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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11.01.24 식탁을 팔며 자본주의를 맛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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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24 식탁을 팔며 자본주의를 맛보다

gunbbang 2011. 1. 24. 22:00

 

식탁. 물론 필요해서 샀다. “밥상에서 밥을 먹으니 허리가 자꾸 휘는 것 같아, 앉은 버릇을 들이기 위해 샀어라는 말처럼 그 정도 이유면 됐으니 말이다. 더욱이 기분 좋게 백 만원이 넘는 액수를 현금가로 깎고 깎아서 육십 만원 정도에 구매했으니 에누리의 미덕내지는 우리네 사람살이의 정감이라 표현할 만하다.

 

 

 

잘 쓴 상품도 팔려할 땐 짐 덩어리가 된다

 

한 동안은 잘 썼지만 이사할 때 짐이 된다는 걸 알았고 집의 규모, 디자인에 맞지 않게 너무 크고 고풍스럽다는 것도 알았다. 더 이상 가지고 있어봐야 짐 밖에 될 수 없기에 팔려한 것이다.

식탁은 깨끗하게 썼다. 그래서 되판다고 하면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못 받아도 1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데엔 그와 같은 상황 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도가 있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가격은 받고 팔려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중고 치고는 제품이 괜찮은 편에 속하는 것이니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전화를 해봤는데 웬걸 다들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파는 건 고사하고 오히려 돈을 주고 내놓으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반응을 보고 나니 애초에 10만원 이상을 생각했던 마음이 쏙 들어가 5만원이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아저씨가 와서 식탁을 봤는데 여기저기 살펴보며 흠집 난 곳을 알려주며 이런 상황이면 팔 수 없어요. 이럴 땐 전주에서 운영하는 재활용 센터 같은 곳에 오히려 돈을 내고서 수거해가도록 하는 게 나아요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 말을 듣고 이런 상황에 몰리고 보니, 왠지 더 이상 식탁이 식탁으로만 보이지 않고 짐, 아니 금방이라도 버려야 할 쓰레기처럼 느껴지게 됐다. 돈을 받고 팔긴커녕 공짜로 수거해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할 만하다는 인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상품 처리의 주도권을 잃고 나니 상황도 기묘하게 돌아간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식탁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도 아쉬울 건 없다. 계속 써도 그만이고 진정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주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수세에 몰리게 된 건 확실히 내 마음에 빨리 팔아 치워버려야 한다는 조급증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중고거래를 하며 자본주의를 맛보다

 

이런 식의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건, 맘이 조급하면 조급할수록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이다. 맘에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무슨 일이든 최고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세간의 모든 건 필요에 의해 소유하게 되지만, 그것 또한 허례허식이거나 과시욕, 허영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샀을 땐 육십만원 넘게 주고 샀으나, 팔 땐 값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처리불능이기에 골치만 아픈 것이다. 그건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정가엔 거품이 끼어 있고 중고엔 께름칙하다는 딱지가 붙어 있다. 오로지 새 상품만이 유통되고 조금이라도 고가의 상품(고가마케팅, 일명 허영심 마케팅) 만이 팔린다. 하지만 그런 상품들은 중고로서의 매력도 없기에(돈 있는 사람은 새 걸 사려하고, 돈 없는 사람은 적당한 가격대의 상품을 사려하기에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짐이 될 뿐이다. 이렇게 물건들이 지천에 넘쳐나는데도 유통되지 않고 새 상품을 계속해서 생산해내야 하는 사회, 그게 바로 자본주의 사회다. 이런 사회에 대항하는 방법은 별 게 없다. 최대한 소유를 줄이고 사더라도 중고장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소유가 가벼워질 때 비로소 자유가 커진다는 것도 상기해야 한다.

식탁이 애물단지가 되었다. 갖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다. 이제 맘을 비웠다면 진자 필요한 사람에게 물건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몸과 맘이 가벼워져야 한다. 이해타산을 넘어선 소유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