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11.05.10 그림팡팡이 준 깨달음 - 목표에 집착 말고, 앞선다고 자만 말자 본문
‘그림팡팡’ 게임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킬링타임용으로 제격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게임을 통해 삶에 대하여 통찰할 수 있기에 의미가 크다. 이 게임의 법칙은 간단하다. 같은 그림을 맞추면 그 블록은 사라진다. 그러나 세 번 선을 그어 닿는 곳에 있는 블록만 사라지며 네 번 이상의 선을 그어야 한다거나 사방이 막힌 블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러 번 하다 보니 이젠 대충 눈짐작만으로도 없앨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보이기도 한다. 보통 이 게임을 할 땐 3라운드를 해서 10판을 깰 때 높은 점수가 나오기를 바라며 게임을 시작한다. 콤보로 없애는 것들이 많을수록 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니, 관건은 얼마나 많은 콤보로 한 판씩 깨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니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집중력과 순발력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점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고 도중에 게임 오버까지 되는 경우도 있다.
게임은 끝나봐야만 안다
오늘도 게임을 했는데 엄청 잘 되더라. 3판만을 깼을 뿐인데, 이미 점수는 5천점을 넘어섰다.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최고 등수는 떼어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맘이 앞설수록 콤보는 찍지 못하고 한 판 한 판 깨기도 버거워질 정도였으며,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보너스를 남발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10위권에 간신히 드는 참담한 결과만이 나왔을 뿐이다. 초반의 기대는 단숨에 무너지고 쓸쓸한 뒷모습만 보일 밖에는.
이런 상황은 정확히 5월 7일에 했던 경험과는 완벽히 반대였다. 도보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되리란 기대조차 없었다. 실제로 도보여행에 막 돌아와서 한 게임에선 끝판도 가보지 못하고 도중에 끝나기 일쑤였고 끝판을 깼더라도 등수에 들지 못하는 게 당연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점수를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게임을 하기보다 그저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하게 되더라.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맘을 먹었을 때 최고의 점수가 나왔다. 중반까지만 해도 그렇게 두각을 나타낼 만큼의 점수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중후반부에 들어서자마자 탄력이 붙기 시작하더니, 결국 상상도 하지 못할 최고의 점수를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대하고 보니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된 자가 나중된다
과정을 통해 결과를 무작정 예측할 순 없다. 언제든 결과는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긴 안목으로 봐야하고, 그 시간동안 얼마나 꾸준히 노력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 순간의 모습으로, 순간의 모습으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한 순간의 성공으로 들뜨고 거만해서도, 한 순간의 실패로 주눅이 들어 기진맥진해서도 안 된다. 그때 중요한 건 그 상황이 주는 의미를 캐묻고 좀 더 나갈 수 잇도록 해야 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매순간이 관문인지도 모른다. 이 정도 성공으로 안주하느냐, 이 정도 실패로 자포자기하느냐, 그게 바로 스스로의 한계이며 그 정도 스케일의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려는 듯이 말이다. 그 순간들을 잘 넘어설 수 있는 존재가 되려면, 순간순간을 잘 살아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점수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점수는 낮아진다
게임의 핵심은 얼마나 콤보를 많이 하여 점수를 높이느냐다. 그러려면 당연히 눈동자도 빨리 돌려서 상황을 판단해야 하고 손가락도 잽싸게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멈추면 게임오버만 될 뿐이다. 맘이 급해질수록 오히려 그림은 안 보이고, 설령 보였다 할지라도 손은 전혀 다른 걸 클릭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맘이 급해지지 않도록 욕심은 버려야 하고, 욕심이 생기지 않도록 게임 자체를 즐기면 된다. 그냥 그 순간을 즐길 대 오히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풀려나가는 체험도 하게 된다.
이 게임이 삶에 대해 알려준 건, 뭐든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와 집착하지 않고 즐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되려는 이때, 이 가르침에 따라 새롭게 시작해보려 한다. ‘청운의 꿈만 간직한 푸른 눈동자의 배고픈 미소년이 되리라(47P)’라는 『계림수필』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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