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전쟁기념관 & 오두산 전망대 & 헤이리(12.06.26) 본문
1. 활동 안내
① 활동 안내
오전 10:00 삼각지역 12번 출구 집합, 전쟁기념관 관람
오후 11:30 점심 식사
12:30 서울역 앞에서 버스(9709번) 타고 출발
14:00 오두산 전망대 도착
15:00 서울행 버스 타고 GO~ Home!
② 활동비용
총 2.000원 준비
1. T머니 지참할 것.
2. 카메라, 도시락 가져올 것(밥까지 함께)
2. 활동 사진
추진 배경
영화팀을 4월 16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이제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했다. 그 기간 동안 전주국제영화제에도 다녀오고, 광주민주화항쟁 전야제에도 다녀왔다. 그렇게 하나하나 함께 하며 같은 팀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영화팀의 모토는 ‘최대한 외부활동을 많이 하자’이기에 6월에는 남양주 종합 촬영소 방문과 6.25를 새롭게 보기 위한 활동을 계획했던 것이다.
그래서 6.25 관련 영화인 『웰컴 투 동막골』, 『작은연못』을 봤고, 외부활동으로는 전쟁기념관과 오두산 전망대를 다녀오기로 했다.
▲ 전쟁을 기념할 순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일 뿐이니 말이다.
전쟁기념관
지금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아이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이 날만큼은 준규쌤이 자동차를 가지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런데 솔직히 그 제안이 반갑다기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서울에서 운전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였기도 했고, 아이들과 다니는 거라 자칫 사고라도 나면 복잡해질 수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고민을 좀 했는데 아무래도 전망대에 편하게 가기 위해서는 운전을 하는 게 낫기에 그걸 선택했다.
아무래도 내비게이션 보는 것이 서툴다 보니 여러 번 길을 놓쳤다. 강북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지 못했다는 것과 전쟁기념관에 들어가는 길을 헤매기도 했다. 어쨌든 사고 없이 들어와서 정말 다행이다.
전쟁기념관은 이번이 첫 방문이지만, 이곳은 서울의 금싸라기 땅이다. 용산 미군기지내에 전쟁기념관을 만들고, 그 곁엔 국방부도 있다. 이곳이야말로 한국군의 전략 중심지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곳에 ‘전쟁기념관’이 만들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네이밍이 좀 걸린다. ‘전쟁을 기념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호전적 민족’이라는 사실을 자랑한다는 뜻일까? 한민족을 표현하는 주된 말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백의민족’이라는 것이었는데, 이곳의 스토리텔링은 여태껏 들어왔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상반된 거였다.
전쟁기념관의 인상은 다양한 전쟁 사례를 발굴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해놨다는 거였고, 2층엔 다양한 무기와 전투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넓은 곳에 가득 채워진 무기들은 한 편으론 우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한 편으론 누군가를 살상하고 위협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는 거였다. 지금은 남북한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이라 드넓은 공간에 이 정도로 ‘전쟁을 기념’ 스토리텔링을 할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 정말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온다면 ‘옆에 강대국이 있다는 핑계’로 이를 지속하지 말고 ‘평화를 기원하는 장소’로 스토리텔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다양한 전쟁 관련 전시물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전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오두산 전망대
군대 생활을 월정리 전망대에서 했기 때문에 전망대에 대한 어떠한 기대치가 있는 건 아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휴전선 너머라는 곳도 어찌 보면 그냥 우리가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한적한 시골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니 말이다. 시야에는 잡히지만, 그곳에서 내리지 않는 이상 손에는 잡히지 않는 곳, 그곳이 바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한의 모습이다.
▲ 전망대에 새해 설맞이 사단장이 온다고 한 달 가까이 청소만 하던 때도 있었다.
월정리 전망대엔 휴전선이 드리워져 있다. 철원평야를 중심으로 휴전선이 보이고 그 옆으로 남북한군의 GP 초소가 그리고 다시 철조망, 그리고 평야 지대의 기습 침투를 막기 위한 방벽, 그리고 우리가 근무를 서는 GOP초소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강만 건너면 바로 북한 땅이고 그곳엔 우리네 과거의 모습이 선명히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렇게 극명하게 나누어진 선악 관념에 대해, 그리고 어떤 부분들을 극도로 적대시해야 하는 그 무엇에 대해 말이다.
▲ 남북의 대치를 가장 극단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자, 어찌 보면 통일을 극명하게 꿈꿀 수 있는 곳.
헤이리 예술마을
차를 타고 왔다는 건 맘만 먹으면 주위에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첫 운전이라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그래도 차를 타고 온 혜택을 만끽할 필요가 있어서 파주에 온 김에, 가고 싶었던 헤이리 마을에 가기로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갑작스럽게 정하게 된 계획이다. 여기에 아이들도 그렇게 싫어하진 않더라.
하지만 이곳에선 어떤 ‘불꽃 튀는 마주침’을 경험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가? 그저 마을 주변을 어떤 기약도 없이 둘러보기만 했으니 말이다. 마주침은 어찌 보면 민폐인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끼어들어갈 때에야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외부만 훑어서는, 주변만을 기웃거려서는 서로의 경계선만 확인할 뿐이고,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는 현실만을 직시하게 될 뿐이다.
▲ 헤이리는 별 생각 없이 찾은 곳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느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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