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11.12.01 장ㅋ - 이국 or 사국 시대 강의 본문
1994년 어느 날
시간이 흐르면 과거가 된다. 현재 또한 몇 분 후엔 과거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재영이를 보고 있노라면, 과거의 나의 모습이 문득 문득 떠오른다. 저 나이 때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두서없이 든다.
1994년의 난, 중학생이었다. 그 때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집 우체통에 편지를 몰래 넣고 도망쳤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어떻게든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나의 존재를 알까봐 이름 석자도 쓰지 않은 익명의 편지를 넣고 도망치던 소심한 학생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내 존재를 알지 못했고, 어떤 답장도 주지 않았다. 1994년의 난 그런 학생이었다.
오늘밤 그대에게
말로 할 수가 없어서
이런 마음을 종이 위에
글로 쓴걸 용서해
한참을 그대에게
겁이 날만큼 미쳤었지
그런 내 모습 이제는
후회할 지 몰라
하지만 그대여
다른 건 다 잊어도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어
내가 그대를 얼만큼
사랑하고 있는 지를
사랑하는 지를
외로이 텅빈 방에
나만 홀로 남았을때
그제야 나는 그대 없음을
알게 될 지 몰라
하지만 그대여
다른 건 다 잊어도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어
내가 그대를 얼만큼
사랑하고 있는 지를
사랑 하는지를
그대 이제는 안녕
1994년 어느 늦은 밤
2011년 어느 날
시간은 흘렀다. 난 어른이 됐고 아이들은 학생이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과 나의 중학생 때 시절이 많이 다르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혼돈 속에서 힘겨워하며 자라기 때문이다. 재영이도 지금 그와 같은 시기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종잡을 수 없는 마음과 맘껏 활개치고 싶은 욕망, 그럼에도 꿈을 향해 다가가고자 하는 희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시기.
그럼에도 재영이는 나와 다른 부분이 있다. 자신의 생각도 잘 표현하며, 남 앞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강의하기도 하니 말이다. 사랑에 있어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진 모르지만, 적어도 공부를 하고 발표를 하는 데엔 나와 다른 것이다. 2011년의 재영이는 활달하며 맘껏 자신을 발산하는 학생이다.
재영이의 장점과 발전
재영이의 장점은 머릿속으로 잘 정리한다는 데 있다. 역사책을 읽으며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식으로 표현한다. 세밀한 부분까지 짚어가며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저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해했을까?’하고 놀라곤 한다. 산을 볼 때, 산 전체의 모양만을 신경 쓰는 게 아니라,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도 신경 쓸 수 있는 집중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역사 전체의 흐름만을 집중하다가 놓친 부분을 재영이가 짚어주곤 한다.
재영이가 처음보다 발전한 부분은 바로 정리하는 부분이다. 처음부터 필기장을 만들었다. 요즘처럼 전자기기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손으로 필기하는 일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며 번거롭고 힘든 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필기를 하는 건, 손의 근육을 사용한다는 것 이상으로 매력적인 활동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니, 감각이 살아나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다보면 자신의 생각도 정리된다. 실제로 재영이는 “처음엔 필기하는 게 많이 힘들었는데, 이젠 읽으면 어떻게 써야할지 정리가 되어서 편해졌어요. 이젠 15분 정도면 한 챕터를 정리할 수 있다니깐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쩐지, 처음에 비해 글씨가 보기 편해졌다 했다.
글씨의 크기가 일정하며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을 준다.
빛났던 그 시절
청소년 시기는 그 자체로 빛나는 순간이다. 보석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듯, 청소년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빛나는 순간에 미래의 닥치지 않은 불안으로 빛나는 순간을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맘껏 자신의 끼를 발산하며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 좌충우돌하고, 때론 힘에 겨워 넘어지고,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한 걸음씩 나가는 게 ‘청소년다움’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2011년의 어느 날에 재영이의 도전과 발전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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