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13.02.24 대안, 대안, 대안 본문
2월 18일에 검정고시 원서 접수를 하러 가는 길에 건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건호의 고민은 ‘카작어가 하기 싫다’는 것이었고 거기에 찬동한 나도 별 고민 없이 그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하기 싫다면 다른 것을 하라는 이야기로 흐른 것이다. 이 판단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억지로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계기로 하여 다른 것들을 얻게 될 수도 있지만 화만 가득한 것을 참아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그걸 말했을 땐 단순히 필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는데 받아들이는 건호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표현하지 않았다뿐 ‘효율주의 신화’, ‘등가교환이란 신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걸 건호가 드러낸 것뿐이다.
어제 이향엄마의 글이 올라왔다. 필요에 의한 선택이라면 크게 문제가 있다는 것. 하다보면 재미도 붙고 단체활동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이상 내 의지만을 좇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건호의 건에 국한하여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단순히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하기 싫을 수도 있다. 공부가 그런 것이기도 하다. 의미의 생성은 외부로부터 오는가? 내부로부터 오는가? 그게 아무리 의미가 있는 일이라해도 싫다는 것을 무작정 고집하며 가는 게 옳은 것일까? 그러다 이도저도 아니면 ‘그래도 널 위해서 그랬어.’라는 핑계라도 대려고. 공부가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어선 안 되며 외국어 공부는 특히 ‘필요에 의해 접근해선 안 된다’라는 말을 익히 들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이든 계기는 필요에 의해서건, 강압에 의해서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건 마련되는 게 아닐까. 건호가 보는 세상이 협소하고 관심의 영역이 한정되어 있으며 의지 또한 약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일방적으로 하나의 틀 속에 몰아넣는 게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의미성은 차후에 드러나겠지만 무의미 가운데 의미를 찾는 일은 버겁고도 힘겹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호는 누군가 마련한 의미를 붙잡느라 허덕이기보다 자신의 장점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난 순수한 측면이 있는 건호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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