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2013년 교사 연수 자료 준비 본문
교육이란 무엇인가? 어원, 그리고 발달 과정, 그런 걸 아는 건 하등 상관없다. 교육은 리듬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엔 아이스크림이 땡기다가도, 어느 날엔 꼴도 보기 싫듯 자연스런 흐름에 따라 섞이고 꼬이며 그러다 멀어지기도 하며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외부의 계획된 틀에 의해서는 교육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리듬을 거스르는 절대 진리의 항변이나, ‘내가 너를 이끈다’는 거대담론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교육은 서로가 섞이는 방식으로 ‘어떻게 섞일 것인지?’, ‘나의 이야기가 교조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 언어의 독을 제거할 것인지?’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시종일관 이 관념의 핵심은 너와 내가 함께 만들고자 하는 도착점에 있으며 그 도착점에 대한 감각이 지금 이 순간엔 없을 지라도 그 환상을 어떻게 키워주느냐 하는 것에 있다. 교육은 너와 나의 성장을 전제하지 않으면 거짓일 뿐이다.
학교는 무엇이며, 단재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학교는 함께 만들어 가는 곳임과 동시에 극적 체험을 가능하도록 하는 곳이다. 실패가 용인되지 않고 실수가 치명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뭔가 제대로 된 실력을 보이지 못하고 어설플 바엔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사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는 그런 것들을 용인해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실패하며 끊임없이 도전해 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공간인 것이다.
이와 맞물려 학교는 당연히 온실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꼭 사회와 담을 쌓고 거대한 탑을 쌓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회변혁이 한참일 때, 그런 것에 무관심하거나 자신들은 다른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변혁운동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런 현상을 온실로 규정한 듯한 착각이 들었기에 거부감이 든 것이다. 그런데 실상 여기서 말하는 온실은 경제계의 요구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교육, 승자독식의 체계에 완전히 굴복한 교육을 탓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은 이상 속에서 현실을 모색하는 것이지, 현실 속에서 이상을 규정짓는 것이 아니다.
단재학교의 필요성은 현재의 학교가 망각한 실패를 통해 도전하는 법을 알려주고 이상을 통해 현실을 모색하게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성장과 자극을 잘 이끌어낼 수 있는가? 모든 가능성은 개체의 안에 갖춰져 있다고 하면서 그걸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아이러니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구나 현실 상황에서 성장판이 열리며 보이지 않던 순간들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책상머리에 앉아 고민하지 말고 무작정 떠나라. 떠나고 난 후에 돌아왔을 땐 이전의 내가 아닐 것이니, 그 때의 보는 나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리라.
한문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문은 열쇠라고 생각한다. 다른 관점, 다른 시각의 문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열쇠. 하지만 그 세계에 대해 낭만을 심어주지 않으면 아무리 금방이라도 따고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내 손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 낭만을 공유하는 일은 갑작스레 이뤄지긴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차근차근 해나가야 하고 할 의사가 있는 사람과 함께 해나가야 한다.
난 올해 이 열쇠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저쪽 세계에 대한 낭만을 고민하고 함께 나눌 생각이다. 그리고 빠르면 2학기부터 시구와 몇몇 구절을 함께 배우며 열쇠를 사용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영화팀의 한계와 전망은? 특별한 기획 없이 시작됐다. 단지 영화제에 학습이란 핑계를 대며 참석하고 싶다는 의미였을지도 모르는 미세한 감정으로 시작되었다. 오히려 아무 기대도, 바람도 없었기에 흘러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바람이 없다는 건, 상황에 따라 순식간에 태를 달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지만 어떠한 움직임조차 없을 수 있다는 점에선 부정적이다. 일장일단이 다함께 있는 이야기는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성과는 다양한 영화를 보며 두 시간 이상을 함께 해야 한다는 관점을 심어준 것에 있다. 영화는 의식의 반영이고 그 의식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소통의 최전선을 고민하는 것, 그게 바로 영화라는 것이다. 우리도 영화를 보며 또한 영화를 만들며 그 최전선을 고민하고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한계는 현장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정도. 현장은 삶이고 그 곳에서 이론은 현실을 망각한 소치일 뿐이다. 현장에 비빌 수 있을 때, 삶이 피어난다. 그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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