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인가?
어쨌든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오는 것을 참고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내 자신에게 ‘부업정도로 생각해서 얼렁뚱땅 하지 말고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작년의 그토록 간절했던 맘을 상기하며 어찌어찌하여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더라.
선완규 선생님에게 들은 편집자 이야기
선완규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깡마른 체격에 키도 작은 편이어서 ‘편집자는 날카롭고 신경질 적일 것이다’라는 관념에 부합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실제 인상은 그렇지 않았다. 생글생글 웃으시며 농을 섞어가며 한 바탕 이야기를 풀어 가셨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 편집자에게 갖고 있던 고정관념은 깨지기에 충분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넋두리 같은 거였고 주제 없는 중언부언 같긴 했으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다.
책이란 Old Media이되 New Media의 근간은 어디까지나 오래된 것에 두기 때문에 가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당연히 삶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듯 모든 대상을 책으로 구성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제의식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출판사에 출판목록이 있듯이 개인에게도 개인의 리스트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개인 자산이라고 했던 것이다.
책이야말로 가장 호흡이 긴 미디어라고도 하셨다. 호흡이 길다는 건, 그런 시각으로 상상하고 삶을 볼 수 있을 때 생긴다는 것이다. 그건 곧 자신의 삶도 긴 시간 속에서 조감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기에 편집자는 단순 기술자나 전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편집자는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세상 밖으로 벗어나려는 일탈자이며 세상의 한 부분을 책이란 매체로 담으려는 금기에 도전하는 돈키호테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란 자신의 분야는 깊게, 다른 분야는 넓게 아는 사람이다
그런 이야기와 함께 와 닿던 이야기는 30년을 해야 진정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10년 이상은 얼치기 전문가다. 자신의 분야에선 뭔가 실마리가 보일진 모르지만 그 외의 분야에선 장님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긴 세월동안 다양한 부분을 갈고 닦으며 한 분야에 깊이를 갖추되 여러 분야를 두루 아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난 바로 그런 전문가로서의 교사가 되고 싶고 편집자가 되고 싶다.
첫 강의는 9시 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오늘은 부담 없이 유쾌할 수 있던 하루였다. 부담감은 안고 허허벌판에서 나의 자리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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