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족발과 코, 그리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본문
코가 막히고 족발을 먹는다. 그런데 전혀 아무 맛도 느낄 수가 없다. 예전에 맛보았던 ‘맛있었다’라는 관념 때문에 먹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나의 행동은 맛을 찾기 위해 열심히 코를 풀고 있지만, 냄새를 통한 맛의 감각은 돌아오지 않는다.
코가 막히면 세상을 잃는다. 우리가 맛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코를 통해 감지되기 때문이다. 코가 열려 있어야만 비로소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코가 막히면 ‘맛있었지’하는 느낌 뿐 실제적인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먹는다는 건, ‘예전엔 맛있었는데’라는 과거의 기억을 붙들려는 애처로운 노력일 뿐이다.
지금 먹으면서 느끼는 건, ‘별로 맛없다.’라는 느낌이며 아무 냄새도 느껴지지 않으니, ‘삶이 무의미하다’라는 감상뿐이다.
사진 출처: 투 아이 투
여기서 더 말할 수 있는 것은 ‘눈이 먼다고 마음의 눈이 떠지나?’하는 거다. 이 일을 겪기 전에만 해도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일을 겪고 나서 느껴지는 건,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건 결코 동시적인 사태가 아니었으며, 레테의 강만큼이나 멀고도 힘든 격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눈이 멀다할지라도 그걸 새로운 고민의 시간으로 가져가지 못하면, 여전히 없는 시력을 맹목적으로 의존하려 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개되니 말이다. 관성이나 습관을 확 바꿀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고 새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과감성도 필요하다. 그럴 때야 비로소 마음의 눈이 떠지며, 그럴 때 보이는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일 수 있을 거다. 그러려면 당연히 시력이란 것 이상의 모든 감각을 열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기만 한 것일까.
살어라, 그런데 죽더라도 후회는 말아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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