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다르다 2호 - 1. 2호를 준비하며, 학생들과 편집자에게 본문
이 글은 『다르다』 2호를 기획하며, 편집장으로서의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며칠 전에 『다르다』 2호에 대한 교사들의 여러 의견을 들으며 제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반론은 당연히 환영합니다.
모든 학생의 글이 실리는 『다르다』 2호
『다르다』 2호를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2호의 컨셉은 ‘이미 카페에 올라온 각 학생의 글을 모아 책으로 만든다’라는 것이다. 중간 중간에 기획기사나 개인기사가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큰 줄기는 각 학생의 글을 갈무리하여 싣자는 이야기다.
이 의견에는 100% 동의한다. 단재학생들이 기존에 쓴 글들은 충분히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당연히 책이란 것으로 물화되기 위해서는 수정하거나 보충하는 후속작업이 있겠지만, 모든 단재학생의 글이 『다르다』 2호에 실린다는 데엔 변함이 없다.
두 권의 <다르다>가 나왔다. 이런 경험들이 우리의 자기위안에서만 끝나지 않길 바라며.
『다르다』 2호의 문제점
하지만 문제는 학생 자신이 선정한 모든 글을 실어야 하느냐는 점이다. 물론 무가지처럼 여러 내용을 뒤죽박죽(물론 무가지도 나름의 편집 방향이나 기사 배치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러나 그냥 보기엔 어수선해 보이니 하는 말이다) 넣을 수도 있다. 이미 책 제작비가 확보된 이상 페이지수를 무한정 늘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제작비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그건 어떤 작업에 대해 무책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펴낸 책이 누구에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도 문제다. 학생 입장에선 내 글이 책으로 나왔다는 게 뿌듯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들어간 정성이나 돈에 비해 그런 뿌듯함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이 때 남는 건, 껍질만 남은 종이 더미일 수밖에 없다.
베어낸 나무의 가치가 있는 『다르다』 2호를 위해
그렇기에 『다르다』 2호를 좀 더 가치 있는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한 번 보고 나서 휙 던져버리는 책이 아니라, 언제고 다시 봐도 의미가 있는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질리도록 본 『어린왕자』와 같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한 책은 아니더라도, 한 번 보고 책장에 꽂아두는 책은 되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이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낼 가치가 있는가?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윤구병 선생님. 그의 삶의 철학, 그리고 삶의 방식, 그게 나에겐 과제다.
이 말은 보리출판사 사장이신 윤구병 선생님이 출판사 운영지침이라며 한 말이다. 무분별하게 책이 나오고 활자공해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거기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신념을 담은 말이다. 그렇다, 윤구병 선생님의 이 말은 그 때 이후로 나에게 하나의 지침이 되었다.
글에 정성을 기울이는 저자와 제 가치를 부여하는 편집자
그래서 정작 중요한 건 학생들의 글이 ‘무조건’ 실리냐 마냐 하는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연 가치가 있는 글이냐 하는 것이리라. 한 권의 책이 그 책을 만드는데 쓰인 나무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 저자는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를 놓듯 글을 써야 하며 편집자는 전체적인 흐름에 유의하여 글을 다듬어야 한다. 저자와 편집자의 그런 열정만 확보된다면 글을 빼느냐, 넣느냐 하는 문제는 화사첨족식畵蛇添足式의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글에 가치를 부여하는 두 존재, 편집자와 저자
책이 한 권 만들어졌다. 이 때 우리가 주의 깊게 보는 건, ‘이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쓴 사람만이 책의 주인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면서, 편집자는 변두리인으로 내몰리고 있다. 저자가 갑의 위치로 편집자는 을의 위치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책이란 편집자와 저자(위와 같은 인식 때문에 이 글에선 편집자를 오히려 앞에 넣었다)의 유기적인 관계맺음에 의하여 탄생한다. 저자가 책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편집자는 그 콘텐츠가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를 조립한다고 해보자. CPU는 최고 좋은 것으로, GPU는 중간 것으로, 메모리는 1G로 샀다. 이걸 조립하면 성능은 보잘 것 없는 컴퓨터가 되고 만다. CPU, GPU, memory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컴퓨터는 최상의 기능을 발휘할 수도, 돈만 낭비하는 최악의 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처럼 글과 책도 마찬가지다. CPU, GPU, Memory가 저자의 글이라면, 그걸 최적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사람은 편집자다. 그렇기에 편집자와 저자의 관계는 동등하며 서로의 소통을 전제로 최고의 가치를 만들고자 하는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보면 저자와 편집자의 관계가 보인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 뿐 아니라, 단재 친구들까지 편집자를 깎아내리는 일이 흔하다. “『다르다』 편집을 한다고, 너 앞으로 고생길이 열렸다.”라고 하는 건 애교이고, “뭐 하러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냐?”라며 편집자의 가치를 무시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편집자를 무시하는데 책에 실릴 자신의 글이 제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자신의 글이 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편집자와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며,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편집자의 의도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관계 속에 나오는 책은 윤구병 선생님이 말한 대로 ‘이 책이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낼 가치가 있는가?’에 긍정적인 답을 주는 책이라 믿는다.
단재학생들과 편집부원들에게 바란다
단재학생들에게
1. 자신의 글을 선정할 때, ‘이 글이 책에 실릴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며 선정하길 바란다.(10월 24일까지 세 편 선정하여 게시판에 올릴 것)
2. 편집자를 무시하지 말고 애써 『다르다』를 깎아내리지도 말고, 자신의 글을 맡게 된 편집자와 소통하려 노력하여 최상의 결과물이 책으로 나올 수 있게 하길 바란다.
3. 『다르다』 2호 책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나 기획 기사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또는 편집에 참여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거침없이 나에게 말해주길 바란다.
편집팀(김지원, 임승빈, 김민석)에게
1. 편집자는 최상의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피에타」라는 조각상을 만든 미켈란젤로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묻자, “내가 이 대리석 앞을 지나가려는데 예수가 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더군요. ‘나는 지금 이 대리석 안에 누워있다. 불필요한 부분들을 떼어내고 내 모습을 드러나게 하여라.’ 대리석 안을 들여다 본 나는 어머니 무릎에 누운 예수의 형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형상이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 대리석이 그토록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단지 예수가 시키는 대로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을 뿐이라오.”
편집자란 저자의 작품을 사랑한 나머지, 저자도 미처 생각지 못한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고 빠진 부분을 덧붙이는 사람이다. 그와 같은 프라이드pride를 잊지 말길 바란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을 뿐이다."
2. 편집자는 책 전체의 짜임새를 생각하며 그 안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말을 좀 더 쉽게 하자면, 『다르다』가 신문이나 무가지가 아닌 이상 책의 완결된 짜임새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각 글이 어떻게 배열되어야 할지, 그리고 어떤 글들을 기획하여 실을 때 책이 더욱 가치 있게 될지 고민해야 한다.
3. 편집자는 굳어진 가치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새 가치를 발굴하고 찾아가려는 적극적인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건 책을 만드는 것을 과업으로 느껴서는 절대 이를 수 없는 경지다. 책을 만드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고, 저자의 글에 빠져 들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느낄 때 비로소 새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 그만큼 『다르다』 2호라는 책이 제 가치를 지니도록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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