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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학생 한 명과 오붓이 이주일 보내기 - 3. 상현이와의 2주 본문

직장/학교 수업

학생 한 명과 오붓이 이주일 보내기 - 3. 상현이와의 2주

gunbbang 2015. 6. 28. 18:38

목차

 

. 들어가는 글 - 계획은 이상적으로 실천은 현실적으로   (글 보기)

교실에서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최대한 야외로, 상황에 부딪히며, 자기 스텝으로 한 걸음씩

계획은 이상적으로 실천은 현실적으로

 

. 상현이와의 1- 아이들은 누구나 변하고 성장한다   (글 보기)

68() 빠지다

69()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다

610() 프리덤 라이터스

611() 아차산, 용마산

612() 한강 라이딩

한 주 총평 - 아이들은 변하고 성장한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나?

 

. 상현이와의 2- 희망은 품고, 기대는 버리고  

615() - 영화를 본다는 것, 인내를 한다는 것

616() - 수원화성에서 대화의 접점을 찾다

617() - 책을 얻으러 가는 길

618() - 서대문 형무소

619() - 상현이네 집에서 2주의 일정을 마치다

 

. 마치는 글 - 무관심한 관심 속의 믿음   (글 보기)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거든, 기대를 철저히 저버려 이목을 집중시키다

해결책 1 - 아이를 환자로 취급하기

해결책 2 - 무관심한 관심 & 무정한 애정

 


 

. 상현이와의 2- 희망은 품고, 기대는 버리고

 

 

615() - 영화를 본다는 것, 인내를 한다는 것

 

저번 주 월요일에는 상현이의 고질병인 월요병이 도지는 바람에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금요일에 라이딩 후 헤어지며 이번 월요일엔 약속 지킬 것을 다짐받았지만, 상황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 날은 상현이가 어떤 이야기도 없이 원래 약속한 시간인 9시에 맞춰서 왔다. 이렇게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전에는 사자소학을 했고, 오후에는 역사 시간이기에 역사와 관련된 영화인역린을 함께 봤다.

아직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힘이 들고,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지루할 것이다. 그렇기에 잠이 올 수도 있고, 따분하기에 교실에서 나가고 싶기도 할 텐데, 그런 기색은 전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 영화를 봤다.

이런 식으로 할 수만 있다면 영화의 내용을 전혀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2시간여를 한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보려 하는 마음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616() - 수원화성에서 대화의 접점을 찾다

 

수원화성에 가기로 한 날이다. 수원은 상현이 엄마의 고향이어서 여러 번 온 곳이라 친숙하지만 수원의 대표 시설인 화성을 가본적은 없단다. 더욱이 어제 본 영화 또한 정조와 관련된 영화이기에 어제 오늘 뜻하지 않게 조선 후기 역사를 공부하는 셈이다.

분당선이 수원까지 연결되었기 때문에 분당선을 타고 수원에 가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교통편에 관심이 많은 고2 학생 한 명이 잠실에서 버스를 한 번만 타면 바로 수원화성으로 가는데 뭐 하러 힘들게 지하철을 타고 가려 해요?”라는 꿀팁을 줘서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다.

상현이에게 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나를 데려가도록 했다. 잠실역 6번 출구 앞에서 1007번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를 달려 창룡문 앞에서 내리는 코스다. 상현이는 책임감을 가지고 수원화성까지 나를 잘 안내해줬다.

수원화성은 2008년 이후로 처음이다. 상현이는 앞에서 걸어가고 나는 뒤를 쫄래쫄래 따라간다. 밥 먹을 시간이 거의 되었기 때문에 팔달문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돌기로 했다. 그 쪽은 거의 평지여서 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점심으로 팔달문 시장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팔달문까지 오는 길은 평지를 따라 오면 되니 편했다. 팔달시장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하지만 문제는 점심을 먹고 나서 였다. 팔달문에서 서남암문까지 가는 길은 산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오르막길이었기 때문이다. 몸이 무거운 상현이는 조금 올라가더니 바로 쉬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도 아차산에 오르던 악몽이 떠올랐을 법하다. 나는 맘먹은 김에 빨리 올라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상현이를 앞질러 서남암문에 올랐다. 걸터앉아 쉬고 있으니, 잠시 후에 상현이도 올라오더라. 내가 부리나케 올라가는 걸 보고 자극 받아 무리하며 올라온 듯했다.

그런데 그 때 힘들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힘들어요그래서 못해요라는 의미였다. 저번 주에 아차산을 오를 때나, 라이딩을 갔을 때 이런 식으로 일찍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기에 수원화성에선 그런 말을 아예 안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 언제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나는 걸 보니 이젠 수원화성 같은 곳은 쉬운 곳이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화는 났지만, 그렇다고 그걸 다 쏟아 부을 순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릴렉스, 릴렉스,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든 오르막길엔 끝이 있다라는 사실과, 2009년도에 했던 도보여행 이야기(도보여행기 보기)를 해줬다. “차로 가면 편하게 갈 수 있는데, 왜 걸어서 힘들게 국토를 가로지르려 했던 걸까? 그거 누가 봐도 미친 짓인데,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 것일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그랬더니 상현이는 그렇게 끝마치고 나면 자부심이 느껴지잖아요라고 답하더라.

상현이는 대답은 핵심 그 자체였다. 편함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그 편함은 독과 같기 때문이다. 그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자신이 지닌 삶의 열정을 소거시킨다. 편해질수록, 몸을 움직이는 일에서 멀어질수록 사람은 생기를 잃어가고 몸이 아닌 머리로 세상을 이해하려 하니 정신이 온전할리 없다. 그래서 상현이에게 몸을 움직일수록 사람은 더 자유로워지고, 몸이 힘들수록 뿌듯함은 더욱 진하게 남는다고 말해줬다.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말할지라도, 안 하기로 한 것은 안 했는데 이 날은 아니 저번 주부터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려 했다. 그래서 힘내서 해보겠다고 말을 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의 기쁨을 무어라 표현할까. 좀 오버해서 신세계가 열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예전엔 상상도 못하던 일이 이루어진 느낌이랄까.

그곳만 오르고 나니 더 이상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은 없었다. 그래서 곧 서장대에 다다랐고 다시 창룡문까지 가는 데엔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다.

 

 

서장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를 만났다. 복실복실 귀엽더라.

 

창룡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시간안내판을 통해 1007번 버스가 거의 도착했다는 걸을 알았다. 보통 버스 정류장에 내릴 사람이 없더라도 천천히 진입하여 타려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본 후에 떠나는 것을 아는 터라 도로에 버스가 보이나 예의주시하며 상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잠시 한눈 팔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1007번 버스는 멈칫 하는 기색도 없이 그냥 지나가더라. 간발의 차로 버스를 놓친 것도 아닌, 정류장에서 버스를 놓친 경우는 처음이다. 그 상황을 통해 그 정류장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 아니어서, 버스기사님들이 그냥 지나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5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617() - 책을 얻으러 가는 길

 

이 날은 오전에 사자소학을 했고 오후에는 승빈이네 집에 상현이와 함께 갔다. 승빈이네 집 책장을 정리하면서 좀 오래된 책들은 책이 필요한 곳에 보낸다는 것이다. 그러기 전에 단재학교에서 필요한 책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했기에, 상현이와 함께 가서 필요한 책을 고를 요량이었다.

승빈이네 집까지 가는 길도 상현이에게 알려줬고 함께 그곳으로 떠났다. 승빈이네 집에 들어서니 꼭 이사 온 집처럼 휑하고 책들이 한 쪽 벽면에 쌓여 있더라. 그곳에서 필요한 책들을 고르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고르려고 하니, 승빈 맘께서 필요하다고 다 가져갈 순 없고, 20권 정도로 선별해서 가져가시면 되어요라는 것이다. 책도 짐이 될 수 있기에 신중해서 고르라는 말씀이셨기에 상현이와 함께 신중하게 책을 골랐다. 좀 오래된 책일 줄만 알았는데 책은 거의 새 것 같은 느낌이더라.

밖으로 나오려 할 때 한방울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10권씩 책을 묶어 내가 하나를 들고, 상현이에게 하나를 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자연스럽게 자신이 들겠다고 하더라. 이젠 힘든 일인 줄 알지만 척척하고 있다. 보기 좋은 광경이다.

 

 

 

618() - 서대문 형무소

 

오전에는 저번 1주일간의 경험을 기록하게 했다. 아무래도 아직 글을 쓰는 것을 많이 해보지 못했고, 자판을 치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많은 기대를 하진 않았다. 더욱이 23일 동안 다녀온 전주영화제 후기(상현의 전주영화제 후기 보기)도 거의 메모형식으로 적는 것을 본 터라 기대는 내려놓고 간단하게라도 적는 것에 만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느 때처럼 조금 시간이 지나자 선생님 다 썼어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단정리와 오타 정리를 다 한 후에 말하라고 이야기 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그것 또한 다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학교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사진을 업로드하는 법을 알려줬다. 물론 예전 같았으면 내용을 보고 좀 더 보충하고 수정할 것들을 피드백 해줬을 텐데 이 때는 쓴 그대로 인정해주자라는 생각으로 내용도 보지 않았다.

상현이가 글과 사진을 모두 업로드한 후에 글(상현의 1주일 후기보기)을 읽어보니 전주영화제 때와는 엄청난 변화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좀 더 디테일해졌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예전엔 어떤 일에 대한 감상을 물으면 심난해요’, ‘재미없어요라는 식으로만 대답했다. 그만큼 표현하는 법을 잘 몰랐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 후기엔 다양한 표현들이 등장하고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적고 있다. 그만큼 몸으로 부딪히는 과정 속에 자신에게 좀 더 진솔해진 면이 보였다. 무언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자신감이 상승했다는 표현과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후기를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서대문으로 향했다. 오후의 시간인데도 상현이는 기운이 넘친다.

 

오후엔 서대문 형무소를 가자고 하더라. 왜 가고 싶었냐고 물어보니, “우리가 일본에게 당한 역사가 있는 곳이기에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상현이와 천천히 둘러보니 서대문 형무소는 여러 번 찾아와서 자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서대문 후기보기). 그리고 꽤나 넓은 곳이어서 적당히 둘러보면 가자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도, 구석구석 빠뜨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보더라.

 

 

일정을 잘 마치고 집으로 간다. 다시 와도 좋을 곳, 서대문 형무소.  

 

 

 

 

619() - 상현이네 집에서 2주의 일정을 마치다

 

이 날은 원래 오전엔 사자소학을 하고 11시쯤 학교에서 나와 상현이네 집까지 걸어가는 일정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오후 3시에 비가 내린다고 되어 있었는데, 아침에 다시 확인하니 오후 12시부터 비가 온다고 바뀌어 있더라.

그래서 계획을 급하게 바꾸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실내활동 위주로 계획을 짜고 상현이네 집에는 가지 않기로 했더니, “엄마가 선생님 온다고 해서 집 청소 하신다는데....”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집에 온다고 해서 준비했는데, 그러지 않는다고 하니 섭섭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상현이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라고 물어보니 의외의 대답을 하더라. “오전엔 이주차 후기를 쓰고, 오후엔 집에 같이 가서 엄마와 함께 3명이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이다. 이유인즉은,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자기 이야기를 엄마와 선생이 함께 나누는 걸 듣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상현이와 함께 단재학교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구의역까지 걸어간 후에 지하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버스엔 학교가 끝났는지 중학생 아이들이 가득 타있더라. 그런 식으로 버스에 탄 또래를 보면서 상현이는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비가 온다고 했지만, 다행히도 비가 오지 않아 구의역까지 함께 걸어갔다.

 

집에선 어머니와 함께 이주간 상현이가 애쓴 부분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 이야기가 통한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줬다. 오히려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면 충분히 그 책임을 다한다는 사실과, 예전엔 대화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서로의 접점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렸다.

상현이의 방을 구경했다. 햇살이 바로 들어서 그곳에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고, 창문을 통해 바로 보이는 산은 왠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줬다. 앨범을 통해 보는 상현이의 어렸을 때 모습은 과거에 스민 행복, 미래에 스민 기대를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다. 누구에게나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걸 추억으로 묻어둘 것인가, 현재 진행형으로 만들 것인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2주간의 경험을 통해 상현이에게도 그와 같은 힘이 조금이라도 생겼으리라 믿고 싶었다.

누구나 힘든 순간들, 암울했던 시기가 있다. 하지만 그게 결코 인생의 전부일 순 없기에 그 순간들을 버티며, 맞아들이며 앞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이로써 2주간의 기록을 마치고, 다음 편엔 마치는 글을 통해 이번 기록을 정리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