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건방진 방랑자

1학기 작은 전시회(15.07.24) 본문

직장/학교 수업

1학기 작은 전시회(15.07.24)

gunbbang 2015. 7. 27. 22:34

 

아주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으로 시작해보자. ‘2015학년도 1학기가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무리 짓는 시기가 왔다

이런 상투적인 표현이 담고 있는 내용은 시간이 그만큼 빠르다는 의미이고, 시작과 끝의 인상이 워낙 강렬한 탓에 중간 과정은 별로 생각이 안 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 정말로 그랬다. 2월부터 3월까지 2개월 동안은 검정고시 준비 기간이었기에 정신없이 사회와 역사를 공부한 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했고,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일상을 채워갔다. 학교라는 성격상 수시로 여러 일들이 발생했고 더욱이 대안학교라는 특성상 매우 역동적이기까지 하다보니, 의식적으로 시간을 인식하려 하지 않으면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래서 벌써 월이야’, ‘벌써 한 학기가 끝난 거야라는 푸념이 절로 나왔다.

 

 

1학기가 순식간에 흘러 버렸다. 흐른 그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남기느냐도 의미가 있다.

 

 

 

기록으로 낚아 챈 시간과 기억으로 남긴 시간

 

그렇다면 그 시간을 낚아채기 위해, 순간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작년까지는 별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입교사 때는 적응하기 바빴고(단재 1년 후기 보기), 2년 차엔 카자흐스탄 여행(여행 후기보기), 지리산 여행(여행 후기보기) 등 다채로운 일이 많았으며, 3년 차엔 학교의 재정비와 학교 이전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꼭 정리해야 하나?’라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정리병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런 거 다 떠나서 귀찮기도 했으니 말이다. 무언가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먼저 앞섰고, 그럴수록 새로운 무언가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보면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이미 시간은 지나버렸으니 자연히 하지 않게 됐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결국 기록을 남긴다고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잖아. 그럴 바에야 힘들 게 기록할 필요 없잖아. 그냥 학교생활에 충실하게 지내는 것이 제일이지라고 합리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냥 지금을 잘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기억으로 남긴 시간에 만족하게 됐다.

여전히 위와 같은 마음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단재학교에서 4년을 지내오면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 그건 위에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시간을 애써 인식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그저 흘러가 버린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시간은 흘러가고 난 그 현실에 그저 만족하고 만다. 그러다 보니 난 뭘 하고 있지?’하는 알맹이가 빠진 듯한 공허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2012년도엔 단재학교에서 첫 해를 보냈다. 그 때 수많은 갈등이 있었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기록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의 어설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감추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의 2012년도는 암흑 속에 고이 묻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갈등이랄지, 상황에 대한 인식이랄지 그 모든 게 어설프고 서툴렀으며 찌질해 보일지라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들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며, 그 때의 여러 감정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드는 요소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는 그 당시의 감정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에 현재적인 시각으로 폄하할 수 없는 데도 그 땐 그런 것들을 내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진으론 그 당시의 우리의 추억이 아로새겨져 있지만, 그 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2012년을 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다. 그저 흐른 시간만큼이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기록하여 시간을 낚아채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아련한 순간들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고 그게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지금은 어설플지라도 지금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것이다. 그게 지금의 나이니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심정으로 말이다(과거에 대한 인식 변화 보기).

위와 같은 이유로 지금까지는 학습발표회에 대한 소감을 남기지 않고 간단하게 사진에 코멘트를 다는 정도로 정리했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으로 후기를 쓰고자 한다. 기록함으로 그 때의 뿌듯하고도 즐거웠던 순간을 좀 더 길게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작은 전시회는 뭐예요?

 

단재학교에선 1년에 한 번씩 학습발표회를 한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고 1학기에 한 번씩 할 때도 있었다. 일반학교에서의 학습 결과물은 시험이란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지만, 단재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에 학습 결과물을 보여줄 수가 없다. 물론 배움 이후에 가시적인 결과물이 꼭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상대히 유의미한 의문이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학습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택한 방식은 학습발표회였고, 그건 어찌 보면 한 학기별로 하는 게 맞다. 학기 별로 아이들이 배우는 내용이 다르고, 성장한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표회란 게 아무래도 어설픈 내용보다 좀 더 완성도 높은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보니, 그걸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수업의 결과물이 발표회를 통해 표현되어야 함에도, 어느 순간 발표회 준비로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이유로 교육에 더욱 내실을 기하자는 생각으로 2013년도부터는 1년에 한 번씩 발표회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발표회에 대한 부담은 줄이되, 그래도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것이기에 그걸 함께 기릴 수 있는 자리는 필요했다. 그래서 하게 된 게 작은 전시회였다. 미술 시간에 틈틈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고, 부모님들을 초대하여 작품을 함께 보고 한 학기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누는 사랑방 이야기같은 느낌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2011 학습발표회



2012 1학기 학습발표회



 2012  2학기 학습발표회



 2013 학습발표회
 
 2014 학습발표회
 
 2015 1학기 작은 전시회

단재학교는 학습 결과를 발표회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위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발표회를 볼 수 있음)

 

 

 

 

전시회를 준비하는 손길들, 말길들

 

전시회를 하기로 결정되자 규빈이는 ‘1층에선 전시회를 하고 2층에선 카페를 하는 게 어때요?’라는 의견을 냈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제안이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기에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래서 학생회의에서 각 학생의 의견을 물으니, 처음에는 학부모들에게 간식을 만들고 서빙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 학생회비로 모으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민석이가 이에 대한 반론을 펴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이 오랜만에 학교에 왔는데, 돈을 내게 하는 건 너무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도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아이들도 동요하며 각 서비스에 대해 돈을 받기보다 모금함을 놓고 학부모들이 자유롭게 돈을 내게 하자는 의견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모금함에 대한 공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것에서 다시 갈렸다. 이향이는 학교 이전식 때를 상기하며 그 때도 출입구에 방명록을 꼭 기재해주세요라고 써놨는데 수연(이향이 동생)이 외엔 아무도 쓰지 않았더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서빙을 하는 학생이 모금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어요라고 말을 했다. 알려주는 정도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의견에 대해 누구도 다른 얘길하지 않았지만, 민석이는 그렇게 알려주는 것이 왠지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래서 벽에 모금한다는 사실을 붙여 놓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의견을 내놓았고, 한참 논쟁이 오고 간 후에, 결국 돈은 일절 받지 않고 학부모를 대접해주는 형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누군가 카메라를 들고 찍었던 거 같은데, 누가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조리개 우선모드로 1.8 밝기로 찍다보니, 엄청 밝게 찍혔다.

 

 

 

교육의 핵심은 어떻게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는가?’ 하는 것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있으니, 아이들이 부쩍 자랐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언가를 하고자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그걸 진행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 그걸 뿌리치거나 무시하기보다 귀담아 듣고 어떻게든 절충안을 만들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단재 교육과정의 핵심은 아이들을 성숙한 존재로 키우는 것이다. 그런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소통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교과적인 지식, 성적이 학생 평가의 바로미터가 되었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학생 성장을 담고 있진 않다. 어찌 보면 교과지식 너머에 학생의 본모습이 감춰져 있는지도 모른다(우치다 선생님의 성숙에 대한 통찰보기).  

사람이 살아가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능력이 바로 소통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되며 관계 문제는 소통의 문제로 일어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상,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기에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가 그 사람의 성숙을 체크할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소통을 하려 하기보다 자기 혼자 상황을 지레짐작하여 마음을 닫아 버린다. 그러니 관계는 꼬이고 자신은 위축되고,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소통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소통의 기회를 주고 어떤 갈등 상황에서 갈등을 해결해나갈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단재학교는 소규모 학교다. 그렇기 때문에 얼렁뚱땅 각 학생의 상황을 넘겨짚거나 넘어갈 수 없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한 사람의 문제는 극히 작은 문제일 뿐이지만, 사람이 적은 곳에서 한 사람의 문제는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에 풀기 위해 함께 노력할 수밖에 없다. 갈등 상황에서 아이들은 도망가기보다 그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함께 대화하며 방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한다고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거나, ‘여긴 낙원 같은 곳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공간일 순 없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소통의 가능성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고, 함께 그 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단재학교의 좋은 점이다.

 

 

1학기 마무리 여행에서 아이들은 밤새도록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게임도 하며 놀았다. 소통의 장이 무언지 보여준 그 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날 오전엔 전시회를 위해 작품을 세팅했고 오후엔 아카펠라 공연 연습을 했다. 아카펠라 선생님이 오시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 때 여학생들은 리더를 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리더를 정하지 않으면 우왕좌왕 할 뿐만 아니라, 목소리 큰 사람이 연습을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리더를 정해서 그 사람의 말을 따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승태쌤은 민석이를 리더로 지명했다.

 

 

세팅을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금세 작품은 자리를 잡고 여느 유명 전시회장을 방불케 한다.

 

 

민석이와는 벌써 3년째 함께 했다. 단재학교에 처음 근무할 때부터 영화팀에서 동고동락했으니 그만큼 서로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민석이는 처음 단재학교에 들어왔을 땐 당연히 학교의 막내였기에 선배들을 따라 학교를 잘 다니면 되었고, 그 후엔 건호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에 건호가 이끌어주는 대로 따라가면 됐다. 그런 상황이니 지리산에 갔을 때도 건호에게 의지하며 종주만 하면 됐던 것이다. 작년엔 명색이 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지만, 부회장으로 뽑힌 이향이가 선배였기에 이향이에게 학생회장의 전권을 위임(실질적으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상황 상 그랬다는 것임)하고 부회장직만을 수동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봤을 때 민석이가 과연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당연히 들었다.

하지만 이 날 민석이가 보여준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잘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지휘자처럼 몇 마디부터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을 하거나, 한 곡이 끝난 후엔 아이들에게 어떤 부분이 미진한지 들은 후에 그 부분을 집중 연습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겨울 내내 땅 속에 씨앗이 움츠러들어 있다가 약동하는 봄기운이 온 천지를 뒤덮으면 서서히 싹이 나와 만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민석이에게서 받았다. 때가 되면 누구도 몰라보게 달라질 수 있고, 때가 되면 누구도 활짝 필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민석이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둘러 앉았다. 민석이의 지휘에 따라 아이들이 함께 연습을 한다. 놀라운 광경이다.

 

 

 

어른의 시선이 아닌, 그 사람의 시선으로

 

이런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게 있었다. ‘뭔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대해 말이다. 대부분의 판단 기준은 당연히 그런 판단을 하는 어른의 기준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아이를 보더라도 미진하다고 느끼며, 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를 보더라도 다른 것도 잘 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런 판단을 하는 자신조차도 그와 같은 완벽한 인간이 아님에도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은 예리하기만 하다.

나 또한 이런 얘기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민석이를 보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했으면하는 바람을 가진 것이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의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아무렇지 않게 판단하며 부족한 부분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그러니 아이는 어른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 주눅들 수밖에 없고 자신을 더욱 깎아내리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젠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에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당사자의 시선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어른의 시선에 적응한 아이,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는 아이에 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다.

민석이가 예전부터 막내였음에도 리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거나 선생님의 바람을 알아 척척 숙제도 하고 여러 관계에서도 능숙하게 행동했다면 교사인 내 입장에선 분명 좋아했을 것이고 된 놈이라 칭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오히려 부단히 자신을 버리고 타인에게 맞추려 노력한 결과이며, 그 나이 때의 아이답지 않은 어른 흉내 내려 애쓴 결과이니 말이다.

이 말이 어렵다면 아래에 인용한 글을 읽어보도록 하자.

 

 

1. “내 아이는 문제가 없어요.”

2. “내 아이는 착해요.”

3. “내 아이는 공부를 잘해요.”

 

나는 문제가 있는 아이들보다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본다.

 

1. 문제가 없었기로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자살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남에게 별 문제를 안 일으킨다. 다만 자신에게 단 한 번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 뿐이다.

2. 착하기로 끝없이 불만이 쌓인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하고 싶은 행동을 참고,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유예하는 아이, 그 아이의 내면은 갈가리 찢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3. 판검사들이 공부를 못했나? 기자들이 공부를 못했나?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의사들이 공부를 못했나? 고위관료들이 공부를 못했나? 대기업임원들이 공부를 못했나? 대학교수가 공부를 못했나? (‘일반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공부를 잘 한다는 말은 부모, 선생으로부터 칭찬(인정욕구)을 듣는 방법을 안다는 말이고, 시키는 대로 잘 따른다는 말이고, 자신(만족)을 위해 인내한다는 말이고, 나중에는 결국 체제(권력에)가 요구(기여)하는 모범적인(?)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당신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체제의 부속품이 되기 십상이라는 말이다. 좀 무섭지(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문제 없는 내 아이가 문제다’, 카페헤세이티 Facebook , 2015726

 

문제 없는 아이는 지금껏 잘 적응했고, 잘 자랐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생각을 바꿀 필요도 있다.  

 

 

우리 사회에선 모범생과 문제아를 가차없이 구분하고 있다. 어른의 기준에 철저히 맞춰, 체제에 철저히 순응하는 경우 모범생이라 칭하며 대우해주는데 반해, 어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천방지축 날 뛸 경우 문제아라 낙인찍고 온갖 불이익을 다 준다. 나 또한 그런 사회에서 지금껏 자라왔기 때문에 모범생에 대한 환상(뭐든 잘 할 것이다, 인성이 바를 것이다)이 있었던 게 사실이고, 문제아에 대해서는 편견(성격이 지랄 맞을 것이다, 할 줄 아는 게 없을 것이다)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 당연히 모범생인 아이들에겐 매너 있게 대하고 뭔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거란 관념 때문에 그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묻게 되었고, 문제아인 아이들에겐 좀 더 거칠게 다루고 말을 듣기도 전에 내 의사대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그건 환상일 뿐임을 알 수 있었다. 모범생이지만 오히려 사회적인 시선이나 인간관계에선 젬병인 경우를 충분히 볼 수 있었으며, 문제아지만 억압적인 분위기만 아니면 오히려 주도적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경우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모범생이냐 문제아냐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는 더 큰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소위 모범생이란 것은 활발발한 자신의 생채리듬을 꺾고 어른들의 기대수준에 맞추기 위해 감정을 거세한 것이었다. 아이지만 아이가 아닌 어른인 척하려 무진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흔히 애어른이란 단어로 불리듯, 자신의 감정보다는 타인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시선보다 사회의 시선을 먼저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 어른들이 보기엔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게 맘에 들 수밖에 없고, 그러니 온갖 칭찬을 퍼붓게 되고, 아이는 그런 어른들의 칭찬에 한껏 고조되어 더욱 어른을 흉내 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의 감정은 감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만이 쌓이게 되고 내면은 갈가리 찢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아이다움을 축복으로, 청소년이 청소년다움을 축복으로 여길 수 있도록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맘먹었다. 청소년 시기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로 표현하듯, 그 나이 때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 맘껏 방황하고 반항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걸 정신 못 차렸다고 나무랄 일이 아니라, 그 시기를 온전히 겪어내며 맘껏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가만히 지켜볼 일이다. 민석이를 보면서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른의 기준이 아닌 그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깨달음을 준 민석이에게 아즘찬이 또 아즘찬이 아즘찬이구만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

 

 

 

작은 전시회, 큰 기쁨의 전시회

 

연습이 끝나고 이제 곧 학부모님들이 오실 시간이 되었다. 부엌은 분주하다. 학부모님들에게 대접할 간식을 만들고 차를 대접하기 위해 물을 끓인다. 아이들의 역할은 세 파트로 나누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파트, 학교 앞에서 학부모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안내를 하는 파트, 학교로 들어온 부모님에게 전시회를 볼 수 있도록 안내해 드리고, 서빙을 담당하는 파트로 말이다.

 

 

각 역할에 맞게 배치되어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부엌팀은 분주히 만들고 안내팀은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서빙팀은 학부모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한 분씩 학부모님이 오실 때마다 아이들도 바빠지기 시작했고, 덩달아 학교에는 활기가 넘쳐났다. 학습발표회는 공연을 보는 것이기에 정숙한 분위기라고 한다면, 작은 전시회는 축제 분위기라고나 할까. 모두 기뻐하는 표정이 보기 좋았고 아이들도 나름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특히나 자신이 한 학기 동안 만든 작품을 부모님에게 소개해줄 땐 아이들의 억양에서 뿌듯함이 묻어났다. 꼭 예술가들이 전시회를 열고 자신의 작품을 지인들에게 성의껏 설명해줄 때 내뿜어 나오는 열기 같다고나 할까. 특히나 재익 어머님은 재익이의 그림실력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고 전해주며 예전엔 그림을 곧잘 그렸다고 알려주셨다. 그림을 관람하는 시간은 어떤 시간 못지않게 여기저기 웃음이 넘쳐났으며, 아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듣고, 작품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을 때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랑스럽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그린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예술작품으로 자신을 맘껏 표현할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나도 중고등학생 때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만화책을 똑같이 그려보기도 하고 뭔가 여러 가지 표현을 하려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소질이 없는 것을 알고,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남에게 보여주기에 창피하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그리지 않게 되었다.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누군가에게 평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드러내지 않게 된 것이다. 더욱이 어른이 되어갈 수록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누군가에겐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추고 아닌 척하기에 바빴다. 감추고 아닌 척하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맘껏 이런 저런 재료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부럽기도 했고, 이 아이들은 나 같은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어리기도 했다.

 

 

 

아이들의 작품. 이런 표현력으로 맘껏 세상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카펠라 공연, 한 학기의 성장을 그대로 보여준 특급 공연

 

현세 엄마가 좀 늦는 바람에 620분쯤 되어서야 아카펠라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카펠라 공연을 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이들은 누군가 앞에 서서 공연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누군가 앞에서 하는 공연이기에 잘 해야만 한다는 부담이 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좀 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사람이니 말이다. 더욱이 부모님 앞이라면 더욱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엔 아카펠라를 하네, 마네를 가지고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초이쌤이 좀 색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지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선 복면을 쓰고 노래 부르는 프로가 있는데, 그것을 착안하여 아이들은 연극팀 교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부모님들은 거실에서 듣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러자 아이들은 초반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공연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복면가왕은 이미지가 주는 선입견을 걷고 음악에만 집중하여 노래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는 컨셉인데 반해, ‘옆방아카펠라는 모습을 보이기 쑥스러우니 목소리만이라도 들어주세요라는 컨셉이었다. 같은 듯 다른 컨셉으로 옆방아카펠라진행되었다.

그런데 막상 620분에 아카펠라 공연을 할 시간이 되자, 서로 간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부모님들 앞에서 공연을 하겠다고 컨셉을 바꿨다. 이왕 할 바에야 제대로 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인지, 아니면 어떤 큰 손에 의한 것인지 모르지만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바뀐 컨셉 때문에 걱정스런 부분이 있었다. 바로 ‘재익이가 과연 무대에 설 수 있을까?’하는 부분 말이다. 아이들은 모두 무대에 서 있었지만, 재익이는 2층 화장실에서 내려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재익이는 뭔가 못마땅한 게 있거나, 자기만의 공간에 있고 싶을 때 화장실을 애용하곤 한다. 재익이에겐 화장실이 피난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버티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날 재익이는 무대를 피하지 않았다. 시간을 거의 끌지 않고 바로 내려와 무대에 선 것이다.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옴과 동시에, 모든 학생이 서있는 무대가 더욱 꽉 차 보였다.

 

 

옆방아카펠라 공연이 아닌, 무대에 정식으로 선 공연이 되어 다행이다. 우리가 열심히 해온 것이니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아카펠라 공연은 모두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다. 상현이도 그 자리에 서서 최선을 다하여 함께 무대를 만들어 갔고, 재익이는 평소에 자신이 드러나는 걸 싫어하지만 공연에 있어서만큼은 화음을 맞추며 자신의 파트를 소화했으며, 민석이는 리더로 사회자역할(“공연 연습이 부족하여 많이 어설플 수는 있지만, 그래도 많이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을 도맡아 하며 분위기를 이끌었고, 현세는 타고난 노래실력으로 노래에 힘을 보탰으며, 특히 지민이는 무대 공포증이 있음에도 섬집아기의 솔로부분을 천상의 목소리로 완벽하게 소화하여 감탄을 자아냈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작은 소리가 모여 하나의 화음을 이루는 것을 듣는 것도 재밌는 일이었지만, 학부모님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었다. 원래 공연이란 게 무대에 서는 사람과 객석의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가는 종합예술인데, 이 날 공연도 공연자와 관중이 하나로 뒤엉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뜨거운 무대였다.

공연이 끝난 후 진심어린 박수가 여기저기 흘러나왔고, 나 또한 아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감동했다. 서로 껴안고 박수치고 환호하며 한껏 성공적인 공연을 함께 축하했다. 일전에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얘길 한 적이 있는데, 이 날 밤이 바로 그 얘기처럼 뿌듯함이 느껴지던 순간이었고, 그 힘으로 내일은 좀 더 힘차게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20151학기의 마지막 밤은 뿌듯함을 물씬 느끼며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반짝 반짝 작은 별 / 섬집 아기 / 다 함께 돌자 동네 한 바퀴를 불렀다. 모두 잘 했다.

 

 

인용

목차 /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