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준비] 11월 09일: 단체 산행 과연 가능할까? 본문
11.09(토) 알 이즈 웰
지리산 프로젝트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불안해지고 두려워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여기엔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한다는 불안과 함께, ‘6명의 학생들과 함께 7일간의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까지 짬뽕이 되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옥죈다.
마음은 쉽게 겁을 먹는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영화는 『세 얼간이』다. 코믹하면서 연출이 색다르고 내용도 깊이가 있어서 자주 보게 되는 영화다. 이 영화의 유행어를 꼽으라면 단연 ‘알 이즈 웰all is well’이다. 이 말은 상처 많고 겁 많은 사람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준다. 란초가 처음에 이 말을 왜 쓰게 되었는지 그 상황을 살펴보자
란초: 우리 마을에 경비가 있었는데 야간 순찰 때 이렇게 얘기했어. ‘알 이즈 웰~~’ 그래서 우린 마음 놓고 잘 수 있었지. 근데 도둑이 들었던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경비는 야맹증 환자였어. ‘알 이즈 웰~’이라고 외쳤을 뿐인데, 우리는 안전하다고 생각한 거야.
그 날, 난 깨달았어. 이 마음은 쉽게 겁을 먹는다는 걸. 그래서 속여 줄 필요가 있어. 큰 문제가 생기면 가슴에 대고, 얘기하는 거야. ‘알 이즈 웰!’
라주: 그래서 그게 문제를 해결해줬어.
란초: 아니. 근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용기를 얻었지. 기억해 둬. 나중에 꼭 필요할 때가 있을 거야.
내 마음이 나를 속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 필요한 게 '알 이즈 웰'
란초의 말 그대로, 사람의 마음은 쉽게 겁을 먹는다. 그 때 필요한 건, 그 마음조차 근거 없는 불안에 따라 흔들리는 마음임을 아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해보지 않은 일을 할 때 찾아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란 뜻이고, 그건 경험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겁먹었다고 해서 포기했다가는 세상에 자신이 해볼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될 것이며, 지루한 반복적인 일상만 남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마음의 속성을 역이용하여 오히려 자신감을 찾는 방법을 써야 한다. 란초는 그 방법으로 ‘알 이즈 웰(모든 게 다 잘 될 거야)’라고 외쳤다. 실제로 영화에서 위기 상황에 닥칠 때마다 란초는 침착하게 ‘알 이즈 웰’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외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도 그와 같은 심리적인 안정이며, 부딪혀 볼만하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시작하면 하나하나 모양새가 만들어 진다
지리산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이야기 된 것은 10월 17일이었다. 그 후로 3주 정도가 흘렀고 바로 다음 주면 지리산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 흐른 시간만큼 우리도 처음으로 하게 되는 일에 대한 준비를 차곡차곡하고 있다.
코펠과 즉석식품, 그리고 버너. 이로써 여행을 위한 기본물품들은 완비되었다.
산에서 해먹을 수 있도록 코펠과 버너를 샀으며, 식단에 맞게 즉석에서 해먹을 수 있는 식품들을 샀다.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서 산을 타는 건데 그걸 먹으며 다니다 보면, 오히려 건강이 더 나빠지겠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말이 맞다. 즉석식품이 몸에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힘듦을 이겨 나가고 산에서 일주일 정도 살아본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히 며칠간만 즉석식품을 먹는다고 몸이 나빠지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즉석식품을 먹거나 대피소에서 자거나, 하루 종일 산을 걷는 등의 생소한 경험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침 |
점심 |
저녁 |
송지민, 건빵 |
이건호, 임승빈, 김민석 |
박주원, 오현세, 건빵 |
|
11일 |
12일 |
13일 |
14일 |
15일 |
16일 |
17일 |
아침 |
소ㆍ비 |
소ㆍ비 |
소ㆍ비 |
소ㆍ비 |
소ㆍ비 |
매식 | |
점심 |
매식 |
카레 |
카레 |
라면과 밥 |
라ㆍ밥 |
라ㆍ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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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
육개장 |
육개장 |
육개장 |
카레 |
카레 |
목살 |
식사 준비는 위의 표처럼 하기로 했다. 아침엔 소고기 비빔밥이란 즉석식품을 먹기에, 물만 끓이면 된다. 아침 시간이 마음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이기에 이런 식으로 계획을 한 것이다. 그리고 점심과 저녁엔 물도 끓여야 하지만, 밥까지 같이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3인 1조로 물과 밥을 동시에 하도록 했다.
협력해야만 천왕봉에 오르는 게 의미가 있다
이 프로젝트 자체가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다. 경쟁을 하기엔 이미 체력이 현격하게 차이 날 뿐 아니라, 우리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협력이고 함께 크나큰 도전과제에 맞서 헤쳐 나가는 것이다.
지리산에 가기 전에 여러 산에 가보았지만, 먼저 가는 학생들은 뒤에 오는 학생들을 챙겨주지 않고 자신의 갈 길만 가기에 바빴다. 그러니 앞서 간 학생들은 그 나름대로 불만이 있었고, 뒤에 쳐진 학생들은 힘들면서도 안 좋은 소릴 들어야 하니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경쟁적인 구도로 흐를 거면, 애초에 등산을 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체력이 좋은 사람은 당연히 뒤쳐진 사람을 끌어줘야 하며, 뒤쳐진 사람은 자신의 잠재적인 힘까지 불사르며 전체 페이스에 맞추려 노력해야 한다. 서로를 배려하려 노력해야지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의미가 있으며, 성공리에 마무리 지어질 수 있다.
그래도 지리산에 가서는 각자의 체력을 고려하여 이동위치를 정해주기로 했다. 각자의 체력이 다른 만큼 충분히 서로 도와주고 끌어주며 가자는 취지이다.
“이동위치: 김민석-박주원-오현세-이건호-송지민-임승빈”
오르는 동안에 어떻게 위치가 변동될 진 모르지만, 이런 순서로 이동하기로 했다. 경험이 적은 학생들을 앞에 배치했고, 건호와 승빈이는 지리산에 오른 경험이 있어서 중간에 배치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심과 함께 자신의 책임감을 끝까지 다하려는 자세가 있어야만 한다.
무거우면 나눠지면 된다
우리의 공동물품은 ‘코펠, 버너 2개, 연료 2개’가 있다. 이것들만 해도 만만치 않은 무게가 된다. 자신이 가져갈 배낭의 무게도 장난이 아닌데 이것들까지 챙겨서 가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행에서 느끼게 되는 건, ‘나의 필요에 의한 물품조차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렇기에 필요한 물건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몸이 무거워져 자유롭게 다닐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붓다는 ‘오직 날개의 무게로만 가는 새처럼 가라’는 말을 한 것이 아닐까.
공동의 물품을 나누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짐을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꼭 필요해서 챙겨왔겠지만, ‘언젠가 쓸 것 같은 불안함’에 챙기는 물건들은 과감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과연 어느 정도로 자신의 짐을 적당한 수준으로 맞추느냐가 자신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의 물품은 오전엔 앞에 가는 세 사람(김민석, 박주원, 오현세)이, 오후엔 뒤에 가는 세 사람(이건호, 송지민, 임승빈)이 들고 가기로 했다. 힘들겠지만, 이것 또한 자신에 맡겨진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들고 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묵게 된 대피소의 연락처를 적어 놓았다. 대피소엔 하절기(5~8월)엔 7시까지, 동절기(10~2월)엔 6까지 입실해야 한다. 지금은 동절기이기 때문에 6시까지 입실해야 하며, 늦을 경우엔 대피소에 미리 연락해야 예약이 취소되지 않는다고 한다.
노고단: 061-780-7700
연하천: 063-625-8911
세석: 055-972-7772
장터목: 055-972-7772
지리산 털보농원: 017-586-3333
이제 준비는 끝났다. 위급한 상황이든, 미비한 준비로 인한 어려움이든 현장에서 겪게 될 것이다. 올 테면 오라, 우리가 하나 되어 모든 어려움을 뚫고 나갈 것이다. 준비 되었으니, 이제 추~울~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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