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11.07.26 현직 편집자에게 평가를 받다 본문
잘 살아 왔었노라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었노라고, 누구보다 고민하며 살아왔었노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누구보다’의 ‘누구’가 정의되지 않는 한, 그건 자기기만이었을 뿐이었다. 난 오늘 그 뼈저린 현실을 온 몸으로 느꼈다. 아무 것도 없이 기만으로 일관했던 나의 모습을 보고야 만 것이다.
자기소개서를 현직 편집자에게 평가 부탁하다
어제 그린비 출판사 편집자인 분에게 메일을 보냈다. ‘바다출판사’에 열과 성의를 다 한 자기소개서가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면서 충격에 빠졌는데 헤매고 있을 수만 없어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궁즉통, 그게 딱 맞는 말이다. 처음엔 그냥 자료와 정보만 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의 기본에 대한 조언 없이 번드르르한 외형 꾸미기만 할 경우 오히려 ‘속 빈 강정’이 될 것이기에 나를 개방하기로 했다. 기본적인 정보 없는 조언은 사상누각처럼 붕 뜬 왜곡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보여주는 건 나에게 큰 용기 있는 행동이었지만 하나 하나 새롭게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점에 직면할 때, 돌파구도 생긴다고 믿는다.
냉혹한 비평, 그리고 직면
하룻밤 만에 답메일이 왔다. 난 다양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실제로 난 나의 떨어짐이 자료의 부족, 편집자로서의 마인드 부족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것 전혀 없이 나의 글에 대한 비평 및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에 대한 내용만 쓰여 있더라.
그 내용을 요약하면 ‘왜 편집자가 되고 싶은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니 더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 ‘책읽기를 더욱 깊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읽고 있으니, 당연히 쇼킹할 수밖에 없었다. 글쓰기나 책읽기,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은 누구보다도 치열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자신 있던 부분이 형편없다고 평가 받았기에 충격적이었다. 난 지금껏 철저히 날 치장하고 기만해 왔던 것뿐이다. 물론 일반인들보다 이런 부분에서 뛰어날진 모르지만, 이런 부분을 업으로 삼고 있는 편집자들에 비하면 형편없었던 것이다.
이런 현실임에도 겁도 없이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는다’고 울분을 터뜨리고 출판사에 들어가겠다고 이력서를 내고 있었으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얼마나 내가 웃기게 보였을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현실직시이고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는 힘인 것이다. 더 이상 나를 치장하려 하지도, 대충 넘어가려 하지도, 적당히 자기만족을 하지도 말자. 이젠 전면적으로 나를 바꿀 수 있는 변혁만이 내가 웃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변수이므로.
잠시의 좌절, 긴 신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형편없는 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교의 가르침대로 내 안에 가능성은 충분히 구비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것들이 발산되기 위해서는 나의 앞서는 마음, 조바심, 날 믿지 못하는 마음 등 온갖 망상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내 의식이 비워질 때에 나의 가능성이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느슨함도 느긋함도 아닌 무언가를 할 땐 그것 자체에 몸을 맡기고 노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아일체, 그건 치밀한 내적 성찰(자신에 대한 믿음) 뒤에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이젠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몸과 맘을 다하여 치열하고 신나게 달려갈 것이다. 안 된다고 좌절만 하고 있기엔 인생은 너무도 짧고 복합적이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명언 한 마디, ‘인생은 참 정확하더군요’라는 말이다.
편집자가 왜 되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Q: 왜 편집자가 되려 하는가?”
A: 솔직히 교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Q : 교사가 안 되더라도 딴 직업도 많은데 굳이 편집자를 택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왜 편집자가 되려 하는가?
A: 책읽기를 좋아하고 그런 일이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Q: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책을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미식가는 최고의 요리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무언가 현실 인식이 제대로 안 된,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 왜 편집자가 되려 하는가?
A: 단순히 책읽기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내 자료집을 손수 편집해 본 경험도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인 것 같아 선택한 것이다.
Q: 그 이유 때문이라면 꿈을 바꾸는 게 나을 것이다. 지금 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뿐더러 넌 자질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문답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편집자가 되려고 맘먹은 계기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솔직히 운일암반일암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편집자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평소에 ‘출판사에 들어가 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쯤이면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손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서 생각과 생각이 마주쳐 가능성을 알게 되었는데, 그게 전혀 현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생각은 너무 유치했고 현실은 너무 단촐했다. 그런 인식으로 도전을 했으니 물 먹는 건 당연했다.
그러므로 편집자가 되려 한다면, 왜 되려 하는지, 하필 편집자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더욱 명확히 해야 한다. 내 자신의 의지가 명확할 때 진심어린 이야기도 흘러나올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럴 때 그린비 편집자가 써준 말대로 ‘나의 진심이 통하는 인연이라면 진짜 인연이 아닐까요’이지 않을까. 그런데 난 흐물흐물 했으니, 글 또한 목적의식 없이 중언부언 했던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바다출판사에서 떨어진 건, 너무도 당연하다.
생명력을 일깨우는 것 두 가지, 교육과 책 제작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지자. 왜 편집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직업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편집자는 던져진 원고를 보기 좋게 꾸며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출간할지 기획하고 내용을 어떻게 꾸미며 보기 좋게 편집하며 어떤 방향의 책이 되게 할 지를 생각한다. 내용을 요소요소에 맞게 꾸미며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그림을 배치하고 자간, 글자체 등 모든 걸 구성한다. 책이 완성된 뒤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보도자료 및 홍보자료까지 만들어야 하니, 편집인은 종합예술인이라 해야 맞다. 내가 이 모든 걸 진두지휘할 역량이 되는지 나조차 궁금하다.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편집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그건 만용이거나 한 번 도전해보자 하는 식의 낙관주의이거나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 편집자가 되고 싶은가? 이렇게 궁지에 몰리고 보니 의기소침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다시 꿈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럴수록 더욱 흥미가 일기도 한다. 그건 어찌보면 교사라는 판에 박힌 직업보다, 그래서 남을 늘 억압해야 하고 자신의 생생한 감정을 억압해야 하는 직업보다 더 끌리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성, 그리고 관계성, 그리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 바로 책이란 매체로 생산되며 세상에 통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생한 삶의 감각을 존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날 억누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 안에 들어 있는 구비된 가능성을 맘껏 펼쳐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편집자가 되고 싶다. 세상에 세상의 이야기들을 펼쳐 보이며 살아 있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내가 먼저 나의 가능성에 집중하고 그 역량을 맘껏 드러내야 한다. 글의 전개를 만들 뿐만 아니라, 글이 살아 움직여 세상에 녹아들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교사가 되려 했던 다짐이 생각난다. 난 아이들을 억압하고 죽이는 교육이 아닌 아이들의 가능성을 고양시키며 당당히 세상에 나가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살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바로 그런 면에서 교육과 책제작은 통한다. 생명력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말이다.
시작할 수 있는 힘
이제 시작이다. 시작은 무언가를 새로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외부환경의 변화만으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제까진 놀다가 오늘 공부하기로 했다고 해서 그게 시작이라고 할 순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시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일 뿐이다. 흐름 속에 시작이란 계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하기 위해선 전면적인 신체 내외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비근한 예로, 장사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은 마음과 몸을 전부 바꿔야 한다. 그럴 때에 장사를 통해 무언가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분투’해야만 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편집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려 한다면 모든 걸 바꾸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는 치열해야 하며 절대 양보나 물러섬, 이쯤이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시작이란 결과는 분투라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건 시작이 단지 무언가를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몸과 맘의 관성을 뛰어넘어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구조로 위에 쓰여 있는 ‘이제 시작이다’라는 말을 본다면, 예리한 칼날이 목 앞에 놓인 것처럼 섬뜩할 것이다. 그건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며 지금과 다른 삶을 살도록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하려고 맘먹은 그대여 시작할 수 있도록 분내어 힘껏 달려보자.
대나무는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채 몇 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가는 줄기가 높게는 수십 미터까지 올라간다. 마디가 있는 까닭이다. 마디가 없는 삶은 쉽게 부러진다. 아무리 바빠도 삶의 마디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주말도 있고, 여름휴가도 있는 거다.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삶의 마디를 잘 만들어 ‘가늘고 길게’, 아주 잘 사는 것을 뜻한다. -「한겨레 신문」, 2011.08.09.,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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