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건빵의 2016년 정리기 - 3. 착각이 만든 인생, 착각이 만들 인생 본문
3. 착각이 만든 인생, 착각이 만들 인생
2015년에 흥행했던 『킹스맨』이란 영화에서 명대사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Manners make the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이란 대사를 꼽을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고 이 대사만 읽어보면 언뜻 ‘매너의 품격’ 같이 매너를 다룬 영화인 줄 착각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저 흔하디흔한 치고 박고 때려 부수는 할리우드식 액션영화일 뿐이다. 멀쑥하게 슈트를 차려 입은 중년 남성이 위와 같은 대사를 날린 후 자신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들을 첨단 무기와 날렵한 싸움기술로 혼꾸멍을 내주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무서운 말이 결코 아니지만, 이 장면에선 되게 의미심장하고 무섭게 들린다.
사람을 만드는 무엇에 대하여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문장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당신이라면 ‘□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문장에서 □에 어떤 말을 채워 넣을까? 당연히 이런 식의 질문에 정답이란 없으니, 각자가 생각한 대로 빈칸을 채워 넣으면 된다. 바로 그 □는 자신이 최근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이라 할 수 있다.
나처럼 학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번에 □에 ‘교육’을 채워 넣을 것이다. 교육의 최전선에 서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인 셈이다. 물론 ‘교육만능주의’처럼 교육만 받으면 완벽하게 사람이 바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 사람이 변하기까진 한 교사의 능력이 아닌, 수많은 교사들의 능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그뿐만 아니라 학생도 적극적으로 변하려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치다쌤은 아예 ‘교사단敎師團(교사는 혼자가 아닌 집단으로서만 존재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충분히 공감되는 얘기다.
이렇게 이상적인 단어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단어를 채우라고 하면, 아무래도 ‘능력’이나 ‘돈’과 같은 단어들이 채워질 것이다. 그만큼 사람에게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것들도 없기 때문이다.
▲ 사람에 따라 빈칸에 들어갈 말은 다양할 것이다. 그때 어떤 단어를 쓰느냐가 자신의 역량이자 크기라 할 수 있다.
신나게 글쓰기 위해 지구에 왔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에 무얼 채워 넣을 것인가? 겨우 이 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나 힘들게 돌고 돌아왔다. 언젠가 무슨 TV프로에서 “당신은 왜 지구에 왔습니까?”라는 질문을 박진영에게 던지자, 그는 조금도 뜸을 들이지 않고 “나는 지구에 춤추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질문은 난데없고, 황당하며, 포괄적이어서 누구든 듣는 순간, 얼음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다 설령 입을 떼게 될지라도 중언부언하며 장광설을 펼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박진영은 그 질문에 아주 간단명료하게,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치가 적절하게 드러나는 대답을 한 것이니,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처럼 누군가 나에게 박진영에게 던진 질문을 던진다면, 나도 단번에 “신나게 글쓰기 위해 지구에 왔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글쓰기를 통해 나는 조금 더 사람다워졌고, 조금 더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며, 사회를 조금 더 알게 됐기 때문이다.
▲ 춤추러 왔다는 박진영의 대답은 충격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단순명료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보통 글을 쓴다는 건 대단한 일처럼 여겨지곤 한다. 일류의 역사에서 글자라는 것은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었기에, 글을 안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으며, 더욱이 자유자재로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이런 풍조는 2000년대에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와 같은 글쓰기 플랫폼이 들어서면서 바뀌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장문의 글을 쓴다는 건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이러하다 보니, 글을 쓴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계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된 계기들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멋들어지지 않다. 그저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09년에 한 달 동안 걸었던 여행의 경우 친구의 “야~ 하고 싶으면 그냥 한 번 해봐”라는 말이 방아쇠가 되어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임용에 합격한 후에 해야지’라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는데, 그 한 마디는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무작정 길로 나서게 만들었다. 이런 예들은 영화나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이방인』이란 소설에선 이방인을 총으로 죽인 이유에 대해 ‘햇살이 뜨거워서’라고 재판정에서 말하며, 『홍권의군』이란 영화에선 학교에 지각한 이유에 대해 “햇빛이 너무 좋아서 햇볕을 쬐다가 학교 오는 걸 까먹었어요”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이렇듯 별일 아닌 소소한 것들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서게 하고,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을 하게 만든다. 계획은 늘 어그러지고,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 인생은 완벽한 통제 하에 예측한 대로, 생각한 대로 흘러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야말로 이미 모든 일이 끝난 후에 하나의 줄거리로 짜 맞춰진 것에 불과하다.
▲ 학습발표회 때 [홍권의군]에 대해 발표하는 승빈이의 모습. 어떤 일들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일어난다.
착각하라. 두 번 하라
그처럼 처음에 글을 쓰게 된 계기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리고 그런 계기로 인해 지금까지도 글을 쓰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창조경제’ 버금가는 ‘창조인생’이라 할만하다.
때는 바야흐로 피는 끓어올라 주체할 수 없지만, 학교라는 공간에 갇혀 지내야만 했던 고딩 시절. 일기나 끼적끼적 써오던 나는 갑작스레 ‘나는 글을 잘 쓴다’는 밑도 끝도 모를 창조적인 착각에 빠지기에 이른다. 황당한 것은 그 착각을 뒷받침 해줄 만한 근거나 상황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 고등학생 시절을 생각하면 답답한 느낌이지만, 적어도 아주 제대로 착각한 덕에 지금은 그 덕을 보고 있다.
그런 착각은 스쳐지나가는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다행히도 행동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여러 책을 무작정 읽기 시작했고, 그 글에서 받은 영감을 생각으로 정리하며 써나가기 시작했다. 병아리가 그저 삐약거리 듯, 깊이도 논리도 없이 그저 써 내려갔다. ‘습관이란 무섭죠♬’라는 노래의 가사를 ‘착각이란 무섭죠’라고 바꿔도 될 만큼, 적어도 그 순간엔 무언가에 한껏 격앙되어 있었다. 흥겨우니까 쓰고, 뭔가 풀리지 않으니까 쓰고, 남겨야 하니까 쓰고, 말로 할 수 없으니까 쓰고, 뭔가 웅성거림이 있으니까 썼다. 아무도 나에게 ‘글을 잘 쓴다’고 말해준 적도 없었고, 여러 글쓰기 대회에서 시원하게 미끄러질 뿐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쓸 수 있었다.
그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얘기가 될 테지만, 그와 같은 착각으로 지금까지 글을 써왔고, 앞으로 글을 써갈 것이니, ‘착각이 나를 글 쓰게 만들었다’는 말은 아주 정확한 말이라 할 수 있다.
▲ 착각엔 근거가 필요없다. 그걸 믿고 나갈 수만 있고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말이다.
2016년엔 신나게 써 재꼈다
여기에 덧붙여 2016년엔 여느 때에 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글을 썼다. 예전 같으면 쓰지 않았을 학교 여행이나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된 트래킹 여행에 대해서도 썼으며, 강의를 들은 것도 빠짐없이 남기려고 노력했다.
▲ 학교의 일상을 담기 시작했다는 점이 16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엔 무언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이후부턴 나만 보기 위한 글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줘야 하는 글을 써야 하니, 부담감이 커졌던 게 사실이다. 그건 글을 잘 써야 하고, 뭔가 있어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기도 했다. 여태까진 내가 보고 만족할 수 있는 글이면 됐지만, 이때부턴 다른 사람들이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글이어야 했다. 물론 힘겹게 글을 써서 학교 카페에 올릴 때면 사람들은 “글 잘 쓰네요. 잘 봤어요”라고 말해줬다. 당연히 그러면 기분도 좋아지고 뭔가 이제야 인정을 받는 것 같아 어깨가 한껏 올라가곤 했지만, 그런 만큼 부담은 더욱 커져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턴 아예 글을 쓰지 못하겠더라. ‘잘 써야 하는데 막상 쓰려니 아무 것도 안 써져’라는 갈등 때문에 쓰지 못했고, 학교에서 일어난 일인 경우 ‘이렇게 자질구레한 일을 써도 되나’하는 자기검열 때문에 쓰지 못했으며, 강의 후기의 경우 ‘잘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내 식대로 쓰면 오히려 민폐 아니냐’라는 자책으로 쓰지 못했다. 그렇게 2011년부터 2015년 1학기까지 거의 4년 동안 거의 글을 못하고 보내게 됐다. 그러니 4년의 시간은 사진이나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안개가 짙게 낀 거리를 바라보듯 아련하고 희미하게 남아있다.
이런 상황이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도보여행과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도보여행은 하는 내내 여행기를 썼고, 다녀와서는 바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러니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다시 도보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현장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4년의 일들은 훨씬 최근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더욱 과거처럼 흐릿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작년엔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려 노력했었던 것 같다.
▲ 4년의 시간은 여백처럼 비어 있다.
착각이 만든 인생을 누리다
착각했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됐고,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나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올해 그런 흐름을 그대로 이어받아 지나는 모든 것, 경험하는 모든 것, 배우는 모든 것을 되도록 담아보려 한다.
작년에 쓰던 글 중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글이 무려 세 편이나 된다. 보통 한 번 시작하면 꼭 끝을 보고나서야 다른 것을 하는 성격 때문에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작년 같은 경우는 확실히 능력에 비해 욕심이 너무 과했다. 우치다쌤의 ‘공생의 필살기’는 이미 2015년 10월에 썼던 후기지만,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후기처럼 내용을 보강하고 새롭게 편집하기 위해 지금은 블로그에서 글을 내려놓은 상황이며, 2007년에 떠났던 ‘대학생 실학순례’는 3박 4일의 일정 중 겨우 첫째 날 여행기만을 쓰다가 잠시 멈춘 상황이며, 작년 2학기에 들었던 동섭쌤의 ‘아마추어 사회학’은 총 네 번의 강의 중 첫 번째 강의 후기만을 마친 상황이다. 그리고 2년 전에 쓰다가 멈춘 연암에 대한 글까지 있으니, 흐름이 끊긴 글들을 다시 쓰며 올 한해의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쓰고 싶은 글도 많고 써야 할 글도 많으니, 참으로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20년 전에 했던 착각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2017년엔 자뻑이라고 해도 좋으니, 좀 더 자신에게 긍정적인 착각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혹시 아는가? 20년 후엔 정말 그런 자신이 되어 있을지 말이다.
▲ 지는 해인가, 뜨는 해인가. 결국 끝은 시작으로 이어지고, 시작은 끝을 향해 간다. 그러니 지금 시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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