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마포FM PD과정 - 남기고 기록하라 본문
▲ 주경야독을 한다는 건 대단한 체력이 필요한 거 같다. 초췌한 내 모습.
5월 7일에 시작된 PD과정이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 끝났다. 한 달간의 소회는 차차 밝히기로 하고 지금은 주경야독의 힘듦을 이야기하려 한다.
▲ 3강 YTN 박준범 PD와 함께
중심이동하려는 의지의 필요
화, 목요일 저녁 7시에 PD과정은 시작된다. 학교에선 보통 6시가 넘어서 끝나기에, 이 날만큼은 일찍 나가기로 했다. 그 날은 프로젝트 진행하는 날이라, 4시에 끝날 수 있다. 그러면 집에 일찍 가서 1시간여를 자고 저녁을 먹고 나가면 된다. 저번 출판 과정처럼 마포구에서 진행되는 것이기에, 퇴근길의 인파를 뚫고 지나가야 하며, 거리가 꽤 멀다는 게 문제다. 1시간의 잠은 꿀잠이 될 수 있지만, 언제나 일어날 것에 대한 걱정이 많은 나이기에 잠을 제대로 깊게 잘 순 없다. 그런 상태에서 피디과정에 가니 비몽사몽에 정신은 반쯤 나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무엇을 배운다는 것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가야하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 그건 정확히 취업하기 전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전만해도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축복이라 생각했고 주경야독이든 주경야독심야독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건 부담처럼만 느껴지니 말이다.
5강 KBS 정현주 작가님과 함께.
생각을 드러내라
피디과정과 출판과정은 같은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그건 ‘생각을 드러내는 작업’이라 명명할 수 있다. 출판은 ‘생각의 물질화’이며, 피디과정은 ‘생각의 음성화, 화면화’이니 말이다. 결국 본질은 나의 생각을 어떻게 명료하게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달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자기를 표현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를 공감대의 영역에서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작 어떤 매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는 건, 언제나 훗날의 일일 수밖에 없다.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 본 사람,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표현해 본 사람만이 편집자건, 피디건, 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을 갖추게 된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주구장창 이야기됐던 것이, 많이 써보고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많은 것을 느껴보라는 말을 한 것이다. 여기에 회사의 사정에 따라 비즈니스 마인드를 덧붙일 수도, 정직함으로 승부할 수도 있다. 이건 실상 회사 사정이라기보다 그 사람의 마음인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SBS이더라도 정직으로 승부하는 피디가 있을 수 있고, KBS라도 비즈니스마인드로 승부를 보는 사람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게 삶의 올바른 모습이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결과물은 모두의 땀이 곁들여진 결실이라는 관점에서 비즈니스마인드보다 정직이 더 중요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 1강 김승월 피디님과 함께.
핑계로 점철되어 회피하던 삶
첫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성심껏 참여하지 못했다. 적당히 하고자 하는 맘이 강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쉬고 적당히 하는 가운데 적당히 업혀 가려고만 했다. 난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중간부분까지 강사들의 강의가 있었고 그 이후부터 각 조별 회의가 있었는데, 난 그 때에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우리 팀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크게 이경은씨와 맹은지씨였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전면에 서며 분위기를 이끌고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장면은 05년도에 크로스 단장을 할 때의 모습이다. 그 땐 ‘공부한다’는 핑계로 하는 듯 마는 듯 대충 활동을 얼버무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내 모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기본적으로 어떤 일이 선두로 나서는 것, 리더로 나서는 걸 힘들어하고 싫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또 없는 듯 그런 존재가 되는 것도 싫어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사이에서 늘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승빈이가 무슨 일이 맡겨지면 뒤로 빠지던 모습을 보면서, “왜 해보지도 않고 빠지려고 하니? 그러니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이야.”라고 나무랄 수 있었던 데에 나의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모습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난 전면에 나서서 제대로 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아이들이 만들면 거기에 기댈 생각만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끝마치고 말았다. 아쉬운 일이라면 바로 고쳐지지 않은 나의 모습 같은 것 때문일 것이다. 이 모습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나의 10년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남기고 기록하라
이번 일을 통해서도 여실히 알게 된 건, 지나간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을 남기느냐 였다. 그건 글을 통한 기록일 수도 있으며, 사진을 통한 기록일 수도 있다. 어떠한 방식이건 자신을 남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전엔 잊혀질까 두려워 나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여기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건 그런 식의 논의는 아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걸 누군가에게 설득력 있게 표현할 때, 그런 것들이 결국 매체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컨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창조물은 나의 생각이 정련된 무엇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정련을 할 수 있으려면 당연히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야 하고 그걸 기록으로 남겨야만 하는 것이다. 생각이 곧 컨텐츠다.
▲ 2강 이재익피디님과 함께.
인간성의 회복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유는, 모든 창조물은 협업을 통해 이룩되기 때문이다. 나 혼자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그게 사람 사이에 접점을 만들지 못하고 갈등만 만든다면, 그 결과물은 뻔하디 뻔한 것이 되고 만다. 협업은 이해의 상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에서부터 다른 생각을 어떻게 버무리느냐 하는 것까지의 모든 과정을 말한다. 그건 곧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넘침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으려 해야 한다. 그리고 나 위주의 생각이 아닌, 상대방 위주의 생각의 전환도 필요한 것이다.
둘째 모든 창조물의 대상은 타인, 즉 사람일 수밖에 없다.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인간성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게 아주 절실한 생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걸 흔히 감수성이라고 표현한다. 감수성을 키우며 그걸 통해 상대방을 받아들이려 할 때, 사람은 그것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만든 창조물이 사람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결과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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