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대안적 교육에 대한 생각 갈무리 본문
이런 소동을 회오리바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내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떠나기 전에 밥을 먹고 있었는데 낯선 번호로 연락이 온 것이다. 내용인즉은, 군산중에서 기간제 교사를 모집하는데 지원할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기간도 맘에 들고 출퇴근(평화동까지 오는 버스가 있단다)도 자유로울 것 같아 마음이 동했다. 요즘 돈이 궁해 힘들어 하고 있었고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 회오리 바람
그런데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외도’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격이다. 대안교육을 꿈꾸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2개월이란 한계, 기존 체제의 순응) 편집자로 전향했다는 것을 우스개 소리로 만들 여지가 있다. 이 일기장의 이름이 ‘싱그런 아침 햇살처럼’인데 싱그러울 수 있으려면 과거의 상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편집자란 상은 바로 기존 공교사란 상을 버림으로 얻은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 회귀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기’이지 않을까.
어떻게 될 줄도 모르는 도전을 하느라 두려울 수도 있고 대안교육을 꿈꾸는 것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주어진다는 보장도, 그 일을 하게 된다는 확신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잠시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사, 그것도 쉽게 주어지는 자리로 돌아가려 하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갈등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번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 줄 알만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현실 교육체제를 비판하며, 다른 길로 간다고 했다면 그 의지는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하고 두려울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고, 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면서 나가라. 이제 시작인데 여기서 그 흐름을 끊기엔 나의 전반기의 고군분투가 아깝지 않은가. 부디 청년의 도전정신으로 존재를 걸고 도박(?)하길 빈다(안 가기로 맘 정했다. 그걸 알려주려 다시 전화해보니 글쎄 국어쌤이란다. 이래저래 결정 정말 잘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피상적인 기대
대안 교육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기존 교육 체계가 승자독식을 지향하여 대부분의 학생을 희생양으로 삼으며 임용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를 하는 예비교사들이 교육에 대한 고민 없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사가 되는 길이 어려워지니, ‘글만 잘 써진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던 어느 작가처럼 1점이라도 더 맞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어쩔 수없이 책상에 앉아 있어야만 하는 자물쇠반에도 들어간다. 자율적이지도 자신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교사가 되니, 교육 현장이 어떠리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삶과 앎이 괴리된 지식 덩어리를 주입하려 하고 어떤 것이 교육인지도 모른 채 순응해온 그대로 강요하고 억압하려 할 것이다. 자신이 공부기계였던 만큼 그걸 강요하게 된다. 초임교사들도 이럴진대 어떻게 교육에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대안학교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이다. 교육관이 다르고, 인간관이 다르며, 전인적인 관계를 맺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전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좀 더 현실화하여 하나 하나 짚어봐야 할 것이다. ‘과연 나의 인간관, 지식관, 교육관은 어떤지? 그래서 어떤 면에서 대안교육을 긍정한 것이며 막상 현실의 대안교육은 어떤지?’를 말이다.
목표 중심주의로 다가가면 교육은 죽는다. 하지만 그게 교육이란 이름으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건빵의 지식관, 앎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변화를 수반한다
앎이 앎으로 한계 지어져선 안 된다. 앎을 끌어안을수록 자신만이 우월한 사람인양 기고만장 해지며 남을 업신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대로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음을 깨닫고 겸손해진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얘기가 『논어』에 나오는데,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子曰:“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里仁」 17)”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당연히 이 말에서 방점이 찍히는 구절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일 테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아는 척하고 싶고, 뒤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에 모르는 것도 안다고 말할 때도 있으며, 때론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기도 하니 말이다. 자신이 아는 것이라는 건 천지자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인데도 그런 식으로 착각한다는 건 자기기만이며 자연비하일 뿐이다.
더욱이 앎이 아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앎은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건 당연히 존재의 변화를 말한다. 왜 변하는 걸까? 그건 곧 생각의 변화 때문이다. 곧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 앎이 나의 존재를 흔드는 것을 느끼는 것이며 새로운 시선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에게 어떠한 울림도 주지 않고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건 앎이 아니라 나와는 동떨어진 무엇이며 애써 배워야 할 이유도 없다.
건빵의 인간관, 타인을 수단화하지 않은 본질 대 본질의 관계
인간관이라고 표현했지만, 자연관이라고 바꿔 말해도 무방하다. 인간끼리 관계를 맺으며 살려고 하는 까닭은 혼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며 그건 곧 자연과의 끊임없는 관계를 통해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과 함께 살 때에만 우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은 늘 외부에 열린 존재일 수밖에 없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사람이 사람을 적대시하여 ‘만인의 투쟁’이라고 하며 자연을 적대시하여 ‘자연 정복’이라고 한다면, 제 무덤을 제가 파는 꼴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바로 현재의 교육은 ‘투쟁’을 가르치고 ‘독식’만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니 어이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비인간적인 교육이 또 있을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자신의 욕망을 간파하고 본질 대 본질로 만나야 하며 어떻게 어우러져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건빵의 교육관, 교사는 자격증 따위로 정해지지 않는다
교육이란 교원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이, 학생을 가르치는 행위를 말한다. 이게 누구나 생각하는 교육이며 아무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교원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교육을 할 수 있으며, 왜 학생은 무조건 배우기만 해야 한단 말인가. 교사란 어떤 과목을 이수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느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이 있다면 교사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학생이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부분에서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누구나 학생인 것이다. 그러므로 분야가 달라지면 교사가 학생이 될 수도, 학생이 교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가르치는 과정 중에 교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학생이 지적해줄 수 있기 때문에 학생-교사의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변화가능한 존재만이 있는 것이다.
교육은 일방적인 지식 전달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지식을 통해 생활모습이 드러나야 하며 그런 전체적인 모습을 보며 학생은 배우게 된다. 그래서 지적 촉발과 존재의 극대화를 이루지 못하는 교육은 아무 것도 아니다.
변산공동체학교를 통해 대안교육 의미 다지기
『변산공동체학교』라는 책(후기 보기)을 읽으며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학교의 목표는 ‘좋은 성적을 받는 학생’이 아니다. ‘자신의 앞가림을 하게 하’며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가된 대안교육기관이 어느 정도 기존 학교라는 기반 하에 여러 가치를 흉내내려 하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실망했었는데 이 학교는 커리큘럼 자체가 다른 것을 보며 신기하기까지 했다. 워낙 정형화된 틀이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대안교육을 생각한다고 했던 나까지도 위태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래도 일터와 삶터, 배움터의 조화를 꿈꾸며 자급자족 하려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틀을 만들면 당연히 억압하게 되고 그렇다고 자율화 하자니, 그럴 수도 없다. 자유와 구속, 일과 배움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들이 보인다. 그러면서 체계를 갖춰가고 있으니, 내가 뭐라고 할 문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체계를 잡고 학생들에게도 여러 기회를 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도시 생활 체험, 시험 체험 등의 방법을 통해 일방적인 선입관을 넘어 자신의 가치관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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