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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어둠 속의 대화' 후기 - 시각만이 우월하단 생각을 버려 본문

후기/[후기]관람

'어둠 속의 대화' 후기 - 시각만이 우월하단 생각을 버려

gunbbang 2014. 12. 5. 11:26

2014년 단재학교 커리큘럼엔 작은 변화가 있습니다. 1학기부터 시작된 미술 수업과 2학기부터 시작된 음악 수업이 그것입니다.  

둘은 선택 교과 활동으로 목요일 오후에 있으며, 학생들이 선택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것입니다.

미술수업은 학교식의 수업 방식이 아닌 직접 만들고 그리며 움직이는 활동이 주를 이루며, 음악 수업은 아카펠라로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화음을 맞추는 활동이 주를 이룹니다.

각자 활동이 개성이 뚜렷한 만큼 단재 학생들이 재밌어 하며 즐거워 하는 활동입니다.

 

미술팀이 카자흐스탄 문화교류 캠프 때 진도에 내려가 그린 벽화.

 

아카펠라 그룹 '솔리스츠'의 공연 장면. 오른쪽에서 세 번째 계신 분이 단재학생들과 만나고 계신다.

 

12월 5일의 미술 야외 프로젝트

 

어젠 미술활동이 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은 '어둠 속의 대화'를 보기 위해 10시에 안국역에서 모였습니다.

모처럼만에 지훈이도 학교에 왔고 오늘 활동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안국역엔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와 같은 볼거리를 감상하는 단재학생들입니다.

 

모두 모였기에 역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 어둠 속에서 환한 빛으로 나가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흔히 영화에선 탈출을 형상화하든, 뭔가 인식의 변화를 나타내려 할 때 이와 같은 장면을 연출합니다.

 

안국역을 나오면 나오는 정겨운 길입니다. 왼쪽엔 경복궁이 있는 감고당길에 들어섭니다. 이 길은 언제 걸어도 분위기가 좋습니다.  

 

57th 갤러리가 왼쪽에 보입니다. 이 길이 '자동차 통행 금지' 구역이면 좋겠지만, 차가 자주 다니니 걸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바로 이와 같은 분위기 때문에 이 길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정독도서관(옛 경기고)이 나옵니다.

 

 

 

정독도서관과 교육박물관

 

정독도서관에 다다른 우리들은 도서관에 들어갈지 말지를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운치 좋습니다. 지금 강남에 있는 경기고보다 이곳에 있을 당시의 경기고가 더 분위기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독도서관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다들~

 

 

이곳은 서울교육박물관입니다. 옛날 학교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장소도 있으며, 옛 교재들과 교복들까지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한 번 둘러볼 만한 곳입니다.

 

 

 

 

 

떡볶이로 점심을 먹다

 

먹쉬돈나라는 음식점에 점심을 먹으러 왔습니다. 이곳은 떡볶이를 파는 곳인데, 다양한 떡볶이의 종류가 있습니다. 우린 치즈떡볶이와 해물떡볶이를 각 2인분씩 시켰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큰 냄비에 섞어서 나옵니다. 맵진 않고 달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라고 할까요.

 

 

 

 

어둠 속의 대화

 

어둠 속의 대화는 예약한 시간에 와야만 할 수 있습니다. 총 100분 동안 진행되며 8명씩 할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예술작품을 관람한다'는 게 과연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기대는 잔뜩 됩니다.

 

들어가는 입구 왼편에 사진을 찍어 전송할 수 있는 장치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지민이와 이향이, 승빈이, 규빈이는 사진을 찍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오른편에 있는 스크린에 이렇게 사진이 나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사진을 찍었던 아이들은 전문 용어로 '식겁'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상현이까지 사진을 함께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상현이는 일이 먼저 갔습니다. 상현이를 제외한 10명의 단재 학생들과 두 명의 미술쌤들. 이 한 장의 사진은 보물 중 보물이네요.

 

 

어둠 속의 대화 후기

 

 

 

시각을 잃으면 모든 감각이 열린다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는 시각 중심의 세상에 의문을 던지며 지금껏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다른 감각들을 깨워준다.

전시장은 완벽한 암흑 세상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끼고 마주했던 모든 것들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말만 듣고 보면, ‘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테지만 실제로 그렇다.

우린 지금까지 무의식중에 시각만이 가장 우수한 감각이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받으며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 후각, 청각으로 느껴지더라도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할 때, 끊임없이 눈으로 확인하려고 한다. 아무리 냄새가 나도, 불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냥 가설일 뿐이다. 그러다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더 이상 의심 한 점 없는 사실이 된다. 시각은 오감의 한 부분이 아닌, 오감 중 가장 으뜸이 되었다.

그렇지만 눈으로 보는 것이 꼭 진짜는 아니다. 시각이 주는 착각에 의해 우린 속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환상이나 환각을 통해 본 것을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겠는가. 아래의 그림을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우리의 시각이란 게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왼쪽과 오른쪽 선 중 어느 선이 더 긴가?

 

一자로 그어진 선들을 보자. 이 선들은 어떻게 보이는가? 사선으로 보이는가? 직선으로 쭉 그어진 것처럼 보이는가?

 

이 작품은 어떤가? 정상적인 건축물로 보이는가? 이 작품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있다.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폭포]

 

위의 도형들은 어떤가? 혹시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가?

 

어둠 속의 대화는 바로 이와 같은 시각의 압도적인 주도권을 내려놓게 하는 것에 핵심이 있다. 시각만을 믿던 우리에게 시각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순간을 선물함으로 지금껏 잊고 살아왔던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다.

 

 

로드마스터를 따라 떠나는 100분의 여행

 

8명이 한 팀이 되어 전시장에 들어선다. 전시장엔 로드마스터가 있으며 그가 우리를 길로 안내한다. 우리는 숲길, 시장, , 칵테일바 등을 가게 된다. 모든 건 시각이 배제된 청각이나 촉각, 미각, 후각을 통해서만 받아들여야 한다. , 나의 상상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눈을 뜨고 보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더 피곤해질 뿐이다. 눈을 뜨고 살 땐 몰랐지만, 시각을 사용한다는 게 엄청난 에너지를 쓴다는 사실이다. 로드 마스터에 따르면 눈을 뜨면 안구는 빛이 있는 곳을 찾으려 무던히 애쓰기 때문에 눈도 피로할 뿐만 아니라 현기증도 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떠서 어떻게든 보려고 애쓰기보다 아예 눈을 감고 상황을 상상하여 다니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100분이란 시간은 금세 흘렀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나 싶게 순식간에 시간이 흐른 느낌이다. 체감적으로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만큼 온 감각이 열려 있는 느낌은 생각 외로 좋았다. 정말 제대로 느끼고 싶으면,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 기관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을 그제야 알겠더라.

 

 

미술이란 무엇일까

 

로드마스터는 보이는 길을 걷듯 자연스레 우리를 안내했으며,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를 설명할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야간투시경이나 적외선 망원경 같은 것을 끼고 있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 자체가 어디까지나 시각 중심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눈을 뜨고 있어야만 보이며,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시각 외의 모든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공기의 미세한 흐름, 청각의 발달, 촉각의 민감함을 통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더 많은 것을 그 순간 받아들이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시각만을 특화시켜 시각중심의 세상에서 촉각, 미각, 후각, 청각을 퇴화시켜 가며 시각으로 편견(외모지상주의)을 쌓아갈 때, 그들은 촉각, 미각, 후각, 청각으로 세상을 느끼며 진정으로 세상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로드마스터가 왜 학생들과 함께 이러한 전시를 찾아왔느냐?”고 묻자, 윤하쌤이 시각 위주의 미술 작품밖에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있다는 것을 듣고 함께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역시 미술쌤으로서의 고민의 지점을 잘 이야기해주셨다. 그리고 미술의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화두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백남준이 머리에 먹을 발라 한지에 일필휘지로 글(머리를 위한 선Zen for Head)을 썼듯, 뒤샹이 공산품인 변기에 이란 이름을 썼듯, 루치오 폰타나가 스케치북을 칼로 잘라 작품을 만들었듯, 이번 어둠 속의 대화도 그와 같은 파격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예술이다. 이와 같은 파격이 '어둠 속의 대화'에서도 있었다.

 

오감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둠 속의 대화를 꼭 체험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