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브런치북 두 번째 낙방 - 브런치북에 떨어진 날 본문
고등학생 때 밑도 끝도 없이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근거도 없고, 그럴 만한 결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남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도 ‘반신반의’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정말로 글을 쓰게 되다
그런 막연한 생각이 출발점이 될 때가 있다. 뭐든 딱 부러지게 ‘~~하니, ~~할 거다’라고 생각하는 건 도전이기보다 지금 당장 보이는 것만으로 좇아가게 만든다. 그러니 그 어리던 순간부터 나는 나름 도전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고, ‘내 꿈은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한 때 치기가 가득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그런 치기 덕에 정말로 글을 쓰게 됐고, 여태까지 여러 글을 써오게 됐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그 생각이 먼저인지, 원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일이다. 그저 살아오며 자연스레 이것저것의 영향을 받으며 이 순간에 이르게 된 것인데, 지금에 와서야 ‘근본을 캐내겠어’라며 파고들어가 봤자 그것 또한 하나의 현재적 관점에서 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책을 내고 싶다’는 바람
어쨌든 그런 생각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고, 어느 날엔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으로까지 확장됐다. 좋다, 뭐든 그런 식의 막연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국토종단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로 한 달 정도를 걸을 수 있게 했고,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대안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과 지지고 볶게 했으니 작은 생각은 어떤 식으로든 만개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생각도 어느 순간엔 나름의 결실을 이룰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외치며 해나가면 될 일이다.
『구지가龜旨歌』에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라고 외치자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여럿이 입을 모아 떠들면 금조차도 녹인다(衆口鑠金)’는 말이 나왔다. 최근 박대통령의 연설 중에 “정말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연금술사』)”라는 연설이 회자되고 있듯이, 여기선 간절히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입으로 자주 떠들어야 결국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지금 나라는 뒤숭숭하다. 대통령은 꼭지각시고 그 뒤에 다른 사람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의 대혼란~
그래서 언제부턴가 ‘책을 낸다’고 외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맹렬히 글을 써나가게 되었다. 물론 그 결과가 지금 당장 나와야 한다고, 최대한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원하는 것이었기에 말하고 바라며 써나갔던 거다.
▲ 간절히 바라면 입으로 끊임없이 외치면 된다.
바람이 현실이란 벽에 막혀
아마추어 중에 아마추어인, 초짜 중에 초짜인 나에게 그렇다고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기회가 올리는 만무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모든 사람이 볼 만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런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희망을 걸었던 것은 ‘브런치북 프로젝트’였다. ‘브런치’란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꾸준히 쓰다 보면, 1년에 두 번 책 출간 프로젝트를 한다. 브런치 관계자와 출판사 관계자들이 열심히 지금까지 쓰인 글을 보고서 ‘충분히 출간할 만하다’고 판단되면 책으로 출간해주는 프로젝트다.
이미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첫 번째는 ‘브런치’란 플랫폼을 몰라서 도전할 수 없었으며 두 번째는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땐 크게 낙담하진 않았다. 그 당시엔 ‘브런치’에 업로드된 글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부터 제대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다음엔 해볼 만할 거야’라고 나름의 의지를 불태웠다.
▲ 여전히 기대를 했다. 그리고 또 바랐다.
그 후 드디어 세 번째 기회가 왔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끝냈기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결과를 기다렸다.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때를 위해서 지금까지 써왔던 글(‘김대중 자서전 후기’, ‘죽은 시인의 사회 후기’ 등)은 내용을 보충해 다시 쓰기도 했으며,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기’과 ‘동섭쌤의 강의 후기’와 같이 새롭게 쓰기도 하며 내용을 알차게 채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미끄러졌다. 여러 편이 선정되었지만, 그 중에 나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온 우주가 도와주긴커녕, 제대로 무시해버렸다. 아니,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이 읽고 싶은 글을 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힘도 빠지고, 내가 지금 뭘 하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모든 게 허무해져 버렸다.
▲ 37편이 선정되었다. 그 중엔 나는 없다.
바보가 으스대지 않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다시 덩그러니 골방에 혼자 남아 커서조차 움직이지 않는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 강박이든, 진심어린 마음이든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것은 날개가 없다’더니 정말 한 번 추락한 마음은 다시 부축하기 힘들더라.
아마도 한 동안 이렇게 쓰러져 있을 것이고, 아무 의욕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어찌 보면 나에겐 다른 기회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마추어 사회학’ 2강을 듣다 보니, 동섭쌤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 영화의 한 장면을 인용해주더라.
때는 바야흐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며 집단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그 때, 한 카페에서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이 이야기를 나눈다.
부하: 일본이 이겼으면, 뉴욕에서 일본노래를 부르며 커피를 마시고 있지 않을까요?
상관: 그게 무슨 소리야. 차라리 지금처럼 전쟁에서 진 게 나아. 졌기 때문에 더 이상 바보가 으스대지 않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지.
떨어졌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신포도 이론’처럼 하는 말이지만, 떨어졌기 때문에 ‘바보가 글 쓴다’고 나대지 않게 되었으니, 어쨌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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