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수업이 이루어지는 조건 - 4. 호기심과 증여의 마인드가 널 배우게 하리라 본문
4. 호기심과 증여의 마인드가 널 배우게 하리라
배움이 일어나는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의 감정을 맘껏 개방할 수 있는 여건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잣대가 아닌 다른 잣대를 받아들일 수 있고, 겹겹이 쌓아놓은 외피를 벗어버릴 수 있다. 두 번째 조건은 ‘저 교사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 교사가 있어야 한다. 오해가 스승을 만들고, 그런 스승은 언젠가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세 번째 조건은 몸을 개방할 수 있도록 환경 자체가 청결해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환경을 중시한다면, 세 번째 조건은 몸을 다치지 않게 하는 외부 환경을 중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개풍관은 위에서 얘기한 배움의 조건들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배움터라 할 수 있다. 그곳에서 우린 강의를 듣는다.
건물에 구현된 배움이 정신
이런 식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 누군가는 ‘그건 배움과 상관없는 얘기다’고 생각할 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예전에 고베여학원대학神戸女学院大学에서 새로운 건물을 만들 때, 위원회가 열렸고 설계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건물의 소리는 어떻습니까?”, “방음은 잘 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교실에서 말을 하면 뒷사람에게도 잘 들릴 정도로 울림이 있는가?’라는 의도로 물은 것인데, 그 사람은 ‘외부의 잡음이 완벽히 차단되는가?’라는 의도로 이해하고 대답을 해주더라.
▲ 현대 건축물에선 볼 수 없는 고풍스러움과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이 학교엔 100년 전에 미국 건축가인 윌리엄 메럴 보리스William Merrell Vories가 지은 건물이 있다. 건물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목소리가 울려서 작은 목소리로 강의를 해도 전부 알아들을 수 있고 목소리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말을 해도 목소리가 부드럽게 전달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건축가는 배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할지라도, 배움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선교사로 도일하여 많은 유서깊은 건축물을 남긴 윌리엄과 그의 아내 마키코의 모습.
배움의 조건 4 - 단정 짓지 않는 호기심으로 누벼라
이외에도 이 건물의 훌륭한 점은 숨겨져 있는 계단, 숨겨져 있는 창문, 얼핏 보면 보이지 않는 무늬가 곳곳에 있다는 점이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문을 열어보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건물 두 개가 마주보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두 건물은 얼핏 보면 똑같은 거 같아도 전혀 그렇지 않다. 한 건물만 숨겨진 계단을 통해 3층으로 갈 수 있고, 거기엔 숨겨진 베란다까지 있어서 나가면 멋진 풍경을 내다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건 모양은 똑같은데 내부 구조를 다르게 하여 생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건물만 대충 둘러보고, ‘저 반대편 건물도 똑같겠지’라고 짐작해서는 안 된다. 직접 모든 건물을 돌아다니며 살펴보지 않는 한 많은 부분들을 놓치게 된다. 그러니 모든 문들이 잠겨 있지나 않은지, 그 문을 통과하면 어느 곳과 연결되는지, 궁금해 할 수 있는 아이들만 그곳을 찾을 수 있고, 이 건물의 진실을 알 수 있다.
▲ 대학에서 교수직으로 있을 때의 우치다쌤의 모습.
이와 같이 호기심에 따라 건물을 둘러보다 보면, 마지막에 마주치게 되는 것은 창문이라 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그 창문을 통해 보는 풍경은 평소에 줄곧 보아왔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 평소와는 다른 감흥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배움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00년 전에 죽었던 건축가가 100년 후에 태어난 학생에게 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건물을 둘러보던 아이가 어렴풋이 그 건축가에 대해 ‘이야 이 건물은 정말 멋진 건물이다’는 맘이 들 때, 100년 전에 죽은 건축가에게 감사하단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배움이란 무엇일까?’를 가르치고 싶었던 사람이 100년 전에 살면서 그걸 건물로 구현해냈고, 호기심에 건물을 돌아다니며 문을 열어본 친구들은 50년 후에도, 100년 후에도, 200년 후에도 계속하여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가르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보지 못한, 찾아오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라 할 수 있다.
▲ 건물이 다 똑같다고, 뻔해보인다고 대충 볼 것이 아니다. 건축물로 배움을 구현한 곳이니 말이다.
교육정상화가 낳은 교육 파행
현재의 학교는 학생들을 모아 동일한 수업을 하여 등수를 매기고 성적에 맞춰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학교에서 흔히 하는 얘기가 ‘선택과 집중’이란 말이다. 이 말은 학교가 인문 과정에는 투자하지 않고, 실용 학문에만 투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학교 교육법이 개정되면서 돈이 되지 않는 인문계는 점차 줄이고 돈이 되는 학과에는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되었다. ‘어떤 직업이 돈을 많이 버는가?’라는 것으로 등급을 나누고, 취업률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평가를 받게 한 것이다(한국에서도 ‘프라임 사업’이란 기업을 위해 고등교육을 재편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교육’이라는 말로 교수회의의 권한을 모두 총장에게 위임함으로 교수들의 발언권은 적어졌고, 그에 따라 총장은 대학의 기업화를 부추겼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대학뿐만 아니라 초등학교까지 치열한 경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그건 교육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 프라임 사업이란 결국 취업률이란 한 가지 잣대로 모든 것을 재편한다는 것이다.
배움의 조건 5 - 교환의 마인드가 아닌 증여의 마인드로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기에 배움을 지키려는 사토 마나부의 ‘배움의 공동체’나 ‘사숙’과 같은 곳들이 산발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곳은 시장원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으로, ‘시장의 필요need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가르치고 싶고 배우고 싶기에 만들어진 곳’이라 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지금과 같은 학교의 개혁방향이라면 일본의 미래를 짊어질 건실한 어른들, 시민적 성장을 이룬 어른들은 사라질 것이다. 학교는 무의식중에 ‘출세를 목표로 하여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뒤처진 친구들을 짓밟아 버려라’라고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영향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나만 살면 돼’라는 생각으로 철저한 승자독식의 사회를 만들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미래엔 한 나라의 주축이 될 것이니, 그런 나라엔 미래가 없을 수밖에 없다.
▲ 한 나라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학문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출세만을 위한 학문만이 남는다.
한국의 대학에서도 문학과, 역사과, 철학과 등은 인기가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언어와 문학, 그리고 역사를 등한시하는 나라가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이건 어찌 보면 한 나라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학문인데, 이런 것들을 등한시하고 소홀히 한다면 그런 나라는 당연히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는 문학, 역사, 철학을 통해 미래를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점에서 합기도장을 연 나나,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나라를 짊어질 성숙한 어른을 길어내는 것’이다. 그건 한국과 일본의 공통과제이기에,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함께 해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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