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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황경민 - 어디로 갈 것인가? 본문

책/[책]좋은 글은 심금을 울린다

황경민 - 어디로 갈 것인가?

gunbbang 2016. 6. 1. 18:17

나는 지금도 세월호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선장도, 유병언도, 해경도, 박근혜도 아닌 교육(체제)이라고 생각한다.(물론 그들의 책임은 끝까지 물어야 한다.) 배가 물속으로 가라앉는데도 카톡을 하는 18세의 아이들, 쥐새끼도 살려고 뛰쳐나올 시각에 가만히 있으라했다고 가만히 있은 아이들, 생존의 감각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키운, 생명의 감각, 생존의 감각을 왜곡시킨 교육(체제)이라고 생각한다. 그 교육을 받아들인 나 자신, 부모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 교육을 거부하지 않은 우리의 생활, 그 내면화된 일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부를 향한 외침만큼, 내부를 향한 변화도 필요하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집회를 하고 서명을 받고 촛불을 켜면서도 내 아이는 바로 그 학교에 보내고 있는, 내 아이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내 아이는 성적이 올라야 하는, 내 아이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이 내면화된, 체제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순종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약자가 되지 말고 강자가 되기를 바라는, 실패자가 되지 말고 성공자가 되기를 바라는, 패배자가 되지 말고 승리자가 되기를 바라는, 결국 좋은 세상이 아니라 나쁜 세상이더라도 내 새끼만은 살아남기를 바라는, 이 뿌리 깊은 각자도생의, 내면화되어 성격으로, 습관으로, 생활로 굳어진 정언명령, 의심 없는 신앙보다 강력하고 절대적인, 이 기복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집회도 시위도 서명도 촛불도 리본도 다짐도 다 좋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변화를 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실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것이 체제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혁명을 바라지 않고, 체제 안의 선거 따위에 기대는 일이라면, 그것이 삶과 공존과 어울림의 교육에 가 닿지 않고, 경쟁과 분리와 배제의 교육에 가 닿아있다면, 그것이 나 자신의 성숙과 반성과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너의 책임과 잘못과 처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그것이 체제의 정언명령을 거부하지 않고, 거기에 순종한 채 내 자식과 내 가족의 안위만을 지키는 일이라면!

 

 

 

45도 기울어진 배에 타서 나만 아니기를 바라는 우리들

 

기실 우리는 모두가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 있다. 교실이라는 배 안에, 입시라는 배 안에, 취업이라는 배 안에, 아파트라는 배 안에, 핵발전소라는 배 안에, 남자/여자라는 배 안에.......

그러고는 모두가 끝없이 타자를 배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친구를, 동료를, 이웃을, 노인을, 아동을, 장애인을, 노숙인을, 외국인노동자를, 소수자를..... 배 안의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으면 침몰할 것이라는 신념을 그 누구도 다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배가 어디로 향해가는 건지는 기실 아무도 모르며,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이 배의 키를 누가 쥐고 있으며, 이 배의 소유주는 누구이며, 이 배를 왜 올라탔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왜 이 배의 소유주는 이 배를 타고 있지 않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계속 항해해서 나아갈 것이 아니라 어디라도 정박해서 내릴 사람은 내리고 탈 사람은 승선하자는 의견조차 내놓지 않는다. 보이콧을 하지 않는다.

45도로 기운 배가 여전히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다. 선체의 3분의 2 이상이 물속에 잠긴 채로 여전히 어딘가로 항해하고 있다. 배 밖으로 누군가 떨어질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안심하면서, 물밖에 나와 있는 3분의 1, 30분의 1, 300분의 1 위로 올라서면 잘 살 수 있다는 듯이, 안전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