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16.03.01 상암월드컵경기장 스카이박스에 가다 본문
겨울의 추위가 마지막 뒷심을 발휘하던 2월 26일, 여느 때와 똑같이 학교에 출근하여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던 그 때, 아이들은 “3월 1일에 학교가 재량휴업을 할 수도 있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한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개학준비회의에서 학교 휴업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3월 1일에 쉬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말이 와전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량휴업일 결정과 뜻밖의 제안
그렇게 혼란에 빠져 있던 그 때, 점심시간에 승태쌤이 아이들을 모아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때 승태쌤은 “오늘 초이쌤이 3월 1일에 재량휴업을 하는 건으로 제안을 했고, 이에 따라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회의를 소집했습니다”라고 소집 이유를 밝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재량휴업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니, 아이들에 따라 찬성을 하기도 반대를 하기도 하더라.
일반적으론 학교가 쉰다고 하면 모두 환영하고 좋아한다. 왜냐 하면 학교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야만 하는 곳이고, 그곳에서 하는 활동은 사회적으론 ‘유용한 것’이라 인정받지만 적어도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적인 것’이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교는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 불렸으며, 땡땡이 칠 수 있는 것이 능력으로 칭송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현실이니 아이들은 당연히 ‘재량휴업’ 운운했을 때, ‘옳다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연히 휴업 쪽에 힘을 실어줄 텐데, 그러지만은 않았으니 신기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장 밑바닥에 흐르는 감정이 무엇이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누가 뭐라 해도 전체적인 인상을 표현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이를 테면 부모와 자식 간에 겉으론 서로를 생각해주고 위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단둘이 남은 상황에선 어색해하고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관계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그처럼 학교에 나오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는 건, 교사 입장에선 정말 기분 좋은 광경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승태쌤은 “3월 1일에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서울 축구팀과 일본 축구팀이 경기를 하는데, 그걸 볼 수 있는 티켓이 왔습니다. 스카이박스라고 뷔페도 나오고 음료수도 있는 곳에서 경기 관람을 하는 것인데, 가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라고 새로운 제안을 하시더라. 그러자 아이들 사이엔 다시 열띤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그냥 축구를 보러 가는 것이라면 아마도 아이들은 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날씨가 꽤 춥기에 관람석에서 봐야 한다는 건 부담이 되며, 쉬는 날 나오라는 것이니 거부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귀빈 대접을 받으며 음식도, 그리고 따뜻한 방에서 축구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하니, 아이들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그 순간만큼은 행복한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때 상현이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가겠다고 손을 들었고, 규빈이는 상황에 따라 못 갈 수도 있기에 하루 전에 연락주겠다고 말을 했다.
이렇게 상황이 급진전되자, 승태쌤은 “그렇다면 3월 1일에 축구경기를 보러 가는 것으로 하고, 2월 29일엔 재량휴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결단을 내렸다. 이로써 전혀 뜻밖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 준영 아버님이 후원해 주셔서 최상의 서비스를 맛볼 수 있었다.
건빵과 스포츠 관람
나는 원래 스포츠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타고난 몸치에, 운동신경까지 젬병이니 더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남중 남고를 나오면서 야간 자습 시간에 망을 봐가며 축구 경기를 보는 아이들 틈에 껴서 자연스럽게 축구 경기를 보기도 했고, 한참 NBA의 마이클조던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를 만들던 때라 그 경기를 보기도 했다. 그런 여파로 구기종목을 하진 않지만 룰 정도는 알았던 것이다.
처음으로 경기장에서 축구를 봤는데, 그 땐 2000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와 전북대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대학교 앞에 있던 종합경기장에서 경기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경기장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의 열기가 대단했고, 무엇보다도 눈앞에서 축구경기를 보는 기분이 남달랐다. TV로 볼 땐 클로즈업으로, 풀샷으로, 반칙이나 중요 장면은 리플레이도 되기에 이해하기 쉬웠는데, 경기장에선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러니 그저 집중하며 봐야만 했다. 하지만 현장감은 역시나 위대한 거였다. 응원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 올림픽 경기장에 걸려 있던 글씨. 어화둥님이 쓴 글씨와 같다(해당 후기 보기).
스카이박스 1 - 직원의 환대를 받아야 하는 불편함
하지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식으로 다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니 기분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2시부터 경기가 시작되기에 아이들과는 1시에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날은 일요일에 눈이 내리며 한파가 찾아온 날이라, 모두 옷깃을 여미며 기다리고 있었다. 규빈이는 결국 사정이 생겨 나오지 못했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나오게 됐다. 모두 만나기로 한 시간에 맞춰서 나왔는데, 민석이만 10여분 늦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민석이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올라가서 있기로 했다.
역시나 축제의 장답게 올라가는 길에서부터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마니아에겐 이만한 축제도 없을 것이다. 축구 경기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한껏 여흥을 즐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축구장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준영이는 이미 한 번 와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준영이가 안내해주는 대로 따라서 갔다. 한참을 돌고 돌아간다. 거의 경기장을 따라 180도 정도를 걸어갔던 거 같다. 그 때 들어가는 문이 보여서 그 쪽으로 가니, 직원들이 도열해 있는 것이다. 그거 아는가? 마트가 시작될 때, 은행이 시작될 때 직원들이 들어가는 입구에 일렬로 도열해서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이라는 말과 함께 일제히 인사를 하는 광경을 말이다. 바로 그와 같은 모양새였기에 짐짓 뒷걸음질이 쳐졌다. 내가 저 분들에게 이렇게까지 인사를 받고 대접을 받아야할 사람은 아니라는 자의식 때문이다. 역시나 이런 상황은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자신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언제나 대접 받는 게 익숙한 사람은 이런 식의 대우가 당연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오히려 그 땐 “왜 좀 더 많은 직원이 나와서 인사하지 않는 거야?”라며 성질을 낼지도 모른다.
▲ 우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직원들. 극진 대우다.
자본이 만든 사회의 단면은 돈만 내면 나이나 그 사람의 인품, 학덕 모든 것에 상관없이 최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이걸 공평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돈을 벌 수 있고 쓸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게 자본주의의 핵심인데 돈 앞에선 모든 사람이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공평하냐?’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미 사람마다 태어날 당시의 자본의 양이 다를뿐더러, 열심히 사는 것과 무관하게 벌 수 있는 자본의 양도 다르기에 불평등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수저 & 흙수저’ 따위의 말들이 만들어진 것이고, 흙수저는 이런 환대를 누리는 사람이기보다 이런 환대를 해줘야 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 편하게 복도를 따라 걸어간다. 대기할 이유도, 사람이 많기에 북적댄다며 정신 쓸 이유도 없다.
스카이박스 2 - 시선이 권력임을 건축물로 구현하다
직원이 우리 앞에 서서 우리를 안내해준다. 그 사람을 따라 걷는다. 한참을 걷다가 배정된 방문을 열어준다. 그 안에 동그란 테이블이 있고 옆엔 싱크대와 식탁이 배치되어 있다. 싱크대 위엔 맥주와 음료수가, 식탁엔 뷔페 음식이 놓여 있다. 방엔 히터가 틀어져 있어서 밖의 날씨와는 달리 엄청 따뜻했다. 그리고 출입문 바로 옆엔 화장실까지 있어, 방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차려진 뷔페음식을 먹는다. 배불리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걸 누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어떨까? 유리 너머로 축구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쾌적한 환경에서 관람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관객들의 응원소리가 시끄럽다고 생각되거나, 춥거나 더운 날엔 스카이박스 안에서 관람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좀 더 현장감을 누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유리문을 열고 관람석으로 나가서 볼 수도 있다. 관람석의 의자는 일반 의자와는 달리 푹신하고 앉기에 편하게 되어 있다. 그뿐인가? 관람석의 위치는 일반 관객석보다 높아서 오히려 경기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일반 관람객보다 높은 곳에서 그들을 굽어보며 응원을 하고 경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 스카이박스 안에서 보면 이런 느낌이다. 난방이 되는 곳에서 편하게 볼 수 있다.
‘시선은 권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만이 시선을 가질 수 있으면, 시선을 지배함으로 생각까지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깔보기 위해 한껏 내려 보며, 반대로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을 아예 쳐다보질 못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뻣뻣하게 서서 내려 보길 좋아하여 건물에서도 최상층을 점유하려 한다. 제2롯데월드의 최상층엔 여지없이 회장이 입주한다고 하니, 그들에겐 ‘나이 들수록 땅을 그리워한다’는 말은 가난한 사람들의 헛소리로만 들리는 게 분명하다. 이런 구도는 스카이박스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 일반 관객보다 높은 자리에서 내려 보는 구조이기에 맘껏 그걸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 스카이박스에선 밑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스카이박스 3 -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나를 나타낸다
아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종류가 엄청나게 많진 않고 양도 넉넉하진 않지만, 한껏 분위기를 내며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거기에 테이블엔 포도주까지 있어 한 가족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내며 즐길 수 있다. 지금은 이런 경험을 처음 하는 것이니만큼 모든 게 신비하게 느껴지지만, 만약 여러 번 누렸다면 그저 일상처럼 편안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일반관람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과 부딪혀야 하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경기장의 자리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에, 간격이 좁아 불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스카이박스는 그곳을 사용할 사람을 최대한 배려하여 만들어졌다. 어떻게 하면 최상의 서비스를 받는 것처럼 느끼게 할까, 그리고 대접 제대로 받았다고 받아들이게 할까를 중심에 두고 설계했으며 배치한 것이다. 그러니 같은 축구장에 있는 것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나름 달콤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한참 먹고 있으니 승태쌤은 민석이를 데리러 나가셨고, 20분 정도 늦게 민석이와 함께 돌아오셨다(민석이의 축구 후기보기). 이제 오늘 모이기로 한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축구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우린 먹고 또 먹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 시선은 권력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시선을 장악하고 그 시선만을 강요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누리다
이 날은 추위가 다시 찾아와 몸을 바들바들 떨게 한 날이다. 그래도 우린 스카이박스에서 관람을 하기에 기온을 크게 신경 쓸 필욘 없었다. 오히려 너무 더워서 외투마저 벗어놓고 그 시간을 즐기면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잠시 갈등이 되었다. 그 땐 ‘교컴 후기’를 쓰고 있던 때라, 관람석에 나가지 않고 테이블에 앉아 교컴 후기를 쓸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 때 불연 듯 2005년에 하계서당 때가 생각났다. 그 땐 한자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때인데, 서당에 들어가서 한자능력시험 공부도 하고 사서도 열심히 볼 생각이었다. 그저 맹목적으로 두 가지 모두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여 낮엔 경문을 외우고 밤엔 시험공부를 한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건 잘못된 방법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맹자』를 파고들어 열심히 공부하지도, 그렇다고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미진한 것에 대해 맘만 쓰다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말았다.
지금도 그 때와 마찬가지다. 분명한 건 축구장에 왔으니 축구문화에 나름 빠져들고 싶고, 후기도 끝내야 하니 쓰고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후기를 쓰자 맘먹고 쓰려 해도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기에 잘 쓰지 못할 것이고, 나름 축구장에서 시간만 보냈다며 후회할 게 뻔했다. 그래서 후기는 잠시 미뤄두고 경기 구경에 최선을 다하기로 맘먹었다.
그래서 날이 꽤 추운데도 관람석에 나가 경기를 봤다. 현장의 흥분과 열기도 느껴지고 응원석의 모습도 한 눈에 들어와 경기에 몰입하기 좋더라. 이 때 지민이도 밖에서 제대로 보고 싶은지 나와서 함께 보니 더 즐거웠다. 전반전 초반에 한 골을 먹었다. 나름 쫀쫀한 긴장감과 절망감을 안기긴 했지만, 그 뒤 만회골을 넣으며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전반전이 끝났다. 그로 인해 후반전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스카이박스 안으로 들어오니 직원들이 커피 서비스를 해주더라. 이게 바로 황제 같은 여유 아니겠습니까~
▲ 재밌게 게임을 하고 있다.
‘지민몬 막아, 지민몬 출격’이 만든 재미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마음 졸이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팽팽하게 유지되는 균형은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드리아노가 분발하면서 승부는 완전히 정해졌다. 무려 3골이나 연거푸 넣었기 때문이다. 이때쯤 되니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었다. 너무 일방적이었으니 말이다.
▲ 지민이와 함께 서울팀을 응원했지만, 지민이를 응원하게 됐다.
그러니 옆에서 함께 찬바람을 맞으며 응원하고 있는 지민이가 보이더라. 그래서 지민이와 함께 응원하는 즐거움을 만들기로 했다. ‘즐거움을 만든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테지만, 그건 곧 지민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는 뜻이다. 그래야 너무 일방적인 경기로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고, 지민이도 좀 더 이입하며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민이를 12번째 선수로 만들어 축구팀을 응원하기보다 지민이를 응원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팀이 공격할 땐 “지민몬(포켓몬처럼 지민이를 소환하는 주문임) 출격, 한 골 더 넣자!”라고 응원했고, 일본팀이 반격할 때 “지민몬 막아. 한 골 먹으면 가만 안 둘 거야”, “지민몬, 예의상 지금은 한 골 먹어도 돼”라고 외쳤다. 그런 말을 통해 지민이는 축구장에서 함께 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훨씬 재밌었을 것이다.
경험은 크게 직접체험과 간접체험으로 나눌 수 있다. 직접체험은 몸을 움직여 그 활동을 하므로 익히는 것이고, 간접체험은 몸이 아닌 머리로 그런 상황을 상상하며 느껴보는 것이다. 당연히 간접체험보단 직접체험이 좋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간접체험도 직접체험과 같은 강밀도와 현장감을 지닐 수도 있다. 아마 그 순간 지민이는 직접체험을 하는 것 같은 묘한 긴장과 일체화된 흥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압도적으로 이기기까지 했으니, 정말 자신이 이긴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 승리했기에 객석에 축하인사를 하고 있는 서울팀.
처음부터 끝까지 대우를 받으며 축구 경기장을 나오다
이로써 경기는 완승으로 끝났고 우린 3시간 정도 스카이박스를 사용할 수 있었다. 역시 이런 곳에 오면 느껴지는 게 ‘돈이 좋긴 좋다’는 소감이다. 돈만 있으면 이렇게 쾌적한 곳에서, 서비스까지 받으며 편안하게 경기를 보며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누릴 수 있는 건 비단 경기장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구석구석에 배치되어 있다. 그렇게 촘촘히 그물을 쳐놓고 ‘편하고자 하는 욕망, 남보다 나은 사람이고자 하는 욕망은 누군가 심어놓은 게 아닌 자연스런 인간의 욕망이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쯤 유하의 “눈앞의 저 빛! / 찬란한 저 빛 / 그러나 / 저건 죽음이다. ? 의심하라 / 모오든 영광을!”라는 「오징어」라는 시가 생각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기장 밖으로 나오는 길은 들어갈 때에 비하면 훨씬 가까웠다. 들어갈 땐 개방하지 않던 문을 나갈 땐 개방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표를 사느라 한참을 기다리며 입장해야 했고 나갈 때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몰리니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우린 들어갈 때도 다른 출입문으로 특별대우를 받으며 편하게 입장할 수 있었고 나갈 때도 그런 것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나갈 수 있었다. 정말 다시는 잊지 못할 재밌는 경험이었다(사진 보기).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런 저런 대접을 한껏 받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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