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13.02.07 중등팀 - <건너뛴 삶> 산문화하기 본문
3. 「건너뛴 삶」을 소설이나 수필로 표현하기 (운문의 산문화)
건너뛴 삶
박노해
오늘 해결하지 못한 고민들은
시간과 함께 스스로 물러간다
쓸쓸한 미소이건
회한의 눈물이건
하지만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뛴
본질적인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담요에 싸서 버리고 떠난 핏덩이처럼
건너뛴 시간만큼 장성하여 돌아와
어느 날 내 앞에 무서운 얼굴로 선다
성공한 자에겐 성공의 복수로
패배한 자에겐 붉은빛 회한으로
나는 내 인생의 무엇을 해결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것을 건너뛰고 달려왔던가
그 힘없이 울부짖는 핏덩이를 던져두고
나는 무엇을 이루었던가
성공했기에 행복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라
아무도 모른다
성공을 위해 삶을 건너뛴 자에게는
쓰디쓴 삶의 껍질밖에 남겨진 게 없으니
죄
오승환
한 소년이 있었다. 부모님은 실종된 지 10년 만에 시체로 발견되고 길에서 누나와 구걸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구걸하던 누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고 소년은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난다. 남자가 이유 없이 납치한다(소년은 그 당시 기억은 ‘적임자!’라는 말만 남아있다고 한다). 소년이 눈을 떴을 때, 이유 없는 분노와 복수심과 고통에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때부터 도둑질, 화폐위조, 마약제조, 마약밀수, 총기 다루는 법, 금고 따는 법 등을 배웠다.
어느 날 길에 가던 소년은 자신과 부딪힌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 사람은 자신을 못 알아보겠냐고 했고 소년은 “꺼져!”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어이없어 하며 가던 길을 가고 소년은 집으로 돌아와 누구였는지 고민한다.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을 이 곳으로 데려온 남자가 소년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 남자를 죽이라고 한다. 그 때 부딪혔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름과 주민번호를 보니..... 아버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그 사람을 죽이기로 한다(아버지는 죽었다고 생각한다.) 소년은 결국 그 사람을 총으로 쏘고 그 사람은 마지막 말로 “아들~”이라고 말한다.
결국 소년은 모든 것이 기억나고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아버지를 쏜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쏜다.
후회되는 삶
김민석
삶이 후회된다.
나는 쫓기고 있다.
나는 시간에 쫓기고 있다.
나는 좋은 학생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하는 좋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공부만 하기 전에는 날라리였다(날라 다녀서).
그런데 어는 날!
아빠가 사고를 당하셨다.
나는 이것 때문에 한동안 우주 기사 088에 지원하고
화성의 사막에서 커다란 지네, 전갈, 거미, 건빵, 준규, 승태, 공부, 수학, 과학, 말들, 사회, 체육, 윤리, 공학과 싸웠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강지원: 저기 뒤에 적들이 오고 있어!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열여덟!(자체 정화)
동료: 나는..... 나는 죽을 거야. 어서 가!
강지원: 어 ㅂㅂㅂㅂ
동료가 주금.
강지원: 헉헉~ 이제 죽는 구나.
앞에 이상한 그림자가 드리움.
강지원: 아~ 이건 모지?
괴물: 지구로 돌아가!
강지원은 기절함.
깨어보니 다시 지구로 소환됨.
나는 그 뒤에 공부만 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성공했다!
글로벌 기업 삼송의 간부가 되는 데에 성공했다(돈도 많이 벌고)
하지만 삶을 충분히 즐기지 않는 것에 대해 후회된다.
차라리 예전처럼 날라리도 조금만 더 하면 좋았을 텐데....
나는 지금 돈이 없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도박으로 날려 버렸고
내가 늙자 회사에서는 나를 잘랐다. 결국 나는 회사의 부속품이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버렸다.
세상 사람들아!
삶을 즐겨라!
나 같은 사람에겐 삶의 껍질 밖에 남은 게 없으니!
핏덩이 같은 인생
임승빈
지금은 어두운 밤, 시간은 벌써 새벽 1시, 난 나홀로 친구들이 술 마시자는 말을 무시하고 피곤하다며 집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집에서는 불이 껴져서 귀신이 나올 것 같다. 역시나 주인은 잠을 자는가 보다. 그래서 난 잠옷을 갈아입고 잠을 잤다.
쓰-슥 쓱 쓰윽 쓱 시험지에서는 비가 철철 내리고 있었으며, 나는 한숨을 쉬고 머리를 쥐어짰다. 아, 한 문제 틀릴 때마다 숙제량이 더 늘어날 텐데. 이렇게 한숨을 쉬고 나니 한원을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렸다. 난 전력질주로 학원에 도착했다.
헉헉... 오늘도 선생님은 내 예상대로 숙제를 많이 내 주셨다.
이놈의 공부는 왜 생겨서 내가 숙제까지 하게 만드는 거야? 나는 또 고개를 숙이며 집으로 갔다.
나는 공부를 진짜 못한다. 내 성적은 바닥이고, 부모님의 잔소리는 커져만 갔다. 갑자기 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나는 컴퓨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나는 지그재그 복잡하게 생긴 그래프들을 읽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옷은 회사 양복이었다. 오늘은 월급을 타는 날이다. 그러나 이런 재미는 찾아볼 수 없는 일만 하다 보니 매일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들 정도로 몸이 거부한다. 그런데 뒤에 사장님이 걸어오셨다. 사장님은 “이녀석 계산 잘못해가지고 우리 회사 주식에 오류가 생겼잖아. 빨리 고쳐.”라고 소리쳤다. 나는 잠에서 깼다.
아, 진짜 엄청난 악몽이었다. 이것은 내 인생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난 기분이 좋다. 왜? 난 이제 ‘핏덩이’와도 같은 내 본질적인 것을 다시 되찾았으니까(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The Happy Life
백규혁
2000년대 편의점이 상용화되고 2013년엔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사람이 만든 가장 편리한 ‘생활필수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하나 둘 실종사건이 생겼고 나중엔 대형실종사건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실종의 규모는 상당해서 대부분의 시체도 없어졌고 납치의 흔적도 없었다. 그리하여 도심은 침묵에 잠겼다.
나는 처음에는 이 상황에 적응할 수 없어 세상 모든 것이 두려움 그 자체였다. 영화에서 보던 좀비들의 습격이 더 나을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점차 감각은 무뎌졌고 공포는 기억 저 너머로 묻혀갔다.
2년 후 그 때 쓴 나의 메모는 이렇다.
2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인구밀도 0.0000000000001......
현재 총인구수 1억 9000만명
뉴스도 한 달에 한 번 할지 모른다.
서울에서의 생존자들도 100명이 안 된다.
2016년 2월 6일
“생명의 가망이 보이지 않는구만.”
밖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나는 당장 뛰어가 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다.
‘젠장.... 동물인가? 아니다 분명 사람의 말소리였는데.’ 하지만 그는 보지 못했다. 뒤편 보도블록이 들리는 것을.... 나는 그 때부터 정처 없이 그 소리를 찾아 2주를 걸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두려움은커녕 지루함마저 내 머리 속 깊은 미로에 바져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순간 가슴을 요동치는 충격이 머리와 가슴 깊숙한 곳부터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두려움이었다!!
온 몸이 파도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 파도는 점차 해일이 되어 내 의식을 덮쳤다....
눈을 떠보니 그대로 서있던 곳이었다.
‘역시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구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배고 고파졌다. 오랜 친구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편의점을 찾았다. 물을 마시고 과자를 뜯었다. 배를 채우자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마찰’
진행 방향에 반대로 행해지는 힘...
그렇다면 과연 실종된 것은.....
내가 아닐까?
하나의 철장이
안개.....처럼
내 몸을 스쳐갔다....
비가 내리는 화창한 오후 그것이 두 차례 지나간 후 편의점은 방치되었다. 사람들은 굶주렸고.. 그 뿐이었다. 언젠가부터 아이를 놀래켜 주려는 마술사의 망토와 같은 천이 편의점을 잡아먹고 있었다.... 역시 그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두 차례 지나간 뒤 모두 도륙됐다. 그 후, 흙바람에 나부끼는 붉고 초록색 인 편의점만이 유유히 유유히 솟아나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 그랬다. 마지막 빵을 게걸스레 먹어치운 것이 1달쯤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있지도 않는 삶의 숨결을 따라 천천히 천천히 나의 발길은 아파트촌으로 향하고 있었다.
‘편의점’
100m쯤 앞 나의 손짓을 거울질하는 한 줄기 가시가 있었다. 나는 두려웠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 속 모호해진 정신 속으로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고 싶다’ ‘배고프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허겁지겁 빵을 집어 들었다.
3개쯤 빵을 먹었을 때 구석에 포스기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난이 끝나면 돈이...’ 다시 그런 생활로 돌아갈 순 없었다.
회장의 회상
이건호
나는 이건창우 회장. 현재는 국내 기타 판매 1위, 세계에서 20위 안에 들고 있다.
하지만 난 지금 성취감마저 사라지고 돈도 싫어졌다. 지난 30년간 무조건 기타만 보고 왔다. 원래는 기타리스트를 목표로 했지만, 박치인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기타는 놓고 싶지 않아서 기타를 연구해왔다. 30년 동안 기타에만 매달렸다. 놀지도 않고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이다. 이제 나의 고민마저 들어줄 사람도 없다.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친척들과 사이가 멀어져 만나지도 않고, 거기다 나는 외동이다. 이제 남은 것은 돈과 기타뿐이다.
나는 기타만 있으면 될 줄 알았다. 세상은 너무 험난했고 만사가 귀찮았다. 남을 생각할 여유도 없고 내 살길이 바빴다. 나에게 많은 인터뷰가 왔지만 30년 동안 기타만 봐와서 할 말이 없다. 어떤 추억도, 기억도, 슬픈 일, 기쁜 일도 없이 오직 기타라고 하면 힘겨웠던 일밖에 없다.
그 누구는 내가 성공했다고 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돈만 있음 되니깐. 나도 처음에 그런 생각이었지만 이 세계는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난 30년이 너무 원망스럽고 후회된다. 그래서 나도 이제 이건창우에서 나와 기타로 번 돈 전 재산을 기부하고 내가 못했던 삶을 살러 갔다. 밖에 나가서 먹고 외박을 하고 각지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뭔가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바로 친구가 없던 것이다. 친구를 사귄 적도, 인맥도 없기에 그저 외로웠다. 친구가 없는 쓸쓸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결혼도 안했던 나는 내 아리를 가져보고도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름은 기타 부품에 있는 ‘윌킨스’. 나는 그와 함께 뛰어놀며 드디어 행복이란 것을 알아냈다. 나는 이제 행복하다. 지난 날들보단 돈이 없지만 돈보다 행복하다.
노인의 후회
박주원
“길어봤자 2개월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2개월도 안 남은 시간, 나는 무엇을 했는가. 노인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끝을 눈앞에 두고서야 지나간 삶을 살아본다.
언제였던가, 성공을 위해 달려가던 그 시절에 성공을 위해 건너 뛴 삶의 본질적인 것들,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자신의 핏덩이까지.
모든 것을 버리면서 그는 성공의 길로 향했다.
마침내 그는 성공했다. 그러나 모든 성공이 곧 행복은 아니다.
본질적인 것을 건너뛰며 성공한 삶에 대한 대가처럼 그의 주변에는 불행만 있게 되었다. 그는 홀로 남았고 장성한 그의 핏덩이는 그의 존재를 부정했다. 성공한 그는 이제 노인이 되어 지난 삶을 후회한다.
후회해도 건너 뛴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성공한 노인은 쓸쓸히 죽어가며 아무 말 없이 창문 밖의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영양실조 그리고 세 자매
박고은(수필)
얼마 전,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10대 세 자매가 지하 단칸방에서 영양실조로 발견되었습니다.
새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고, 아빠는 밖으로 나가서 소식이 끊기고, 새 엄마는 세 자매한테, 밥도 안 주고, 추운 겨울에 전기장판도 틀지 못하게 하자, 세 자매(첫 째<19>, 둘 째<17>, 셋 째<15>)은 몸이 점점 약해지고, 잦은 발작과 뼈에 심각한 염증이 있고, 거동도 못할 정도로 세 자매의 증상은 심각했다.
이것을 지켜보던 새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가고 소식이 끊겼다.
증상이 점점 심해지자 맏언니는 겨우 몸을 일으켜서, 둘째와 셋째를 위해 밖으로 나가서 알바를 하려고 <롯데리아>에 가자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밥을 안 먹었으면 저렇게 몸에 뼈만 있을까?’라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언니랑 같이 집으로 들어가니까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거의 죽을 똥 말 똥 힘겨운 소리와 함께 누워 있었습니다. 그 때 옆에서 맏언니는 겨우겨우 어렵게 입을 열고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일단, 맏언니는 아주머니한테 그만 돌아가시라고 하고, 맏언니는 어렵고 힘든데도 불구하고, 둘째와 셋째가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차마 못 볼 것 같아서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를 해서 겨우 번 돈으로 컵라면으로 하루를 겨우겨우 한 끼로 버텨냈습니다. 그래서 세 자매는 말할 힘도 없게 되고, 얼굴과 몸에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나고....
그러던 어느 날, 세 자매는 새벽 1시경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솔직히 이 말을 듣고, ‘요즘 세상에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비슷한 내용이 뉴스에 실제로 나온 내용입니다. 반면 ‘나는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반성도 되고, 부모님께 다시 한 번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어느 한 교회의 목사였다고 한다. 내가 만약 세 자매의 새 엄마와 아빠를 만난다면, 혼내줄 것이다.
이 사회에게(어느 노신사의 독백)
김이향
오늘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는데 저는 지금까지 무엇을 한 걸까요.
다른 사람들이 가라는 곳으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방법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을 때는 성공하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쓸쓸한 미소, 회한의 눈물을 흘려봤자 무엇이 소용 있을까요.
내가 눈물을 흘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꼭 내 처지 뿐만이 아닙니다.
아직도 그 길, 그 방식, 그 자리가 자신들의 꿈일 것이라고,
지금은 너무나 힘들지만 그 자리에 올라서면 누구보다 기쁠 것이라고 믿는 젊은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자리, 내 나이가 돼서는 환희에 찬 기쁨이 아닌, 무겁게 짓누르는 세상의 복수에 비명을 지르게 될 텐데.
아직도 창문 밖에는 서로에게 칼을 던지며 끝나지 않는 트랙 위에 그저 달리는 경마장의 말들이 마치 내 과거 같아 더 고통스럽습니다.
창문을 열고 크게 소리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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