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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학생 한 명과 오붓이 이주일 보내기 - 4. 마치는 글 본문

직장/학교 수업

학생 한 명과 오붓이 이주일 보내기 - 4. 마치는 글

gunbbang 2015. 6. 29. 11:44

목차

 

. 들어가는 글 - 계획은 이상적으로 실천은 현실적으로   (글 보기)

교실에서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최대한 야외로, 상황에 부딪히며, 자기 스텝으로 한 걸음씩

계획은 이상적으로 실천은 현실적으로

 

. 상현이와의 1- 아이들은 누구나 변하고 성장한다   (글 보기)

68() 빠지다

69()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다

610() 프리덤 라이터스

611() 아차산, 용마산

612() 한강 라이딩

한 주 총평 - 아이들은 변하고 성장한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나?

 

. 상현이와의 2- 희망은 품고, 기대는 버리고   (글 보기)

615() - 영화를 본다는 것, 인내를 한다는 것

616() - 수원화성에서 대화의 접점을 찾다

617() - 책을 얻으러 가는 길

618() - 서대문 형무소

619() - 상현이네 집에서 2주의 일정을 마치다

 

. 마치는 글 - 무관심한 관심 속의 믿음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거든, 기대를 철저히 저버려 이목을 집중시키다

해결책 1 - 아이를 환자로 취급하기

해결책 2 - 무관심한 관심 & 무정한 애정

 


 

 

. 마치는 글 - 무관심한 관심 속의 믿음

 

상현이와 2주를 잘 보냈다. 처음엔 우려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잘 마무리되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그 뿌듯함을 정말 애썼고, 잘했다는 말로 상현이에게 맘껏 표현했다.

 

 

2주동안 한걸음씩 충실히 나아갔다. 애쓰고 힘쓴 그대에게 박수를.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거든, 기대를 철저히 저버려 이목을 집중시키다

 

상현이와 2주 동안 함께 만나며, 교육이란 무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시스템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자니 그럴 땐 아이들이 지닌 자발성과 상상력을 제거하는 폐해가 뒤따르고, 개별적인 학생들을 존중하며 함께 하자니 자칫 잘못하면 모든 것을 학생에게 맞춰주게 되는 문제가 뒤따른다. 이래저래 교육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기에, 복잡하기만 하다. 과연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학생을 만나야 하고, 어떻게 그들과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아래의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밌는 아이를 만났다.

초등3학년 남자. 5학년 누나. 도매업을 하는 부모. 엄마가 37살에 낳았다. 중산층 이상의 살림살이.

아이가 3학년에 올라와 학교 수업이 어려워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주장.

부모가 쿨하게 수용하고 한 달째 등교하지 않고 있다.

내게 와서 23일 있다가 조금 전 집으로 귀가. 예정보다 하루 일찍 집에 간 것이다.

3일을 지내보고 알았다.

왜 학교에 등교하지 않으려 하는지를.

누나가 뛰어난 성적과 재주를 보인다. 누나와 26개월 터울. 3 아이가 36개월에 누나는 62개월, 우리 나이로 7살이다. 누나는 당연히 책도 잘 읽고 그림일기도 썼을 터. 영어노래도 외워 부르고, 말도 잘한다. 부모와 어른들의 칭찬을 많이 받는다. 매우 강한 질투를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

올해 들어 초3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출근을 하지 못하고 집에 붙들려 있어야 하는 상황.

아이는 쾌재를 부르고 학교에 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 엄마를 독차지 할 수 있다.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상황에 멘붕에 빠진 엄마는 초3 아들에게 집중할 수밖에. 그것으로 아이는 자기 노력에 성취감을 느끼고 안정적 심리상태가 된다. 하지만 2달이 넘어가면 만족감은 최저치로 떨어지고 더 불안한 상태가 될 것이다. 가장 원하는 엄마와 적대적 관계에 놓인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안타깝다.

이 아이에게 어떤 솔루션이 있을까. 간단하게 풀리진 않는다.                                   -박준규, Facebook 2015528

 

 

이런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다. 보통 자식 사이에 질투심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경우, 동생을 때리거나, 교묘하게 괴롭힌다. 그럴 때 부모는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걸 그 아이는 알기에 반복적으로 괴롭히게 된다. 이처럼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 아이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것을 못한다고 할 때, 주위 사람들이 그만큼 자신을 신경 쓴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이런 경우 어떠한 해결책이 있을까?

 

 

 

해결책 1 - 아이를 환자로 취급하기

 

대부분의 경우 이럴 땐 아이가 마음의 상처가 있다고 생각하여 정신과 상담을 받아봐라’, ‘미술치료를 해봐라라고 주문하는 게 보통이다.

예전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경우, 교사들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세요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땐 정신병원에 간다는 건, 사회생활을 못할 정도로 지능이 낮거나 관계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 자체가 아주 일상화 되어 버렸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집중을 못하거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거나,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하면 쉽사리 상담소를 찾는다. 이런 분위기이기에 교사들도 아무렇지 않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몇 년 사이에 우리사회엔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이 180° 바뀌었다.

아마 위의 사례에 등장하는 아이의 부모님은 아이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치료(?)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준규쌤을 만나러 왔을 것이다.

지금 사회에선 이와 같은 아이에 대한 해결책이 고작 상담밖에는 없다. 흔히 하는 말로 학교에 폭력사건이 벌어지면 그에 대한 솔루션으로 상담교사를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본질적인 해결책보단 늘 지엽적이고 단순한 해결책이 먼저 제시되는 것이다. 사과가 가득 든 박스에서 한 사과가 썩었을 때 그 사과만 제거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사과가 썩었다며 말이 많습니다. 썩은 사과 때문에 나머지 사과까지 문드러질까 걱정들입니다.

썩은 사과만 골라내면 나머지 사과는 괜찮을까요. 잘 닦아서 금딱지 상표 붙여 내놓으면 잘 팔릴까요. 혹 농약에 절어 썩지도 못하고 시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문제는 썩은 사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썩게 만드는 사과 상자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토양이 부실하거나 비료만 줘서 쉬 썩어버릴 만큼 무른 사과가 된 것인지도. 사과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쯤 사라질까요. -민들레79, 표지이야기

 

 

무언가 원인 하나를 골라내고 솎아내면 되는 것이 아님에도 위의 글처럼 단순히 그렇게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상담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이에게 나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내면화시킬 위험성도 있다.

썰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욱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만 같다. 과연 해결책은 있는 것일까?

 

 

  뭐든 쉬운 해결은 오히려 일을 꼬이게 하게 마련이다. 속성보단 지성일지라도 제대로 된 해결책이 필요하다.

 

 

 

해결책 2 - 무관심한 관심 & 무정한 애정

 

위 글에 대한 댓글로 준규쌤은 이 아이는 어쩜 간단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집에 두고 출근하면 돼요. 그럼 학교에 갈 겁니다. 엄마가 어쩔 줄 몰라서 쩔쩔 매니 아이는 I got it!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못하는 건 아이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를 믿지 못해서 일상의 서포트를 한다는 아이러니를 만듭니다. 간단하지 않다고 표현한 것은 이런 아이의 현상을 가져온 사회적 배경이 복잡하다는 얘기였습니다.”라고 달았다.

위의 댓글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기저에는 아이는 스스로 할 것이다라고 믿어야 하고, 그럴 때 부모의 행동방식은 무관심한 관심’, ‘무정한 애정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삐뚤어진 상황에서, 무기력에 빠진 상황에서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한 것이기에 그런 때에 오히려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주문하는 것은 당연히 가혹하다. 하지만 정작 자식이 제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해야만 하고, 믿어야만 한다.

 

 

[야쿠자의 가정교육], 이 상황극은 교육의 복잡미묘함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2주간 활동의 핵심도 거기에 있었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고, 더딜지라도 어찌되었든 하루하루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거라 믿은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부모든 교사든 전면에 나서 이끌려 하기보다 당연히 뒤로 빠져 그 아이가 자발성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 교사의 포지션이 달라지겠지만, 무언가 할 의지가 생긴 학생에게 교사는 반걸음 앞서서 가면 되고 그런 의지조차 없는 학생에게 교사는 한걸음 뒤에서 따라가면 된다. 그와 같은 자세로 2주 동안 만나보니, 상현이가 몰라보게 듬직해졌고 나에게 먼저 어떤 일을 제안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모든 아이들은 충분히 성장할 수 있고,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어른의 기준으로아이를 규정짓고 기대에 못 미친다고 실망하기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그 상황에 만족하고 응원하면 된다. 어려운 일이고, 지난한 일이며, 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