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우치다 타츠루 현천고 강연 - 질의응답 본문
문교부, 교육을 망치다
Q
현천고는 미국의 진로중심교육과정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학교라 할 수 있다. 그건 교육의 큰 흐름이고 나름의 유행이기 때문에 한국까지 건너온 것이다. 그런데 왜 일본엔 그런 흐름의 학교가 없는지 궁금하다.
A
이런 학교를 만들고 싶은 교사들은 많이 있다. 일본의 문교부는 한국과 달리 굉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세세한 것들을 모두 정해놨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니 문교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바로 제재가 들어올 정도다. 그런 식으로 운영된지 벌써 30년이 흘렀다.
하지만 몇 군데 학교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가르치기도 한다. 노작하는 학교, 기숙하는 학교 등이 있지만 그건 5%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학교에 대한 문교부의 압박은 어마어마하다. 심지어는 안전보장법을 만들어 그와 같은 학교들을 옥죄려 하기에, 반대집회도 심심치 않게 열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단체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바로 자유롭게 가르치는 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현실을 문교부의 관료들 중 몇몇은 잘 알고 있고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관료들은 나쁘게 생각하고 있는 게 문제다. 그러니 앞으로도 문교부가 많은 권한을 휘두르는 한은 일본의 교육은 크게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학생의 개성을 키워주는 방법
Q
고립되지 않은 개성에 대한 이야기가 와 닿았다. 그렇다면 개성을 살리기 위한 교사의 역할과 학생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 듣고 싶다.
A
교사는 교사 자신도 개성이 있고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된다. 같은 교육 이념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학교는 이래야 한다’, ‘학생은 이래야 한다’는 말들을 하면 된다. 각자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에 학생들은 헛갈릴지도 모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기와 다른 것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체득하게 된다. 바로 그때에 학생의 개성은 싹트고 자리를 잡는다.
꿈을 찾지 못한 학생에 대한 조언
Q
이렇게 자유로운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아직 꿈(18세 여학생)을 찾지 못했다. 이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
A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는 건 당연하다. 내가 대학교수일 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적성검사를 했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20살인지, 21살인지 였던 학생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적성검사에서 승무원 또는 애견미용사가 적합하다고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난 곧바로 “그건 무시하는 게 좋아”라고 대답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겨우 알 수 있다. 나도 직업을 골라야 했을 때 하고 싶은 일보다 가능한 일을 선택했었다. 그건 한 마디로 ‘누군가 이거 할 사람이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고, 그에 따라 내가 ‘제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라고 손을 들었기에 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 그와 같이 물을 때 대부분은 손을 들지 않는데, 나만 손을 들었기에 하게 됐다.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게 아니라, 가능한 걸 선택한 것이다. 미래에 뭘 하고 싶어서 준비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천직이란 단어나 소명이란 단어가 이걸 표현한 단어라 할 수 있다. ‘vocation’은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누군가가 부를 때까지 내가 준비하고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러분이 직업을 선택한다고 생각해선 안 되고, 직업의 문이 열릴 때 비로소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 문엔 손잡이가 없어서 내가 임의적으로 열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 문은 철저히 반대편에서만 열리도록 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학생처럼 직업의 문이 어딨는지 몰라, ‘이 문일까? 아니면 저 문일까?’라고 궁금해 하며, 주의 깊게 바라보고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이 열려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어른의 조건
Q
제대로 된 어른은 어떤 어른인가?
A
‘제대로 된 것’과 ‘어른’엔 정의가 따로 없습니다. 제대로 된 어른이라는 건,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지, 자기 스스로 ‘나는 제대로 된 어른이다’라고 스스로 선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조건이 있으니, 그런 조건을 갖추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살다보니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무언가 부탁하면, 그때야 비로소 ‘내가 제대로 된 어른이 아닐까?’ 생각하는 정도니 말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어른’이란 것도 사전적으로 정의되어 있다기보다, 관계나 상황 속에서 살다가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사 수만큼 교수방법이 있고, 학생 수만큼 배우는 방법이 있다
Q
현천고의 교육방식은 일반적인 학교의 교육방식과 다른데, 두 가지 교육방식이 공존할 수 있나?
A
물론 공존은 가능하다. 가르치는 방식도 다양하듯이, 배우는 방식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게 가장 건강한 학교의 모습이다. 교사 수만큼 가르치는 방법이 있어야 하고, 학생 수만큼 배우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자기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자기만의 방식은 자기만이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의사소통이란 환상을 깨부수기
Q
잘 소통하여 집단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A
소통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중 하나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무엇 하나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 서서히 통하게 만드는 토대를 만들어가는 가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지진이 나서 모든 게 무너진 상황을 상상해보자. 폐허로 변한 그 속에서 돌을 하나하나 다시 쌓아가는 것이 의사소통이라 할 수 있다. 옆에 있는 사람은 99%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같은 사람이 아닌 에일리언으로 보면 된다. 하나도 통하지 않던 사람과 애쓰고 애쓴 결과 하나가 통하게 되고, 하나가 통하니 어느 순간엔 둘이 통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완전히 알 수 없는 게 슬픈 일은 아니다. 대부분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 알 수 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하니 말이다. 그것이 가능성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쌓아 가면 된다. 그러니 완전히 소통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욘 없다. 옆에 있는 에일리언과 나란히 앉아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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