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왓치맨 - 넋두리 듣느라 지쳐 쓰러져~ 본문
난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사람을 알 수 있으니깐.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성향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럼에도 얘기하기 싫은 사람도 있다. 그 첫 번째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차서 자기 얘기 외엔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하고 얘기할 땐 꼭 벽하고 얘기하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두 번째는 타인의 반응은 보지 않고 얘기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진 몰라도 좀 상대방이 얘기를 듣고 싶어하나 그렇지 않나를 봐가면서 얘기해야지 않나. 그런데도 무작정 붙잡아놓고 언제 끝날지 모를 썰을 푼다. 세 번째는 상대가 얘기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자기 얘기만 주구장창 하는 사람이다. 이건 대화라기보다 강요나 소음공해라고 하는 표현이 맞겠다. 그리고 마지막은 정말 최악의 사람인데, 그런 사람과 얘기하라면 누구 할 것 없이 손사래를 치며 거부할 것이다.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 세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진 사람일테니까. 그런 사람과 얘기하라면 그건 고문이지 대화일 수 없다. 그런데 왜 뜬금 없이 대화에 관해 이야기 하는 거냐고? 여긴 영화를 이야기하는 곳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대화에 관한 얘기만 하고 있으니, 그런 의문이 들 법도 하다.
그렇다. 난 이 영화를 위에서 말한 세 가지 특성을 다 가진 영화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쯤 말하면 감이 올 거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평이 어떠리라는 걸.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관객과 대화를 하려 하는데, 바로 위에서 말한 세 가지 특성으로 대화를 하려는 것이다. 첫 째, 자기 확신에 차 있다. 히어로들도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일 뿐이며 대의를 따르긴 하지만 자신의 욕망도 중요시 하는 사람이라고. 거기까진 좋았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히어로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한 거니깐. 하지만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어로라는 사실을. 그걸 고집스럽게 완성 시키려 하기에 억지춘양식이 되어 버렸다. 둘 째 관객들의 반응엔 상관 없이 자기 얘기만 하려 한다. 아무 감정이입도 되지 않았다. 내용에 대해 흥미도 없었고 너무 잔인한 장면들에 오히려 빨리 나가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고집스럽게 이야기를 지지부진 끌고 간다. 끝날 듯하면서 계속 이어지는 그 잔인함이란. 너무 자세히 부연설명을 하려는 감독의 스타일에 질려 버렸다. 오히려 적당히 끝내면 여백의 미, 생각할 수 있는 여유라도 있었을 터인데. 감독은 말로 후임병을 줄기차게 갈궈 그 의욕마저 없애는 선임병 같은 느낌이었다. 셋 째, 나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주장한다. 결국 세상이 평화롭게 된다. 그 방법이 어찌나 엽기적인지. 안 본 사람들을 위해 자세한 건 얘기하지 않겠지만, 더블오(건담 만화)에서 솔레스탈빙이란 공동 적이 생김으로 세계가 하나의 단일 군대를 결성했다는 황당함에 버금간다. 공통의 적이 있을 땐 뭉친다. 하지만 그건 한시적인 평화일 뿐이며 평화를 가장한 폭풍 전야일 뿐이다. 정말 감독은 그렇게 된다면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믿고 있었던 것일까? 그게 너무 궁금해 진다.
이 영화 보기 전까진 참 좋았는데, 보고 나오니 얘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하고 어쩔 수 없이 얘기한 것 같은 머리의 지끈거림과 구토증상이 일어났다.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을 때 느낌이 이럴 진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아직 나의 대화 기술이 별로 이던지, 이 영화가 별로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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