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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진학하려면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 심지어 이제는 특목고가 아니면 경쟁력이 없다고 말하는 시대다. 하지만 박솔바로(20) 학생은 특성화고등학교인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계고 특별 전형으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머리 잘 썼다’‘입시 전략의 성공’으로 폄하하는 이도 있지만, 중요한 건 솔바로가 고등학교 진학 이후 진정한 공부의 재미를 알았다는 점이다. 일등 공신은 아버지. “입시 부담에서 아이를 내려놓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소신이 공부 역전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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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 위한 틈새 전략? 아이 위한 소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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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로에게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를 권유한 이는 아버지 박준규(45·전직 초등학교 교사, 내년 개원 예정인 대안학교 준비 중)씨다. 그는 초등학생 때는 하위권, 중학교 들어가서는 반에서 10등 정도 실력을 유지하던 아들에게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전문계 고등학교를 추천했다. “머리 잘 썼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학을 염두에 두고 한 선택은 아니었어요. 당시엔 의식동원(醫食同原)이란 말이 화두였거든요. 고등학교에서 충분히 기량을 닦아 사회생활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이 진심이라면, 박준규씨는 정말 평범한 아빠는 아닌 듯하다. 엄마의 생각은 어땠을까? 서계남(46·초등학교 교사)씨는 “우리 사회에서 고졸로 생활하긴 어려움이 많다는 생각에 처음엔 반대했어요. 막연히 고등학교 가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죠”라고 했다. 주변에서도 인문계에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만류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최종 선택은 아이의 몫. 솔바로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 진학으로 결정했다. 이유는 불순한(?) 추측대로 대학 가기 수월할 것 같다는 계산이 아니라 순수한 소신이었고, 아버지의 조언을 100퍼센트 신뢰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요즘 같은 세상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박준규씨의 얘기다. “나중에라도 대학에 가고 싶으면 얼마든지 길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간 아이들은 공부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잖아요. 내 아이는 거기서 벗어나 책도 많이 읽고, 입시에 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입시 부담에서 아이를 놓아준 일은 지금 생각해도 제일 잘한 일 같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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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욕망은 대부분 부모의 욕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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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박씨는 교육 현장에 종사하면서 아이들 교육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불안감이라는 사실을 느꼈다고 말한다. 문제는 불안감이 심해지면 두려움이 된다는 것. 공부 잘하는 애들도 그 두려움이 있더라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불안감, 두려움을 가질 때는 대부분 현실과 욕망의 간극이 넓을 때죠. 그런데 아이들의 욕망이라는 게 거의 부모의 욕망이거든요. 내 현실과 부모 욕망의 간극이 넓다고 생각하면 불안감을 갖더군요.” 마음이 편해야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박준규씨의 교육 지론. 지금은 부족하지만 장래에는 분명이 잘 될 거라는 자신감,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실패해도 주저앉지 않는다는 얘기. 그는 “부모의 욕망을 조절해줘야 한다. 심지어 부모의 욕망을 가려서 아예 없는 걸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솔바로에게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 물어봤다. “한번도 성적 때문에 야단친 적 없는 아빠, 내가 고민할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란다. 아이를 위해 부모의 욕망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아빠, 솔바로의 아버지가 바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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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위 입학 성적이 전교 1등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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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로가 고등학교 원서를 쓸 당시 그 학교 경쟁률은 4.7대 1이었단다. 당시 입학 기준은 철저히 중학교 내신으로만 지원하는 상황이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솔바로의 입학 성적은 그 학교에서도 최하위에 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입학 후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3등을 차지한 것. 덕분에 ‘진보상’을 받았는데, 그 상과 칭찬이 솔바로에게 긍정적 자극이 되었다. 그 후 미국 교환학생으로 가기까지 솔바로는 전교 1등을 도맡아 했다고 하니, 눈앞의 성적만 보고 아이를 다그칠 일이 아니라 아이의 학습 잠재력을 키워주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아버지 박씨는 “아이가 공부 중압감에서 벗어난 뒤 더 열심히 공부하더라”며 “불안감을 없애준 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진단했다. 엄마 서계남씨의 말마따나 “그전에는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서는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했다”는 것. 물론 학교에서도 계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들어가 첫 영어 시간인데, 호랑이 같은 영어선생님이 교과서 본문을 통째로 외워 오라는 거예요. 아이들이 다 불평했는데, 나도 한번 칭찬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일로 칭찬받은 뒤 자신감을 얻었고, 한번 칭찬을 듣고 나니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서 공부에 의욕을 가진 것 같다고 솔바로는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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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1년 경험으로 영어 자신감 생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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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열심히 하면 게임 끝이라고 하던가? 공부에 자신감이 붙고 나니 자꾸만 새로운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2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다녀온 것도 그 예다. 교환학생 역시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아버지가 제안했고, 아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 전에는 특별히 영어 공부를 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미국 가서는 숙제도 못 챙길 정도였지만, 1년 과정을 마칠 무렵엔 ‘미국사’를 제외한 전 과목이 수석이었다. 그리고 교환학생 1년 경험 후 영어 성적은 외고 아이들만큼 나왔다고 한다. 1년 교환학생 경험만으로 영어 실력이 단숨에 그렇게 쌓일 수 있나? “처음엔 정말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그런데 홈스테이 하는 집의 가족을 잘 만난 것 같아요. 제가 요리학교 출신이라 요리를 잘하잖아요. 그 집 식구들에게 한국 요리를 해주면서 친해지고 영어 실력도 많이 늘었어요.” 솔바로 얘기를 듣고 보니, 싫다싫다 하는 초등학생 어린 자식을 굳이 학원에 보낼 필요가 있겠냐는 반성이 든다. 어쨌든 교환학생 1년 경험으로 영어 자신감이 생기고 나니, 그 다음은 수학만 잘해서 입시에 도전해보자는 목표가 섰다. 고3 1년 동안은 수학 전문 학원에 다니며 입시를 준비했다. 다져진 영어 실력에 수학만 보충하면 입시에서도 승산이 있을 거란 자신이 붙었기 때문이다. 필요성만 느낀다면 언제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은 게 공부라더니, 과연 불변의 진리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한동안 공부를 더해서 재수해볼까도 고민했다는 솔바로. 요즘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방송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목표와 고등학생 시절 특기를 살려 신개념 요리 카페를 경영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다. 솔바로를 보면서 자신감이 자녀의 학습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엄마의 부추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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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최고의 멘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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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버지의 조언이 많은 영향을 미친 케이스다. “아버지는 나에게 새로운 성장과 힘을 주었어요. 내가 안고 있는 어려운 과제들을 아버지와 함께 풀어나갔죠.” 솔바로는 아버지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결정하고 행동할 때 아버지의 조언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인정한다. 솔바로는 지금도 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의논하고 결정한다. 혹시 너무 의존적인 건 아닐까? 박준규씨는 “아이 스타일에 따라 부모의 조언도 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무조건 “네가 알아서 해!”보다는 부모와 대화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안정을 찾는 아이가 있고, 반대로 알아서 하게 놔두는 게 효과적인 아이도 있다는 것이다. 솔바로가 전자라면, 지금 6학년인 딸은 후자에 속한다고 말한다. 자식의 수강 신청까지 대신 해주는 헬리콥터 부모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내 자식이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부모’를 떠올린다면 그 부모는 정말 행복한 부모가 아닐는지. 요즘은 초등학교 5학년만 돼도 아버지와 대화할 일이 없어진다는데, 스무 살이 된 아들과 수많은 고민의 파도를 넘어온 아버지의 지혜가 존경스럽다.
[출처] 소신교육 보고서|작성자 댓글짱
취재 강현정 리포터 sabbuni@naver.com 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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