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소원을 말해봐 - 디자인 된 세계, 그 속에서 살기 or 그 밖으로 탈주하기 본문
우리의 의식은 ‘디자인 된 세계’에 갇힌다. 프로그래밍된 대로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한다. 그게 왜 문제인지,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못하는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프로그램에 충실한 행동이지만 의식 저편의 반대나 찬성은 프로그램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머물지 말고 그 본질을 직시할 때 넘어서고 새 것을 창안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소원을 말해봐』란 영화는 보는 내내 꺼림칙했고 불편했다. 남자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인지, 생각이 닫혀져 현실안위에만 힘을 쏟는다는 내용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참고 봤던 건 무슨 의미든 건져낼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절망스럽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해볼만한 장면이 있었다. 여자 두 명이 갇히게 되고 처음엔 저항하지만 자신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생존전략을 바꾼다. 회피에서 적극적인 대처로 상황을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즉, 남자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고 자신의 작은 성취나마 얻는 것이다. 이거야 그럴 수도 있겠거니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나가는 게 최종 목적이기 때문에 하루씩 성취해 나가 남자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놓고 두 여자가 목적을 달성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목표는 다른 여자보다 남자에게 어필하여 그 남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만들어 놓은 지도 모를 틀 속에 갇혀 남자의 한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다른 여자를 죽이는 상황에 이른다. 둘이 힘을 합해 남자라는 체제를,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체제를 수용하고 경쟁자로 느껴진 다른 사람을 죽인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한심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지금 내가 꼭 그렇다. 누구도 정해놓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정해놨다해도 명확한 게 아님에도 내가 좀 더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주목을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바로 이런 생각 자체가 틀 속에 갇혀 있는 생각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깔아 뭉개버려야 내가 주목받는다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나만의 장점을 부각시키면 된다. 그렇게 해도 나 자신이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디자인 된 세계를 당연히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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