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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11.08.13 다섯번째 자소서를 쓰며 본문

직장/취업 분투기

11.08.13 다섯번째 자소서를 쓰며

gunbbang 2011. 8. 13. 10:54

맘과 같지 않기에 도전해볼 의사가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련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거기에만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킬 수 있길 바라는 것뿐이다.

결국 무턱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전에 내 의사를, 그리고 무엇이 정말 하고 싶은지 분명히 하라는 것인데 뭐 생각처럼 쉽게 정해지는 건 아니니 답답할 뿐이다.

어젠 하루종일 자소서를 썼다. 벌써 다섯 번째 자조서를 쓰는 건데. 이번엔 새 틀을 다시 짠다는 심정으로 썼다. 그런데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인지, 내 글에 대해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인지 잘 써지지 않더라. 아직도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6시에 제출하기 전까지 수정을 거듭하긴 했지만 최근에 써본 어떤 글보다 어려웠고 흐름도 거칠기만 했다. 뭔가 기존에 해왔던 생각들을 한 편의 완정한 글로 풀어낸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글쓰기에 대한 힘겨움. 글을 주구장창 10년여를 써왔는데, 그래서 나름 글이라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고 느꼈었는데 그게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던 거다. 지금 느끼는 건 나의 한계다. 그리고 다시 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뿐이다. 솔직히 내가 잘 하는 건 무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갈수록 자신이 없어지는 건지, 원래부터 겸손한 사람이었는지 헛갈리기까지 하다.

첫 번째 도전은 한겨레 교육이었다. 자소서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지만 나만의 방식대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담았다. 왠지 잘 먹힐 것 같았다. 그런데 첫 도전에선 실패했고 몇 개월 후에야 연락이 왔다. 면접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자소서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없더라. 그 순간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두 번째, 세 번째 도전은 달 출판사바다 출판사였다. 자소서를 전면 개정했다. ‘너무 길다는 핀잔을 한겨레 교육 면접장에서 들었던 터라 최대한 짧으면서 핵심적인 내용만 담기도록 자소서를 구성했다. 출판에 관해 이제 고민하기 시작한 것치고는 괜찮은 내용이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의미가 있고 무언가 전해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회의감이 밀려왔다.

네 번째는 고전번역원이었다. 나의 전공과 관련 있는 곳이기에 부담 없이 글을 썼다. 솔직히 되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라는 심정이 대강 쓰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긴장하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쓴 글이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는 자소서가 되었다고 본다. 한문에 대한 열정이랄지 하는 것들도 잘 표현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하게 평가한 나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번에 쓴 자소서는 다시 군살을 빼지 않은 처음의 자소서로 돌아갔다. 더욱이 시간에 쫓겨 쓴 것이기에 깊이나 내용도 형펀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 아직 한참 부족하구나. 어디에다 내놓기 부끄럽구나.

 

 

지렁이가 우글거리는 살아 있는 땅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들 가운데 대부분은 잡초가 아니다. 망초도 씀바귀도 쇠비듬도 마디풀도 다 나물거리고 약초다. 마찬가지로 살기 좋은 세상에서는 잡초 같은 인생을 찾아보기 힘들다. -흙을 밟으며 산다, 46p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모든 중생이 부처로 거듭나는 세상, 한 마디로 살맛나는 좋은 세상이 다른 세상이 아니다.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상동, 14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