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 0. 녹취록 본문
동아시아 평화와 교육
◎ 강연을 마친 후엔 ‘인사말만큼은 한국어로 해야 겠다’고 결의는 하지만, 지금까지 이루지 못하고 있다.
현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그 싸움
◎ 사토 마나부쌤과 ‘전쟁 헌법 개정’을 저지하려 함께 싸우고 있다. 사토 마나부는 존경하는 선배인데 그 분이 한국에 와서 하는 얘기를 잘 듣고 있다. ‘저도 한국에 가고 있습니다’ ‘저도 가고 있습니다’라고 확인했는데, 그 때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겹쳐서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안전보장 헌법 개정’ 운동을 먼저 하였기에 힘을 보태게 되었다. 처음엔 3명이서 시작하였지만 의기투합하여 50명의 발기인이 만들어졌고 만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서명을 들고 중의원실을 방문했다. 의원 비서가 잘 받았다고 하며 돌아가라고 했는데, 곧 ‘시간이 있으신가요’라는 ‘학생 긴급 민주화 운동을 위한 모임Student Emergency Action For democracy’을 하러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때 3명의 젊은 친구들과 만났는데 원래 사토 선생 혼자 찍기로 되있었는데 우연하게 저도 함께 찍게 되었다. 젊은 친구들이 만든 프랑카드를 사토쌤과 내가 지탱하는 모양새였다. 학자와 학생의 연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씨리즈가 동아시아 평화연대와 연결되는 내용이다.
◎ 5월에 사토쌤은 학자 모임과 학생 모임이 연대하여 이런 평화헌법 개정 저지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런 헌법을 저지하는 건 기존의 정당이나 노동조직이 아닌 새로운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함. 좌우나 어떤 색깔이 없는 조직이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함.
결국은 중의원에서 통과되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70년간 유지되었던 평화 국가에서 전쟁국가(집단적 자위권 행사 국가)로 바뀜. 즉, 미국과 함께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바뀜. 남수단, 중동, 아프가니스탄, 필리핀 등에 자위대가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함.
이렇게 바뀌었는데 일본 국민의 40%가 아베를 지지함. 처음에 강제로 통과시킬 때만해도 약간 지지율이 휘청했지만, 곧 올라감으로 ‘도대체 일본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왜 저런 선택을 하나?’ 의문 사항이었음.
일본인들이 그럼에도 아베를 지지하는 이유 1 - 평화가 지속되며 감각을 잃었다.
◎ 70년 동안 어느 나라에도 파병하지 않았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었다. 보통 일본 시민 같으면 ‘어떻게 이런 평화주의를 유지하며, 전쟁하지 않는 군대를 유지할까?’ 궁리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고 ‘왜 분쟁이 있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하나?’, ‘왜 세계 젊은이는 피를 흘리는데 우리만 그러지 못하는가?’, ‘우리 젊은이도 피를 흘리면 세계에 경의를 받을 수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평화복회(평화에 푹 빠져 있다), 평화를 유지하다 보니 평화의 소중함을 모르게 되었고, 국제적인 감각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마음이 바로 평화복회스런 마음이다. 일본의 정책 결정자 가운데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그들이 지금 전쟁을 하자고 부추기고 있다. 어떤 재계인이 6개월 전에 “이제 슬슬 전쟁을 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는데, 그들은 전쟁을 비즈니스로 여기고 정권 입장도 마찬가지다. 911 이전엔 부시 정권의 지지도가 낮아졌지만, 그 후 엄청 지지도가 높아졌듯이 그걸 노리고 있다. 3년 동안 아베 정권이 국내적으로 변화를 이끌었다거나 어떤 획기적인 정책을 펼치지 못하자
일본인들이 그럼에도 아베를 지지하는 이유 2 - 과거엔 실제적인 이득을 보는 구조였음
◎ 일미동맹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였고 미국은 일본을 맘대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함, 일본이 미국의 정책에 대해 딴지를 걸거나 부조리하다고 하는 경우는 없음, 70년 동안 일본은 미국의 군사 종속국임, 국가 주권 같은 게 일본엔 없다.
미국에게 패망한 이후 얼마간은 ‘우리는 주권이 없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패망 이후엔 대미종속을 통해 대미자립하는 나라 성장해야 한다는 관점이 있어, 미국의 말을 들음->미국의 신뢰획득->신뢰 발판으로 독립쟁취, 즉 종속을 매개로 한 자립을 생각함. 패전국 일본에겐 나름 합리적인 선택지였음. 철저하게 종속되다 보니 1951 센프란시스코 조약 때 주권을 회복함. 종속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그 성과로 그와 같은 일본에 유리한 조약이 성립됨. 그 6년 동안의 인식을 통해 ‘대미종속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스며들게 됨. 그 이후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옳은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됨.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당시 일본은 전진기지였음.
오가사와라는 제도가 그 덕에 반환되었고, 1972년엔 오키나와가 반환됨. 두 전쟁을 수행한 덕에 국토를 회복함. 1972년만 해도 대미종속을 통한 대미자립은 성과를 얻음. 주권회복, 국토회복이란 선물을 얻음.
일본인들이 그럼에도 아베를 지지하는 이유 3 -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유지하려함
1972 일중 공동 성명이 발표됨. 그 때 다나카 가구에라는 총리였음. 미국의 말을 거역한 마지막 총리였음. 그 성명은 미국의 허가를 얻지 않고 한 것임. 그 일이 있고 난 후 총리에겐 엄청난 운명의 전환이 일어남. 수상이 체포당하는 일을 겪었고 관방장관은 ‘다나카 가쿠에를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함. 미국의 종속국인 일본이 지 맘대로 결정했다는 분노였음.
미국의 동아시아 연대 방해 작전
◎ 식민지 통치에 중요한 건 나눠진 나라들이 연합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렇기에 동아시아가 나름 긴장된 상태에서 통치하는 것이다. 전쟁을 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간에 불신을 하고 긴장도를 높이는 게 미국에겐 유리하다. 19세기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통치 방법임(식민지 통치 방법 중 하나인 분할하고 통치한다). 북한과 이야기할 때, 일본-중국, 한국-일본이 문제 생길 때도 미국은 중재자로 꼭 낀다. 당사 국가끼리의 협의를 미국은 바라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이 군사협정을 맺어도 상관없지만, 그 외에 정치, 경제 등의 모든 레벨에서도 한일간에 연대해도 좋을 텐데, 미국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은 한일, 한 대만 간에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기에 연대를 할 수 있도록 해도 될 텐테 미국은 원하지 않는다. 미국에게 그런 나라들은 나와바리다. 미국은 서서히 진출하여 하와이, 필리핀, 괌, 일본, 한국,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을 갖게 되었다. 미국의 국가관은 ‘go west’다. 이건 미국의 기본적인 생각이기에 이걸 국민 한 사람이 막을 수 없다.
이런 미국의 상황에서 동아시아는 생각해야만 한다.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지만, 동아시아 국가들끼리 군사동맹을 맺진 않았다.
하토야마 유키오의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노력과 절망
◎ 2009년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란 총리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축소-일본의 미군기지 중 76% 오키나와에 있음. 미국에서라면 전혀 안 할 짓을 오키나와에선 아무렇지 않게 함. 주택가 위에 아무렇지 않게 헬 리가 날라다님’,
‘동아시아의 공동체 만들기-하토야마와 만나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동아시아 공동체의 정체는 뭡니까?”“천왕을 만났을 때 천왕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동아시아 공동체에 몽고는 들어갑니까?‘라고 하여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일본 스모 선수의 반 이상이 몽고인들이었다. 천왕은 스모를 좋아하기에 그렇게 물은 것이다.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플랜이 없었기에 실격 당한 것. 앞으로 일본의 외교전략 중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기에 감명 깊게 들음’ 이 두 가지로 그는 실격 당함.
TF팀이 맡아야 하는데 그런 게 없고, 이런 구상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놀랐다. 실현 가능성이 없어도 플랜을 여러 개 마련하는 게 필요한데 그런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어떤 조건들이 공동체 유지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 조건들이 방해가 되는지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공동체 형성을 방해하는 건 미국의 자국 이익 추구임을 알게 된다. 그런 게 현실 가능성이 없다면 ‘국민적인 논의’로 그 이유를 물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무런 논의도 없는 상태에서 수상은 그만 두었다. 일본에서 미국에 대한 얘기는 터부시 되는 얘기다.
학계, 언론계, 정계가 하나 되어 대미종속 외엔 터부시하는 상황
◎ 이제 일본은 이야기의 단계를 넘어 그걸 아예 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미국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일본인들 스스로 총리를 날려 버린 사건이다. 일본은 내정 간섭할 필요도 없는 나라가 됨. ‘이런 얘길 하면 미국 대통령이 싫어할 거다’라고 생각하는 관료들이 많아짐. 하토야마를 끌어내린 쪽이 외무성과 국방성임. 미국은 오래된 문서를 공개하는 나라인데,
이 때 사설을 통해 하토야마 공격이 엄청났음. 미디어의 반응을 보고 ‘일본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함. 종속함에도 독립을 외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더 이상 독립을 외치는 단계에 있지 않음. 일본이 주권의 회복이나 국토의 회복을 바라지 않는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임. ‘미국이 하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뼈까지 묻으려는 그 마음’이 일본의 병폐가 되고 있다고 생각함.
‘대미종속’을 통한 ‘대미자립’을 잃어버림. 학계나 미디어는 이제 ‘대미종속’을 통한 ‘대미종속’만 외치는 상황이 됨. 결국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눈 앞의 이득만을 중시하고 멀리까지 바라보지 않는 세대가 되었다
◎ 대미종속을 외치며 그런 기조를 가진 사람이 출세하는 세상이 됨. 일본 패망 시보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훨씬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종속 비율은 지금이 훨씬 높다. 패망 시엔 굴욕적인 패망을 당했다는 자각으로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수단에 가서 전쟁을 한다 해도 일본엔 아무 이득(일본 국민이 죽을 뿐, 미국 입장에선 일본의 이렇게 알아서 바짝 엎드려 주는게 신기하게 느껴질 거다)도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비민주적인 정책을 폈던 독재정권(인도네시아, 필리핀)들이 미국을 지지해왔던 것이다. 즉, 미국의 건국이념과 대치되는 나라들은 미국은 서포트 해왔다.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을 배반해도, 죽음으로 내몰아도 상관없어 한다.
눈앞의 이득과 TPP 통과
국익이나 장기적인 전망 없이 눈 앞의 이득만 중시하는 세상이기에(후쿠시마 원전 재가동문제-규명이 안 됐음에도 중지되었던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음)아베정권은 40%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 당장 돈이 되는 것,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보통은 앞으로 리스크가 클 경우 하지 않는데, 지금은 다르다.
TPP가 통과되면 일본의 농산물은 괴멸할 것이다. 언론 재계 정치가들 모두 외국 농산물이 들어오면 소비자가 이득 볼 거라고 떠듦. 멕시코는 캐나다 미국과 FTA를 추진했는데, 미국산 옥수수가 훨씬 쌌기에 미국산 옥수수를 먹게 됨. 지금 당장 단기적인 이익 때문에 미국산 옥수수를 먹자 캐나다 옥수수 사업은 망했고, 옥수수가 바이오연료로 써진다는 것을 알자 값이 올랐고 더 이상 주식인 옥수수를 먹지 못하게 됨. 2008년의 이야기임.
식료품은 상품일 수 없다. 그건 집단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것
일본은 농수산물은 괴멸하고 자동차 산업을 키운다는 것이다. 공업 제품일 경우 없어지면 잠시 불편한 정도지만, 농수산물은 생명과 직결되기에 생활이 완전히 깨진다. TPP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화나는 점은 농수산물을 상품으로 생각한다는 거다. 공급이 원활할 땐 상품으로 보이나, 위기 상황일 땐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상품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단순히 국제가격에 비해 높다 싸다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생명 보존의 기반으로 생각해야 한다. 식물의 기본은 어찌 되었든 기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먹지 못하는 것을 먹을 수 있게 만들어왔던 역사였다.
나라마다 식물이 다르기에 다양한 식물(보리, 쌀, 바나나)을 가지고 있다. 기상 조건에 따라 다양하지만 같은 식물에 대해 욕망이 집중되지 않도록 다양화된 측면이 있다. 식품을 상품으로 여길 경우 식품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욕망은 획일화됨. 식품회사 입장에선 하나의 식품을 좋아하는 방향으로 바꾸려 함. 글로벌 자본이 들어올 때 식물마저도 획일화시키고 있고 그 욕망을 하나로 귀속시키고 있다.
◎ 이런 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식료가 끊어졌을 때 어떻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사람이 없다. 너무 오래 평화에 젖어 있다 보니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모두 잊고 말았다. 평시엔 평시 나름의, 비상시엔 비상 나름의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교육이란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 교육은 ‘체제는 계속된다’ 그러니 지금만을 중시하고 거기에 안주하려 하니, 엇박자가 생긴다.
◎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평시(지금의 가치관이 계속 유지될 것이다)에 매몰되어 있다. 나의 위치는 어딜까, 나의 이익은 얼마큼 얻을 수 있을까만 집중함. 역사적으로 계속 평시를 유지된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언제든 극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함. 전쟁일지도, 가치관의 붕괴일지, 천재지변일지도, 모르는데 언제든 지금의 가치관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준비해야 할 것은 파국적인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학교의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할 점이다. 어떻게 하면 사회적인 지위, 명예, 급여 수준을 올릴까가 학교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파국적인 상황에서의 지성을 길러주는 일을 해야 함.
어떤 집단이든 지금과 같은 학교 시스템은 있었을 것인데, 그곳에선 ‘집단이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농업일 경우 농업 기술을, 수렵의 경우 수렵 기술을, 말이다.
그 기술을 가르치기 전의 어린아이에겐 ‘위기가 접근했을 때 위기상황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줬을 것이다. 원시부족의 아버지가 3살, 4살의 아이에게 ‘여러 위험에 대해(독초, 독사, 위험 동물, 위험 상황) 어떻게 살아남을 지를 가르쳤다’. 사자가 다가올 때 이겨낼 수 있는 완력, 또는 도망칠 수 있는 지구력을 키워줬을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 대한 절박함을 가르쳤을 것이다.
합기도를 가르치고 있는데, 한 제자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에 대해 어떤 것을 가르쳤으면 좋겠습니까?’라는 말을 했기에, ‘수건돌리기를 해라’라고 말했다. 감각이 뛰어난 아이는 떨어뜨리려 하는 것에 미리 알고 있다. 미세한 호흡의 변화, 맥박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다. 감각이 좋은 아이들은 캐취한다. 숨바꼭질도, 인류는 이런 방법을 통해 위기 상황 대처법을 알려줘 왔다. 직감능력을 키워주는 게 인류의 과제였는데 30년 전부터 그런 게 끊어져 버렸다. 그걸 보고 세상이 평화로워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인류가 시작한 이후 인간의 위협은 달라진 게 없는데 ‘문명화되고 윤택해지니 위기적인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상식’이 사라졌다. 살아남는 힘이 강한 아이들은 오히려 수업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생명체로서의 강한 역동성인데, 수업을 듣다 보니 생명력이 죽어가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경우다. 합기도를 하며 가장 좋은 실력을 갖춘 아이들은 학교 체육을 잘 하지 못했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은 자기 몸에 대한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겐 학교체육은 곤욕을 치러야 하는 시간이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다’라는 생각으로 해야 하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내 몸은 극복의 대상이기에 그럴수록 ‘난 운동 능력이 없다’고 강요당하게 된다. 그러니 합기도 장에 와서 몸 그 자체를 받아들이다보니 실력이 월등히 향상될 수밖에 없다.
◎ 35년간의 교육 경험으로 말하자면, ‘아이들의 생명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몸을 릴렉스 한다던지, 호흡이 깊어진다던지 하는 경우를 보면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명력이 활발한 아이들일수록 릴렉스한다.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호흡이 깊어지고 여러 생각(방청소해야 하는데, 편지 써야 하는데-그동안 잊었던 거 생각남, 좋은 상태임, 움츠러들었던 몸이 개방되는 느낌)을 하게 되고 배가 고파진다.
어떤 교사들은 아이들이 움츠러 집중하는 상태를 좋은 상태로 생각하지만, 최고의 상태란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몸에 대해 생각하는 상태가 좋은 상태임. 모든 감각을 최대화하는 그 상태가 좋음.
◎ 10년 전에 1500명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글로벌 사회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모두 관심도 없는 상태였고 70분 동안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태였다. 그 학교는 역사가 있는 학교였다. 학교 뒤에 산이 있었고 그곳엔 신사가 있었는데, ‘학교 풍취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 때 제일 먼저 꺼낸 얘기는 “이 학교 풍취가 좋다. 그리고 강당은 기가 잘 통한다”라고 하니 아이들은 몸이 열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그 말과 함께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몸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고, ‘기가 통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팔짱을 끼거나, 다리를 꼬거나 하지 않고 모든 감각에 민감해져 강연에 집중하며 듣게 되더라. ‘몸을 닫고 한 점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감각에 집중해야만 지성이 올라간다’
학교 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는 몸의 안에 집중하지 않으며 공부하게 하니 말이다.
◎ 뒤에 내 말 들립니까?라고 물으니 안 들립니다라는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들’ 정도밖에 들리지 않는데도 표정, 몸짓을 토탈하여 추리하여 이야기가 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미루어 단편을 이어 의미 있는 정보로 만든다. 최고의 자세란 바로 그런 것이다. 단편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으려는 것. 단편을 끌어 모아 ‘의미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업 시작할 때 ‘춥네. 난방을 좀 올려주지 않을래’ 그 때 집중하는 부분이 있다. 칠판에 글을 쓸 때, ‘눈이 부시니 커튼을 쳐주겠습니까’라고 말할 때 아이들이 집중한다. 뒤에 내 말 들립니까, 공감이고, 부시지 않습니까는 지각인데 후각청각지각을 얘기할 때 아이들은 오픈마인드가 된다. 오감이 자극될 때 배움의 자세를 갖추게 된다. 마음이 열리며 받아들이려 한다.
원시부족에서 아이들의 오감을 열어주고 배움의 자세를 갖추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평시와 비상시의 교육은 다른데,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교육은 평시의 교육이고 가르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비상시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가르치는 것이다. 가장 본질적인 서바이벌의 모습은 바로 오픈마인드다.
◎ 비상시의 모습으로 이동하고 있고,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교단에 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후기 > [후기]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마추어 사회학: 0. 강의 정리 (0) | 2016.10.18 |
---|---|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 14. 목차 (0) | 2016.10.17 |
수업이 이루어지는 조건 - 목차 (0) | 2016.09.19 |
수업이 이루어지는 조건 - 5. 우치다 타츠루에게 듣는 육아와 학교의 역할 (0) | 2016.09.19 |
수업이 이루어지는 조건 - 4. 호기심과 증여의 마인드가 널 배우게 하리라 (0) | 2016.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