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준비] 11월 10일: 전날의 감정, 두려움이라는 벽 본문
11.10(일) 전날의 감정, 두려움이라는 벽
지리산 프로젝트는 11일 아침에 시작되었다. 그 전날부터 심한 걱정에 휩싸였다.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나 혼자만이 아닌 아이들과 함께 같이 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벽이 가로막고 있다
평소에 두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하고 싶다’는 말엔 이미 ‘쉽게 할 수 없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냥 할 수 있는 일은 말도 없이 하고 말지, ‘하고 싶다’라는 미래지향형의 어투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고 싶다’라는 말은, ‘할 수 없다’라는 의기소침함을 감추기 위한 말일지도 모른다. 교묘하게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버나스 쇼처럼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는 말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죽는 순간에서야 후회하는 삶. 그런 삶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삶이여야 한다.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도보 여행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리산 종주였다. 이런 여행들은 이미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자료를 찾거나 도움을 구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하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에겐 확고한 벽과 같은 느낌이었다. 선악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죄책감에 휩싸인 아담과 같은 마음의 터부 같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의식이 막고 있을 땐, 그걸 넘기가 그렇게 힘들다. 두려움, 그건 보편적인 시각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다. 맞닥뜨려 보고, 부딪혀 보며, 넘어서 보라고 아무리 외쳐 보아도, 자신의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때 필요한 건, 일반적인 관점이 아닌 개인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이야기 해야만 비로소 소통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과 진지하게 ‘벽’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벽은 올무가 아닌 디딤돌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할 때 겁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넘어서려 하느냐, 아니면 거기에 머무느냐 하는 것이다. 넘어서려는 의지가 있으면 두려움은 나의 가능성을 펼 수 있는 디딤돌이 되지만, ‘난 원래 겁이 많다’며 안주하려 하면 두려움은 날 옭아매는 올무가 될 뿐이다. 전자는 『대학』이란 책에 나오는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날로 새로워지려거든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하며)’라는 명구처럼 점차 자신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지만, 후자는 나날이 비루해지고 소심해지는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면, 그 한계를 인정하고 넘어서려 노력해야 한다.
일신하려는 의미의 도보여행은 이미 두 번이나 했었다. 그렇게 벽을 한 번이라도 넘어보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리산 종주는 머릿속에서만 있을 뿐 쉽사리 도전하지 못했다. 산에서 며칠 동안 머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벽을 넘어봤다고 해서, 모든 벽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수시로 벽은 세워지고 내 앞에 과제처럼 주어진다. 그렇기에 부단히 마음을 다잡고 위축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워줘야 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배낭을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전날 밤엔 무지 긴장이 됐다. 배낭을 쌀 때조차 얼마나 많은 것들을 챙겨야 하는지, 과연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게 가능한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도보여행은 이미 경험이 있기에 어찌 보면 괜찮을 수 있는데, 6박 7일의 지리산 등산은 그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심하게 걱정이 되었다.
코펠과 버너, 그리고 연료통은 우리가 함께 써야 할 물품들이다. 공동 물품은 돌아가면 아이들을 들게 할 것이다.
세면도구를 챙기고, 여벌옷을 상하의 모두 4벌씩 챙겼다. 여기에 산행 도중에 먹을 즉석용 식품과 구급약품, 비옷 등을 넣었다. 그랬더니 배낭이 빵빵해졌다. 도보여행 때보다 당연히 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나의 두려움이 배낭에 넣어야 할 짐들을 늘려 배낭을 무겁게 하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배낭이 꽉꽉 차있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가 철저하다는 것이 아니라 겁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메이커나 학벌, 직업으로 덕지덕지 자신을 치장하려 하듯,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배낭에 언제 쓸지 모르는 물건들을 꽉꽉 채워 넣게 한다. 배낭을 꾸리는 나의 모습이 딱 그 모습이었다.
화엄사⇒노고단 (1박)⇒삼도봉⇒연하천 (2박)⇒벽소령 대피소⇒세석 (3박)⇒삼신봉⇒장터목 (4박)⇒천왕봉⇒치밭목 (5박)⇒대원사⇒지리산 털보농원(6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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