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김종철 -『녹색평론』 20주년 김종철 발행인 인터뷰 본문
죽비로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통증을 느끼게 되는 인터뷰다. 이런 인터뷰는 같이 읽고 느낌을 나눠야만 한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세상인데, 글은 더욱 그래야 한다.
<녹색평론>의 수수하고 화장기 없는 표지가 처음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리고 나도 정말 몰랐습니다. 이 작고 단정한 책이 2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꼬박꼬박 내 책상에 나타날 줄을. 그래요, 정말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자, 그러니 이 말을 꼭 전하고 싶군요. "고맙습니다. 건재하십시오." (서숙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그렇다. 1991년 11월 <녹색평론> 창간호가 대구의 한 인쇄소 에서 처음 세상에 등장할 때만하더라도, 이 잡지가 20년이나 지속될지 아무도 몰랐다. 당시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말한다. "되돌아보면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으나 어느새 20년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녹색평론>은 지난 20년간 줄기차게 '반역'을 꾀했다. 김종철 발행인은 <녹색평론>의 '반역'을 이렇게 말한다. "주류의 가치, 즉 지배적인 제도와 관습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뿌리에서부터 의심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녹색평론>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치, 실천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래서 <녹색평론> 20년의 역사는 단호한, 타협 없는 반역의 역사가 되었다.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에서 대중이 열광했던 성장, 경쟁, 황우석, FTA, 4대강, 원자력 등의 열쇳말을 놓고서 <녹색평론>은 항상 주류의 반대편에서 맞섰다. 그리고 지금 <녹색평론>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의 지향으로 꼽는 '복지'를 놓고도 유보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복지 국가론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복지 국가론이 기본적으로 경제 성장과 생산주의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두고 있는 이상, 그것이 빈곤과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는 방책으로서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복지 국가 논리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극히 의문스럽다.
복지 국가란 국가의 계속적인 세수(稅收) 증가를 전제로 해서만 실현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세수 증가는 경제 성장과 고용의 안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석유 공급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세계 금융 시스템이 뿌리에서부터 붕괴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 계속되고, 전통적인 의미의 산업적 고용이 확대된다는 게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녹색평론>이 이렇게 딴죽 걸기에만 자족해온 것은 아니다. 지난 20년간 <녹색평론>을 통해서 소개된 국내외의 수많은 대안 실험은 다시 수많은 독자의 손에서 새로운 실험으로 이어졌다. 약 1만 명의 <녹색평론> 독자는 이런 실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들의 경험은 다시 <녹색평론>에 녹아들어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녹색평론>은 지난 20년간 더디지만 위기 이후를 준비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녹색평론>이 20주년을 맞은 시점인 지금 자본주의 산업 사회를 지탱하던 두 기둥인 석유 문명과 금융 세계의 균열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제 앞으로 20년, 세상은 어떻게 변하고, <녹색평론>은 또 어떤 역할을 자임할까?
수목은 중력의 힘에 의해 아래쪽으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중력에 역행한다. 생명이란 비협력주의가 아닐까? (균터 안더스)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강행하던 지난 11월 22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녹색평론사 사무실에서 김종철 발행인을 만났다. <녹색평론>의 오랜 독자인 오창은 중앙대학교 교수가 인터뷰어로 나섰다. 다음은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대화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손문상) |
한미 FTA, 이젠 폐기 운동!
오창은 : 먼저 <녹색평론> 창간 20주년을 축하합니다. 한국처럼 인문학 잡지를 독자들이 외면하는 곳에서 1991년 11월호부터 무려 121호를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펴내온 것만도 기념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녹색평론>은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죽비소리 같은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 왔어요.
오죽하면 한 5년 전쯤 소설가 장정일 씨가 한 독서 칼럼에 서 "근 15년 동안 한국 문학이나 문학평론가들은 <녹색평론>을 능가하는 어떤 사회적 의제도 만들지 못했다"라고 단언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책을 통해 세상 읽기를 시도해온 '프레시안 books'가 <녹색평론> 20주년을 기념하는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얘기를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국회에서는 여당인 한나라당이 한미 FTA를 비준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한 한미 FTA 처리를 한 줌도 안 되는 정치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김종철 : 동감입니다. 저는 한미 FTA에 관해서 이른바 '전문가'는 아닙니다. 다만 상식만 가지고도 그것의 문제점을 따져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한미 FTA는 단순히 덩치 큰 놈과 덩치 작은 놈이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정도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의 법제도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가치가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똬리를 틀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이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환경,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가치와 그것에서 파생된 법제도를 한국 사회에 이식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한미 FTA를 시작한 노무현 정부와 그것을 확대한 이명박 정부는 그런 중요한 일을 제대로 된 시민의 의견 수렴도 없이 밀어붙였습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녹색평론>, <프레시안> 같은 매체에서 지난 6년간 여러 양심적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해 왔던 거예요. 사실 <녹색평론>의 편집인으로서 반성도 합니다. 그 어떤 매체보다도 FTA의 문제점을 열심히 지적해왔다고 자부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반쯤 체념한 면도 있었거든요.
더구나 지난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서, 그것의 묵시록적인 의미를 성찰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다 보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한미 FTA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계속해서 추적을 하지 못했어요. 한미 FTA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좀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못한 게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포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내일 분명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한미 FTA를 비준할 거예요. 그렇다면, 그날부터 당장 협정 말소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타박 놓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역사적인 선례가 없는 게 아니에요.
일본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에 가장 역점을 뒀던 부분이 바로 개항 초기에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과 맺었던 각종 불평등 조약을 폐기하는 것이었어요. '이것을 폐기하지 않으면 일본이 살아남을 수 없다'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상당한 성과를 이뤘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외교력도 비약적으로 성장했고요.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한미 FTA가 국회에서 비준, 발효된 다고 넋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국민의 여론을 모아서 한미 FTA를 폐기할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특히 시민들에게 한미 FTA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게 여전히 중요합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이 저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데는 '다수 여론이 우리 편'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테니까요.
오창은 : 방금 한미 FTA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만들어진 미국의 법제도를 한국에 이식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우려를 했어요. 그런데 한 편에서는 '한국이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이런 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특히 정부의 입장이 그렇죠. 그러니 시민도 원래 통상 협정이라는 게 이익을 보는 면, 손해를 보는 면이 두루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막연히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김종철 : 통상 협정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지금 투자자-국가 분쟁(Investor-State Dispute, ISD) 해결 제도를 갖고 논란이 많아요. 이 제도를 놓고 미국 기업도 제소하고, 우리 기업도 제소할 수 있으니 걱정할 게 뭐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아요.
한미 FTA를 계기로 분쟁이 생겼을 때 미국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입니다. 사실상 한미 FTA는 200년 이상 자기들이 만들어온 가치에 기반을 둔 제도잖아요. 분쟁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법제도도 잘 갖춰져 있을 테고, 기업·개인의 노하우도 우리랑 비교할 수 없을 거예요. 어떤 상황이든 우리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겠죠.
우 리도 실력을 쌓아서 미국을 따라가면 되지 않느냐? 그런데 우리가 왜 미국에서, 미국인이 만든 가치와 그것에 기반을 둔 법제도를 무조건 따라야 합니까? 미국의 법제도가 절대선이라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미 FTA를 하기 전에 이런 의문부터 던져보는 게 순서가 아닙니까?
이뿐만이 아니에요. 외국 기업이 ISD 등을 통해서 한국의 공공 정책에 직접 훼방을 놓을 수도 있지만, 더 우려스러운 일은 공무원, 정치인의 자기 검열입니다. 흔히 '규제에 대한 찬 서리(regulatory chill)'라고 불리는 현상이에요. 공무원, 정치인이 외국 기업과 같은 투자자의 눈치를 보느라 분쟁의 여지가 있는 정책, 규제를 애초부터 회피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이미 잘 알려진 예도 있잖아요.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학교 급식에 '국산 농산물' 사용을 강제하려 하자, 외교통상부가 앞장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한다고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어요. 결국 대법원도 학교 급식에 '국산 농산물'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이런 일이 부지기수일 거예요.
'농업 포기'는 '자살 기도'
오창은 : 한미 FTA를 찬성하는 이들조차도 동의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도 '농업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아요. 농업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런 태도는 어떤가요?
김종철 : <녹색평론>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시해온 많은 이들이 제일 걱정하는 부분 중 하나가 그것이에요. 방금 지적한 대로, 한미 FTA를 새로운 '생존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이 한미 FTA를 계기로 한국에서 농업은 사실상 퇴출되리라는 전망을 서슴지 않아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값싼 농산물이 들어오면 시장에서 국산 농산물이 설 자리는 더욱더 좁아질 거예요.
그렇다면, 이미 벼랑 끝에 선 농업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하고 말 거예요. 결국 한국은 농업을 찾아볼 수 없는 홍콩, 싱가포르 같은 사회가 되겠지요. 어쩌면 한미 FTA를 추진하는 이들은 농업 따위야 없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환상일 뿐이에요.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을 냉정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많은 지식인은 공통적으로 '21세기에 생존하려면 에너지와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런 전망에 비춰보면 한미 FTA는 한국의 미래 생존 전략이기는커녕 자살 기도나 다름이 없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폭거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시점에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중심이 되어 한미 FTA를 '날치기' 비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화는 중단되었고, 몇 분간 침묵이 흘렀다.)
김종철 : 아까도 얘기했듯이 자포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한미 FTA를 폐기하는 운동에 온 힘을 다해 나서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한미 FTA에 대해서 장밋빛 환상을 가져왔을지 모르는 시민을 설득하는 일부터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손문상) |
생태주의가 현실주의다!
오창은 : <녹색평론>이 걸어온 20년을 돌아보면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일은 당연해 보입니다. 한미 FTA로 상징하는 한국 사회의 성장주의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이 <녹색평론>을 통해서 진행되었으니까요. <녹색평론>은 비판과 함께 계속해서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라고 강조해 왔는데요.
김종철 : 잠깐만요. 방금 '상상'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저는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요. 흔히 생태주의자를 가리켜 '몽상가'라고 비난을 하곤 합니다. <녹색평론>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은 지식인들이 흔히 이 잡지를 보고 '근본주의', '생태주의' 딱지를 붙일 때도 아마 그 밑에는 현실과는 부합하지 않는 '몽상가의 목소리'라는 폄훼가 깔려 있을 거예요.
오창은 선생님이 지금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웃음) 여기서 확실히 말하지만, 저는 <녹색평론>이야말로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장 과학적이고 실증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봅시다. 지금 세계는 실업 문제, 자원 위기, 기후 변화, 빈부 격차 등 온갖 문제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 해결 역시 난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목전의 위기로 다가온 자원 고갈이 현실이 되어서 석유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경제의 대부분을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 같은 개방 국가에서 시민이 세 끼 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요? 고작 25~26퍼센트 수준의 식량 자급률을 염두에 두면 그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경제학자로 대표되는 이 땅의 주류의 지식인들은 그나마 남은 농업의 기반도 포기하는 게 옳다고 얘기해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자유 시장' 타령이나 하면서요. 이 얼마나 관념의 노예들입니까? 그런 관념의 노예들이 <녹색평론>을 보면서 '몽상가'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옵니다.
저도 한 때는 문학 평론가 행세를 했던 사람이니, 문학 얘기도 잠깐 해볼게요. 저는 평소 시가 '갱도 속의 카나리아'나 혹은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지금 한국 시를 보세요. 말 그대로 '관념의 유희'에 빠져서, 자기들끼리 자화자찬하느라 급급합니다. 위기의 징후가 곳곳에서 보이는데, 그것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시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이런 상황에서 '현실을 직시하자'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왔던 게 지난 20년 <녹색평론>의 역사였어요. 실제로 20년 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상황이 악화되었어요. 그 때 <녹색평론>이 미래형으로 얘기했던 것들이 지금은 바로 하나둘 씩 현실이 되고 있으니까요. <녹색평론>은 유토피아를 추구해온 게 아닙니다. 다가올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해왔을 뿐이에요.
어용·무용 교수만 남은 대학
오창은 : 한국이 사로잡힌 또 다른 환상이 '핵'이 아닌가 싶어요. 최근에 이명박 정부는 3·11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2016년까지 '세계 3대 원자력 수출 강국'을 지향할 뜻을 밝혔어요. <녹색평론>, <프레시안> 등에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줄기차게 핵 발전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만, 이명박 정부는 계속 반대로만 가고 있어요.
최근 한국연구재단에서 원자력 진흥 및 안전을 위한 연구에 2009년 1106억 원, 210년에 1863억 원, 2011년에 2034억 원을 지원한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핵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일군의 지식인, 정치인, 관료들에 의해서 오랫동안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핵의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먼저, 또 강하게 지적해온 입장에서 요즘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김종철 : 한미 FTA도 마찬가지고, 핵 발전도 마찬가지지만 요즘 새삼 지식인의 역할을 깊이 숙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보통 사람이 한미 FTA나 핵 발전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의 대안을 고민하기는 쉽지 않아요. 지식인이 그들의 지혜를 북돋고, 실천을 독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아니 지금 세계는 그런 지식인이 극히 드물어요.
지난 11월 11일 '탈핵 에너지 교수 모임' 출범식에 갔었어요. <프레시안>의 채은하 기자도 취재를 왔더군요. 그 자리에서 주최자가 제게 한 마디 하라고 합디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한국에는 지금까지 '어용(御用) 교수'와 '무용(無用) 교수'밖에 없었는데, 드디어 '유용(有用) 교수'가 되려는 사람이 90명이나 있어서 기쁘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연구비에 관심을 가지는 교수는 무조건 어용 교수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사실은 농담만은 아니었습니다. 핵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에 현대 과학은 기본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지금 정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과학이 어디 있나요?
그 런데 따지고 보면, '대학의 역사'가 바로 '어용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예전에는 나도 그랬습니다) '대학은 고상하다'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어요. 아닙니다. 대학은 출발부터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었어요. 최초의 대학이라고 꼽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과 프랑스의 파리 대학이 어땠나요? 학생, 교수 중심이라는 차이는 있었지만 그 내용은 당대의 실용 학문으로 채워져 있었어요.
그 때 대학에서 가르쳤던 신학, 법학, 의학은 철저히 지배 권력에 봉사하는 실용 학문이었습니다. 신학 하면 요즘에야 최고의 형이상학을 논하는 학문처럼 여겨지지만, 교회가 지배하는 그 때만 하더라도 교회의 운용 방법이든지, 그 실용적인 방법을 배우는 학문이었어요. 바로 이런 어용 조직이 우리가 오늘날 'University', 대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대학은 계속해서 당대의 세속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어요. 오죽하면 칸트가 "교수는 정부의 도구"라고 오늘날 들어도 수긍이 가는 얘기를 이미 18세기에 했겠어요. 헤겔이 그토록 자신의 철학의 중심에 국가를 놓았던 것도 '대학 교수'라는 그의 실존적 조건을 염두에 두고 살펴야 합니다.
그나마 세계사 속에서 대학이 세속 권력과 거리를 가졌던 시기는 아마 1968년 이후의 아주 짧은 시기 동안이었던 것 같아요. 미국의 베트남 전쟁 때 세계의 양심의 목소리가 대개 대학에서 나왔으니까요. 그러나 그 잠시 동안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학은 그 기원부터 최근까지 어용 조직, 속물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대학 법인화 문제를 놓고, '대학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외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얘기에요. 대학의 역사를 염두에 두면 '서울대학교 법인화' 같은 움직임은 그나마 쓰고 있었던 가식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아주 솔직한 일인 거죠. 사실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역시 일제의 하수인을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었잖아요?
오창은 : 대학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선생님의 통렬한 지적에 감히 반박을 할 수가 없군요. 왜냐하면, 지금 대학과 그곳에 몸담고 있는 교수와 같은 구성원의 현실이 딱 그러니까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녹색평론>은 대안 교육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었습니다만….
김종철 : 맞아요. 중요한 것은 시민이 주도해 '자주 학습 조직(自主 學習 組織)'을 만드는 일이에요. 예를 들어서, 일본의 저명한 시민과학자 중의 한 사람인 우이쥰(宇井純) 교수가 실천적으로 보여준 선례가 있습니다. 우이쥰 교수는 1950년대에 도쿄 대학 이학부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과학자였는데, 1956년에 미나마타에서 발생한 공해병의 진상을 밝히는 일에 자진해서 뛰어들었다가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선배·동료 연구자들로부터도 소외당합니다. 그래서 그는 젊은 시절에 조수로 임명되었지만, 5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승진을 하지 못하고, 쭉 조수 신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다 늙어서야 오키나와 대학의 초청을 받아 정교수로 지내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지요.
그런데 우이쥰 교수는 야간에 비어 있는 대학 강의실을 활용하여 일반 시민을 상대로 '자주 강좌'를 20년 동안이나 계속했습니다. 나중에 그 강의록이 <공해원론>이라는 제목으로 수십 권 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강좌를 통해서 많은 시민이 정부, 기업, 대학, 언론이 말하지 않는 세상의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거죠. 다시 말하자면, 자주 학습 조직을 시민이 직접 만들 때, 그곳에서 시대를 선도하는 양심적인 연구와 발언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죠.
지금 대학에 몸담은 교수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생각해 봐야 해요. 과연 자신이 인류 사회를 위해서 정말 쓸모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연구는 정부, 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일 겁니다. 과학자라면 거의 100퍼센트 그럴 테고요. 오죽하면 DNA의 염기 비율을 밝힌 어윈 샤가프 같은 과학자가 "지금 과학자는 쓸 데 없는 연구를 너무 많이 한다"고 자조적으로 고백했겠어요.
그러고 보면, 알프레드 노벨은 두 가지 큰 죄를 지었다고 볼 수 있어요. 첫째 죄는 자신이 고백한 대로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것입니다. 둘째 죄는 노벨상을 만들어서 전 세계 과학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든 거예요. 과학자들이 인류를 위해서 정말 필요한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남보다 빨리 노벨상을 선점하려고 경쟁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죠. 그런데 이런 노벨상을 받겠다고 안달하는 시인, 소설가는 또 뭡니까?
ⓒ프레시안(손문상) |
<녹색평론>이 서울로 온 까닭은…
오창은 : 이제 화제를 바꿔보겠습니다. 1991년 창간해서 17년간 대구에서 발행하던 <녹색평론>이 지난 2008년 11월 서울로 옮겼습니다. 김종철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영남대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먼저 올라왔어요. 그러고 보니, <녹색평론>의 기반이 대구에서 서울로 옮겨진 것도 길게는 7년, 짧게는 3년이나 되었네요.
지금 이 시점에서 <녹색평론> 20년을 돌이켜보면 굴곡이 있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독자 모임이 생긴 시점, 대구에서 서울로 이전한 시점과 같은….
김종철 :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당시에는 또렷하게 인식을 못했던 중요한 일이 지나간 후에야 또렷하게 부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돌이켜보면, 1991년 처음 <녹색평론>을 창간할 때는 생각보다 감정이 앞섰어요.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계속 이러고 다녔으니까요. 그래서 <녹색평론>을 앞뒤 안 가리고 시작했습니다.
<녹색평론>을 창간하고도 10년 넘게 대학에 있었습니다만, 대학에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여겼으면 왜 대학 밖에서 잡지를 만들었겠어요. <녹색평론>을 시작했을 때는, 우이쥰 교수가 했던 것과 같은 자주 학습 운동을 알지 못했습니다만, '시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움직이는 대학을 만들자' 이런 생각이 어렴풋이 있었어요.
<녹색평론>은 그런 생각이 비슷한 지식인을 결집시키자는 의도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역량도 부족했고, 또 합심해서 같이 일할 만한 동지도 별로 없었어요. 초기에 <녹색평론>이 외국 자료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제약 때문이었습니다.
솔직하게 얘기를 하지요. 사실 한국에서 '서울'과 '지방'은 그냥 중심과 변두리가 아니라 '하늘'과 '땅'입니다. 발행인이자 편집인인 제가 7년 전에 대학을 그만두고 대구에서 서울로 옮겨온 다음부터 <녹색평론>의 변화가 컸어요. 우선 <녹색평론>이 담는 정보의 질과 양이 달라졌습니다.
대구에서는 학교, 녹색평론사를 왔다 갔다 하며 책, 글을 읽는 게 전부였어요. 하지만 서울에 오고 나서는 힘이 닿는 대로 여기 저기 심포지엄에도 참여하고, 사람도 만나고, 자료도 확보합니다. 제 자신이 놀라요. 책과 글을 통해서 인식한 현실과 걸어다니면서 파악하는 현실이 상당히 다르거든요. 덕분에 <녹색평론>은 7년 전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어요.
3년 전에 녹색평론사까지 아예 대구에서 서울로 옮겨오면서 비난도 많이 받았어요. 가만히 있었습니다만, 실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어요. <녹색평론>이 하는 일은, 도시 사람에게 농(農)적인 생활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에요. <녹색평론>이 이미 농사짓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농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는 없는 거죠.
농적 가치를 잊고 사는 도시 사람을 향해 발언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면 당연히 <녹색평론>이 있어야 할 곳은 지역이 아니라 서울이지요. 그 전에는 직장이 대구에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구에 있었던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녹색평론>이 서울로 옮겨온 것은 그간의 숙성 기간을 거쳐서 제대로 싸워보자, 이런 마음가짐이었어요.
세상을 바꾸는 <녹색평론> 독자들
ⓒ프레시안(손문상) |
김종철 : 자기 돈 내고 보는 잡지의 창간 축하 광고를 독자들이 주도해서 내는 일을 본 적이 있습니까? <녹색평론> 독자 모임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일입니다.
< 녹색평론>을 펴내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고, 그 존재 자체를 무엇보다도 큰 압력으로 느끼고 있어요. 평소에는 독자 기고가 활발하지 않아서 조바심을 가졌었는데, 이번 2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서 독자의 참여 열기를 한 번 더 확인했어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지난 12일 2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는데, 200명이라도 모일까 걱정했는데 400명이 넘는 독자가 모였어요.
이 렇게 격려와 질책을 주는 <녹색평론> 1만 명 독자들이 있었기에 지난 20년을 버텨온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녹색평론> 독자를 자랑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한 예로, 한미 FTA 문제가 막 부상한 지난 2006년 9월 9일에 일부 독자들이 주도해서 전국 독자 모임을 열어서 그것의 문제점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어요. <녹색평론> 독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창은 : <녹색평론>은 어떤 잡지보다 다양한 독자가 존재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시골의 농민부터 강남의 기업인까지…. 그러다 보니 <녹색평론>의 변화에 이견을 갖는 독자도 있어요. 특히 최근에 <녹색평론>이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초기의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약해졌다, 이런 지적도 있어요. 또 전체적으로 강퍅해졌다, 이런 인상을 받는다는 이도 있습니다.
김종철 : 사실 초기 독자 일부가 <녹색평론> 정기 구독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20주년 기념행사 때도 어떤 독자가 "생태 신학, 생태 윤리, 생태 철학 쪽에 대한 배려가 초기보다 못하다" 이런 지적을 하기도 했어요. 언급했듯이 예전에는 감성적인 접근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논리적인 비판이 강하다는 지적이 안팎으로 있습니다.
감성적인 접근이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이 두 가지의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게 바로 편집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녹색평론>에서 대안적인 문화·예술 담론에 관심이 많아요. <녹색평론>이 위기의 징후를 포착하고 대안을 구성하는 힘을 가진 문학, 영화, 예술 등의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힘써보려고 합니다.
후쿠시마 이후, 대안 운동의 방향은?
오창은 : 최근에 <녹색평론> 지면에 부쩍 경제 담론이 많아졌어요. 김종철 선생님이 최근 몇 년간 금융 문제와 기본 소득 등과 같은 경제 담론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최근 일부 독자들이 <녹색평론>에 대해서 갖는 생경함은 이런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김종철 : 생태주의자가 '돈', '돈', '돈' 하니까 낯설겠죠. (웃음) 생각해 보세요.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생태주의자는 세상을 관념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봐야 한다고요. 세상살이의 근간이 뭔가요? 바로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경제 성장을 멈춰라" 하고 아무리 구호로 외쳐봐야 소용이 없어요. 사실 그간 생태주의자는, 앙드레 고르 정도를 빼놓고는, 이렇게 구호만 외치는데 그쳤어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성장 경제'를 지양하고 '순환 경제'로 가야하는데, 그 순환 경제의 모습은 무엇인가? <녹색평론>은 몇 년 전까지 '농업 중심 사회'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농업 중심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런 사회로의 이행은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바로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해요. 그 답을 찾느라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고 최근에야 그 가닥을 잡은 느낌입니다. 저는 우리의 삶을 옥죄는 핵심 원인이 바로 돈(화폐), 즉 금융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강의를 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길게 설명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자 놀이'로 유지되는 금융 권력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어떤 대안도 무기력한 독백일 따름입니다.
실제로 금융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다양한 모색이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어요.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왜 이런 고민을 소개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에서는 고작해야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 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토빈세 정도가 알려져 있습니다만 세계적으로는 훨씬 더 근본적인 대안이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은행을 공공화하는 거예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에 미국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어요. 은행의 공공화는 중요합니다. 지금 민간 은행이 돈놀이를 통해서 얻는 막대한 이익은 전부 주주에게 귀속이 됩니다. 즉, 공적 이익이 사적 이익으로 전유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민은 빚지고, 중소기업은 망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공공 은행에서는 은행 업무를 통해서 생기는 막대한 이익을 전부 공익 자금으로 만들 수 있어요.
바로 이런 공익 자금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바로 기본 소득 같은 획기적인 복지 실험을 할 수 있어요. 기본 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재산 상태, 취업 의사에 상관없이 무조건 일률적으로 일정한 돈을 나눠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럽의 복지 국가와 다르게 재산 상태, 취업 의사 등을 심사, 관리하고 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공무원이 필요 없어요.
유럽 복지 국가는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관리 사회'로 귀결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국가는 시민을 관리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관리 비용이 늘어납니다. 반면에 기본 소득은 복지 제도와는 다르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고 관리 비용을 대폭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도 이 기본 소득 제도를 주장하는 이들이 꽤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그 재원을 세금으로 제한합니다. 세금과 연계된 기본 소득 제도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당장 세금을 올리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더 많은 세금을 거둬서 기본 소득 제도를 하자는 발생에 과연 누가 호응할지 미지수입니다. 반면에 공공 은행에서 마련한 재원으로는 세금을 올리지 않고도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어요.
오창은 : 사실 <녹색평론>이 '돈', '돈', '돈' 해온 것은 낯선 일은 아니에요. (웃음) 이미 1990년대부터 '지역 화폐'와 같은 대안 경제를 만들려는 실험에 주목해 왔었어요. 다만 지역 화폐가 지역 차원에서의 실천이었다면, 요즘 얘기되는 기본 소득 등은 중앙 차원의 실천이라는 차이가 두드러지긴 합니다.
김종철 : 사실 지역 화폐 얘기를 할 때만 하더라도 은행의 공공화 같은 금융 제도까지 고민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지역 화폐 운동, 협동조합 운동 등을 통해서 지역에서 대안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되리라는 전망을 소박하게 가졌을 뿐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전형적인 아나키스트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셈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야가 넓어진 느낌입니다. 중앙과 지역이 그렇게 이분법으로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파악해야 하는데, 저는 그 메커니즘의 핵심에 현대 금융 제도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앙과 지역을 같이 생각해야 된다는 문제의식은 최근의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더욱더 깊어졌어요.
후쿠시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일본 중앙 정부의 핵 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 낳은 끔찍한 사고로 수십 년간 지역에서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하던 공동체가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났어요.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목숨을 끊은 사람이 유기 농업을 통해서 지역 먹을거리(local food)를 공급하던 농민이라는 것은 상징적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
지금, 왜 녹색당인가?
오창은 : 김종철 선생님께서는 최근에 녹색당 창당 준비 모임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녹색당에 거리를 둬온 터라 그 배경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아요. 방금 한 얘기를 들어보니, 금융 문제, 에너지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중앙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고민 속에서 녹색당 참여를 결심한 것처럼 보입니다.
김종철 : 사실 2~3년 전까지는 녹색당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어요. 중앙 정치에 관여하는 것보다 더 시급히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금융 문제, 에너지 문제 등을 고민하면서 점점 중앙과 지역의 관계를 깊이 숙고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녹색당 참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화석연료와 원자력 중심의 산업 시스템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한 상태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온갖 것들을 고려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짜는 역할을 누군가는 맡아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녹색당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원으로서 녹색당의 이론을 뒷받침하고, 더 나아가 녹색당을 시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생각이에요.
오창은 : 한국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녹색당을 고민하는 이들이 전범으로 삼는 것이 독일 녹색당입니다. 그런데 독일 녹색당의 사회 경제 정책은 사실은 그간 독일 정부가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어요. 실제로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 독일 녹색당이 인기를 잃은 것도 그런 우편향 때문이었고요.
김종철 : 독일 녹색당이 보인 한계는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것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1983년에 독일 녹색당이 연방 의회에 진출했을 때, 이 녹색당과 연대할 정당은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도 없었습니다. 만약에 그 때 프랑스와 같은 곳에서도 녹색당의 세가 좀 더 셌더라면 두 당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애초의 정체성을 지키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 금 2008년 금융 위기,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 성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다른 세상에 대한 열망을 담는 정당으로 녹색당이 부상하고 있어요. 아시아에서도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녹색당이 태동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이런 녹색당이 국익을 넘어서 연대하고, 견제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주체가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이들이 '몽상'이라고 비판받는 여러 가지 대안을 동시다발적으로 제시하고, 또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면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변할 수도 있어요. 물론, 아직은 갈 길은 멀지만요. 당장 저는 한국에서도 독일, 뉴질랜드처럼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 대표제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헌법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선거법이 더 중요합니다. 국회에 '양아치'들만 가득하면 아무리 좋은 헌법이 있어도 무용지물입니다. 국회에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제대로 된 국회의원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저는 그 유력한 대안이 비례 대표제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은 자기가 선호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그 투표율대로 정당이 의석수를 나눠 갖는 식으로요.
지금 복지 국가 연대를 얘기하는데, 나는 그것만큼이나 선거 제도 개혁을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독일처럼 전체 의원의 50퍼센트를 비례 대표제로 하는 정도로만 선거 제도를 개혁해도 정치가 확 바뀌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녹색당이 활동할 여지도 커지고, 그 결과 세상이 바뀔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지요.
지역과 중앙을 바꾸는 이중 전략
오창은 : 최근에 사카이 다카시(酒井隆史)의 <통치성과 자유>(오하나 옮김, 그린비 펴냄)를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안토니오 그람시가 얘기한 '진지전' 이야기가 잠깐 언급됩니다. 사카이는 이제 '진지전의 효력이 무력화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한정된 공간과 장소에 의존하는 싸움이었다'고 말합니다. 즉, 지금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이에요.
저 는 이런 사카이 다카시의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녹색평론>과 그 독자들이 해온 것도 '진지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카이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그런 진지전이 좀 더 단일한 대오로 모아질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선생님께서 최근에 중앙과 지역을 두루 고민하면서 실천하려는 것도 이런 사카이의 지적과 맞닿지 않을까요?
김종철 : 글쎄요. 사카이의 책을 읽지 못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위르겐 하버마스가 얘기했던 '생활 세계의 식민화'와 비슷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진지전'/'기동전' 이런 식의 구분 자체가 과연 유용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지역/중앙의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것 역시 그런 구분 자체의 유용성을 묻는 것이고요.
저는 지역에서의 실천, 그러니까 지금까지 <녹색평론>과 독자들이 해왔던 실천, 사카이의 표현대로라면 '진지전'이 지금 여기서 무용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카이의 생각은 상당히 과장돼 있어요. 왜냐하면, 아무리 자본주의가 극성을 떨어도 어디나 틈은 있기 마련이거든요. 이런 틈을 포착하지 못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하니까요.
실제로 그 틈은 곳곳에 있어요. 예를 한 번 들어볼게요. 며칠 전에 광주에 갔더니, 지역 운동을 해온 친구들이 몇 년 전부터 고민해온 지역 화폐를 만들었더군요. 광주 시민은 재활용품을 수거해서 가져오면 '사랑 화폐'라는 이 화폐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은 이렇게 구한 지역 화폐를 지역 농민과 먹을거리를 직거래하는 농민 장터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광주시는 농민들이 시민으로부터 받은 '사랑' 화폐를 진짜 돈으로 교환을 해줍니다. 왜냐하면, 재활용품 수거를 시민이 대신 해줌으로써 애초에 그 항목에 책정된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역 농민은 안정적인 매출이 생겼고, 시민은 질 좋은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시도 재활용품 수거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주니 손해 볼 게 없지요. 회수율은 오히려 늘었다는군요.
장기적으로는 광주시에서 농민 장터를 매개로 지역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교류하는 지역 먹을거리 체계(local food system)가 자리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성공 여부를 속단하기는 이릅니다만,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의 작은 틈을 파고들면 얼마나 여러 가지 실천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최근에 지역 운동뿐만 아니라 중앙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중앙/지역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새로운 실천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이지 지역이 중앙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중앙 정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지역과의 연계를 잃지 않는 것이 건강한 중앙 정치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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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0대가 해야 할 일
오창은 : 아까 잠시 현대의 심각한 문제로 실업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지금 실업 문제로 가장 고민하는 이들은 바로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하려는 대학생을 비롯한 20대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김종철 선생님께서 대학에서 오랫동안 가르쳤던 학생들이기도 하고, 또 <녹색평론>의 다음 세대 독자이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습니까?
김종철 : 실업 문제 즉, 고용 문제 정말로 심각합니다. 김진숙 씨가 크레인에서 무사히 내려온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에요. 앞으로도 정리 해고를 둘러싼 이런 갈등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앞으로 산업 국가가 경제 성장이 불가능해지고, 자원 고갈 같은 한계에 부딪치면 고용을 늘리기는커녕 줄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가끔 젊은이들을 상대로 강연할 일이 있습니다. 다들 풀이 죽어 있어요.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둡니, 하고 물으면 하나 같이 취업 걱정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그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한숨부터 나와요. 지금 이렇게 자기들끼리 경쟁을 한다고 한들 취업할 때의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거든요. 대학생 20대도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를 바꾸는 실천에 나서야죠. 당장 앞에서 언급한 기본 소득 같은 제도를 시급히 도입하는 게 중요합니다. 앙드레 고르 같은 이들이 제안했던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도 임시방편일 뿐이에요. 산업 현장에서 질 좋은 일자리가 급속히 줄어들면 결국에는 생활 임금을 보장받기 위한 노동자 간의 무한경쟁으로 귀결될 게 뻔해요.
반면에 기본 소득은 다르죠. 모든 시민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비를 할 것이기 때문에 내수 시장이 붕괴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오로지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소득이 목적인 강제 노동에 종사하지 않아도 되는 시민이 많아지면, 질 나쁜 일자리가 퇴출되고 상대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기는 긍정적인 효과도 생길 거예요.
▲ 오창은 중앙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
오창은 : 사실 <녹색평론> 20주년은 단지 한 매체가 축하받을 일로 한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난 20년간 <녹색평론>이 한국 사회에서 고민해야 할 의제를 적절하게 제시하고 또 공통의 의제를 만들어 과정을 살피면서, 저 역시 지난 20년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녹색평론>이 그동안 제시했던 농업의 가치, 핵에너지의 문제점, 한미 FTA의 문제점, 공생공락의 삶의 가능성 등은 우리가 결코 놓아서는 안 될 의제로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 고민해봐야할 것들입니다. 김종철 선생님과 더불어서 함께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를 탐색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다시 한 번, <녹색평론> 20주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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