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수업이 이루어지는 조건 - 3. 오해가 스승을 만든다 본문
3. 오해가 스승을 만든다
배우기 위한 전제조건으론 ‘소비자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꾸 근시안적으로 결과만을 쫓아다니게 되면 배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배울 수 있는 마음가짐이 생기게 된다.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을 꽁꽁 감싸 안고 있던 외투나 자의식을 벗어버릴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서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다. 개풍관은 그런 이유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자신을 개방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자신을 표현해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것을 현실에서 보여주는 곳이다. 개풍관에 모인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고 있다.
▲ 배우려면 소비자마인드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이다.
어딘가 나를 이끌어줄 진정한 선생이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도 당연히 배워야 하지만 어른들도 끊임없이 계속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배움에는 끝이 없기에, 학교 교육의 한계에 갇혀서는 안 된다.
결국 자학자습이라 할 수 있는데, 학교 교육이 끝나도 자신의 관점을 바꾸는 배움의 과정은 계속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학교에 다닐 때 교사를 신뢰해야 한다. 교사를 신뢰한다는 것은 기대치를 높이는 것이기에 그만큼 실망할 가능성도 높지만, 교사를 믿으려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건 곧 ‘어딘가 나를 이끌어줄 진정한 선생이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의 상황이 그랬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선생을 만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냈다. 물론 중간 중간에 ‘멋지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교사도 있긴 했지만, 그것 자체가 과대평가이다 보니 곧 실망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다른 교사를 다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가 실망했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엔 ‘나는 배우는 데엔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 나에게 의미 있는 스승이 별도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 스스로 배움과는 인연이 없는 것일까?
배움의 조건 2 - 신뢰하려 노력할 때, 스승은 있어진다
하지만 25살에 드디어 선생을 만나고 말았다. 그 당시엔 ‘보통 이 정도의 사람이 아니면 선생으로 대접하지 않겠어’라는 나름의 기준 같은 게 있었다. 그런 깐깐한 기준 때문에 집 근처의 합기도장에 입문하면서 ‘6개월 안에 그만두지 않을까?’라는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 타다 히로시多田宏(1929~) 선생을 만났을 때부터 아주 도발적인 대답을 했던 것이다.
타다 히로시: “우치다군은 왜 합기도를 시작하려 하죠?”
우치다 타츠루: “싸움을 잘 하고 싶어서 입문했습니다.”
타다 히로시: “그런 동기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아요.”
이런 대화였는데 선생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 대답은 얼핏 ‘그래도 괜찮아요’라는 말 같지만, 이면엔 ‘그래선 안 돼!’라는 말이었고 ‘네가 어떤 의도로 합기도를 배우게 되든 상관없지만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것을 배우게 될 거야’라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따라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후로 4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 타다 선생은 지금도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무도가인가 보다. 왕성하게 활동 중이시다.
처음에 타다 선생에게 경의를 품은 것은 무도가로서의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만하고 건방진 젊은이에 대해 ‘참 볼품없는 젊은이로구나. 그러나 나에게 왔으니 제자로 삼겠다’는 사랑의 감정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수업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합기도에 처음 입문했을 땐 합기도가 뭔지도 몰랐고, 타다 선생이 어떤 선생인지도 몰랐으며, 단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도장이 있어서 간 것뿐이었다. 더 재밌는 것은 40년 동안 수련하고 있지만 합기도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른다는 사실이다. 여러 군데 강연에 다니며 ‘합기도는 ~~이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명확하게 한 마디로 말하지는 않는다. 내 스스로 성장하고 있고, 매일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어서 말할 때마다 그 내용은 바뀌니 말이다.
▲ 우치다쌤은 다양한 강연을 통해 무도를 설파하고 있지만, 내용은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오감을 활짝 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껍데기를 벗는 것’이라고 첫 조건으로 얘기했다. 그런 환경이란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극이 적은 환경을 말한다. 어떤 배움터든 자극이 적은 환경이어서 들리는 소리는 조용하고 나쁜 냄새가 나지 않으며, 만져도 불쾌감이 느껴지거나 베일 염려가 없어서 오감을 모두 맘껏 열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감을 여는 게 어떤 것인지, 그럴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 수 있다.
배움이란 ‘이쪽으로 가면 좋겠다’는 직감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진짜로 가본 적은 없지만, 직감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니 오감을 민감하게 하여 미세한 신호라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 오감이 민감해져야 된다. 그런데 실상 학교에선 오감을 무디게 하고 있다.
배움의 조건 3 - 위험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청결한 환경
두 사람이 합기도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때 서로에게 최대한 주파소를 맞추고 촉감을 민감하게 하고 아주 미묘한 근육의 변화까지도 느낄 수 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무도적인 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 미묘한 촉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는 깨끗한 환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개풍관’이야말로 일본에서 가장 자극이 적은 청결한 도장이라고 자부한다. 여긴 금속과 플라스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연물을 그대로 사용하여 후각과 촉감을 민감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환경이기에 감수성을 높여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껍데기를 벗고 한결 편하게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 것이다.
▲ 우치다쌤은 무도와 배움을 하나로 엮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도와 배움은 여러 부분에서 겹친다.
당연히 학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촉감을 민감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최적의 교육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근대에 등장한 학교는 철근과 콘크리트로 규격화되었다. 배움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교육체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학교가 배움과는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 모교인 전주신흥학교. 근대학교는 배움을 고려하기보다 얼마나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교육할 수 있냐를 고려하여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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