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학생 한 명과 오붓이 이주일 보내기 - 1. 들어가는 글 본문
목차
Ⅰ. 들어가는 글 - 계획은 이상적으로 실천은 현실적으로
교실에서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최대한 야외로, 상황에 부딪히며, 자기 스텝으로 한 걸음씩
계획은 이상적으로 실천은 현실적으로
Ⅱ. 상현이와의 1주 - 아이들은 누구나 변하고 성장한다 (글 보기)
6월 8일(월) 빠지다
6월 9일(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다
6월 10일(수) 프리덤 라이터스
6월 11일(목) 아차산, 용마산
6월 12일(금) 한강 라이딩
한 주 총평 - 아이들은 변하고 성장한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나?
Ⅲ. 상현이와의 2주 - 희망은 품고, 기대는 버리고 (글 보기)
6월 15일(월) - 영화를 본다는 것, 인내를 한다는 것
6월 16일(화) - 수원화성에서 대화의 접점을 찾다
6월 17일(수) - 책을 얻으러 가는 길
6월 18일(목) - 서대문 형무소
6월 19일(금) - 상현이네 집에서 2주의 일정을 마치다
Ⅳ. 마치는 글 - 무관심한 관심 속의 믿음 (글 보기)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거든, 기대를 철저히 저버려 이목을 집중시키다
해결책 1 - 아이를 환자로 취급하기
해결책 2 - 무관심한 관심 & 무정한 애정
Ⅰ. 들어가는 글 - 계획은 이상적으로 실천은 현실적으로
단재학교는 카자흐스탄(이하 카작)에 있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학교와 MOU를 맺어 4년에 걸쳐 문화교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매년마다 번갈아 학생들이 각 나라를 오가며 역사를 배우고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있다. 2012년(해당 글 보기)과 2014년(해당 글 보기)엔 카작학생들이 한국에 왔고, 2013년(해당 글 보기)과 올해(해당 글 보기)엔 단재학생들이 카작에 간다.
이 때문에 단재학생의 대부분이 카작에 가게 되면서 부득이 하게 다른 수업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고등학생들이야 원래 하던 개인 프로젝트가 있으니 그걸 꾸준히 하면 되지만, 상현이는 개인프로젝트를 하고 있지 않아 할 게 없다. 그래서 나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단재학교-나자르바예프 대통령 학교 문화교류 활동 사진.
교실에서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기본에 뒀던 생각은 ‘배움은 교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모토를 ‘최대한 야외로, 상황에 부딪히며, 자기 스텝으로 한 걸음씩’으로 정했다.
흔히 ‘배움은 교실에서’라고 생각할 텐데, 왜 그것에 대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글을 먼저 보기로 하자.
한기호 선생님 말씀(해당 글 보기)에 백번 공감한다.
문제는 엄마 혁명이 “나와 내 아이를 위해”라고 했을 때 설득력이다.
자기 자신과 내 아이를 위해 엄마 혁명의 깃발을 들고 학교를 떠나도록 결심할만한 엄마가 일정 비율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엄마들은 “나와 내 아이를 위해” 아이가 학교를 떠날 필요가 없다. 겉으로는 엄마의 아이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학교를 떠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래 글에서 말하는 97명 아이들의 엄마들은 “나와 내 아이를 위해” 혁명을 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른다.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다. 세월호 유족들이 내 아이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대부분 광화문에서 풍찬노숙을 하지 않았을 것이란 추정과 맥을 같이 한다.
좌우간 학교는 버려야 한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엄마혁명이 그리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고, 교사혁명은 더욱 어렵다. 자기 밥벌이를 스스로 걷어차는 일이 혁명이라면 그 혁명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고민의 결과는 이런 것이다.
“일단 학교가 아닌 곳에서 더 훌륭한 교육적 성과가 보이도록 하자”
하지만 자꾸 상상노동을 하며 이랬다저랬다 흔들리는 중이다. 흔들림이 일상의 가장 큰 괴로움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는 위로가 내게 들어오지 않는다.
-박준규, Facebook 2015년 4월 18일
이 글은 예전 단재학교 대표교사였던 준규쌤의 페이스북 글이다. 여러모로 대안교육판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여러 화두를 많이 던져주셨다. ‘청소년 시기엔 잘 노는 게 중요해요’라던지, ‘배움에 치중하면 자기표현을 잃는다. 배우지 말라는 것은 무식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표현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공부”란 모두 남의 말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던지, ‘지식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및 집단의 행위에 대한 사후 설명의 성격이다’라는 말들 말이다. 얼핏 들으면 아리송하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파괴력을 제공한다.
이런 화두를 제공해주시는 선생님답게 위의 글도 꽤나 파격적이다. 그 중 단연 최고는 ‘학교는 버려야 한다’는 선언이다. 이런 선언이 나오기까지 한기호 선생님의 말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지금의 학교는 3%의 학생들을 위해 97%를 희생시키는 구조라는 설명이 그것이다. 어느 학교 할 것 없이 엘리트주의가 당연시 되고 우등반을 만들어 차별적인 특별대우를 해주더라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누구나 학교에 다니면서 ‘엘리트주의’를 이런 식으로 묵인하도록, 오히려 문제제기를 하면 ‘공부도 못하는 게 불만만 가득하다’는 말을 듣도록 잠재적으로 교육받아 왔다([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서평 보기). 그렇기 때문에 한기호 선생님은 97%를 위한 학교로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 교육이 더 이상 희망을 주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닌, 현실의 욕구만을 당연시 하는 기득권 유지의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준규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미 학교는 그런 식으로 97%를 위한 학교로 체질을 개선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근대 학교의 출발이 국민을 양성하고 산업인력을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듯, 이미 시작부터 잘못 되었기에 학교라는 틀을 유지하면 체질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으며, ‘일단 학교가 아닌 곳에서 더 훌륭한 교육적 성과가 보이도록 하자’라고 제안한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준규쌤의 글을 보고 내가 해석한 것이기에 전체적인 맥락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교실의 한계’를 지적한 측면에서는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교실의 한계’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교실이 아닌 모든 곳에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반 일리치의 문제 의식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을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 하는데 말이다.
최대한 야외로, 상황에 부딪히며, 자기 스텝으로 한 걸음씩
그와 같은 생각으로 상현이와 함께 만든 시간표는 아래와 같다.
|
월 |
화 |
수 |
목 |
금 |
오 전 |
사자소학 |
야외활동 09일: 롯데월드 (자이로스윙, 자이로드롭, 아틀란티스, 바이킹 택 2) 16일: 수원화성 탐방 |
사자소학 |
야외활동 11일: 국립중앙박물관 18일: 아차산, 용마산 산행 |
야외활동 12일: 여의도 방향 자전거 라이딩 19일: 사자소학 & 집까지 트래킹 |
오 후 |
역사활동 08일: 한성백제박물관 15일: 서대문 형무소 |
영화활동 10일: 킹스맨 17일: 프리덤 라이터스 |
『사자소학』과 영화를 보고 후기를 쓰는 활동 외에는 모두 외부활동으로 잡았다.
『사자소학』은 성독聲讀(소리 내어 반복적으로 읽음)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리 내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어냄과 동시에, 배운 내용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익힘으로 기억력을 증진하는 것이다. 영화 관람은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자세를 바로잡고 최대한 집중하며 봐야 하며 그걸 후기로 쓸 때 영상을 문자로 묘사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이런 시간은 너무 외부활동만 하면 힘이 빠질 것이기에 좀 쉬자는 의미와 함께 바깥에선 할 수 없는 것들을 보충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
그 다음엔 모두 외부활동으로 정했다. 여기서 첫 번째 원칙은 ‘모든 출발지는 학교로 한다’는 점이다. 아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용법을 알려주고 상현이가 찾아가는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기 때문에 더디더라도 스스로 방법을 찾을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걸 굳이 원칙으로 정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일이든 힘들면 그만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된 사람에겐 그와 같은 원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하나의 일을 시작을 해서 마무리까지 지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교사는 관찰자 역할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늦는다고 보채거나, 옆에서 힘을 복돋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지켜보고 극한 상황에서만 단서를 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결국 학생이 지닌 자발적인 힘을 믿고 교사는 최대한 뒤로 빠져 있는 것이다.
계획은 이상적으로 실천은 현실적으로
준규쌤이 던져준 화두를 붙잡고 고민한 끝에 위와 같은 계획과 원칙을 세웠다. 여전히 완벽하게 학생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기보다 앞에서 끌어주려는 모습이 보이고, 못 미더워 하는 마음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서히 학생의 자발성과 적극성을 믿(게 되)고 존재 대 존재의 만남으로 가능성을 열(게 되)리라 믿는다.
어디까지나 이런 계획은 대단히 이상적이다. 과연 현실에서 실천할 땐 어떤 문제가 생길지, 스스로 생각한 것에 어느 정도 미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문제는 과연 얼마나 이상적인 것을 현실 속에서 잘 우려내느냐에 달려 있다. 과연 상현이와의 2주는 어땠을까?
▲ 다음 편은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활동을 했는지, 사진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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