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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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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단상

과거의 현재

gunbbang 2012. 2. 21. 10:00

1974년엔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이 있었다.

 

 

백두산천지, 그 넘쳐 흐르는 맑은 가슴은 43년 넘어 삭이고 또 삭이는 우리들 그리움의 끝이자 희망의 시작이다. 한라산백록담이 4천만의 것이 아니듯, 백두산천지는 2천만의 것이어서는 안된다. 6천만의 것이어야 한다. 한라와 함께 삼천리를 끌어 안고 있는 백두는 우리더러 백두와 한라가 뜨거운 심장으로 용트림할 그날을 앞당기라고 몸부림치고 있다.

통일이 없으면 도 없고 우리도 없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한반도는 분명 하나이듯, 백두와 한라의 만남으로 한반도는 새로 개벽한다. 새아침을 맞이한다. 보라, 어제도 오늘도 동해에서 솟는 해는 한 가지 다스함으로 남과 북을 어루만지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줄기줄기 이어진 산맥은 한 목소리로 웅장한 합창을 하고 있다. 모든 증오와 상처를 씻어내고, 모든 사슬을 끊어내고, 오로지 지순한 영혼만으로 부둥켜 안으라고, 신동엽 시인은 노래했다.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이제 백두산천지를 보고 모오든 껍데기와 쇠붙이가 없는 한반도를 한눈에 보아야 한다.

 

 

우리는 떨리는 감격으로 오늘 이 창간호를 만들었다. 세계에서 일찌기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국민모금에 의한 신문창간소식이 알려지자 그간 수십명의 외신기자들이 찾아왔고, 우리 역시 억누를 수 없는 감격으로 전혀 새로운 신문의 제작에 창조적 긴장과 흥분으로 이날을 맞이하였다.

한겨레신문의 모든 주주들은 결코 돈이 남아돌아 투자한 것이 아니요, 신문다운 신문, 진실로 국민대중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참된 신문을 갈망한 나머지 없는 호주머니 돈을 털어 투자한 어려운 시민층이므로 이 신문은 개인 이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재래의 모든 신문과는 달리 오로지 국민대중의 이익과 주장을 대변하는 그런 뜻에서 참된 국민신문임을 자임한다.

이와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에서 앞으로 새 신문을 제작하고자 한다.

첫째, 한겨레신문은 결코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독립된 입장 즉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장차의 정치경제문화사회문제들을 보도하고 논평할 것이다.

왜 이같은 점을 강조하느냐 하면 지금까지 거의 모든 신문들이 말로는 중립 운운하면서 현실로는 언제나 주로 권력의 견해를 반영하고, 한때는 유신체제를 지지하다가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어느새 유신을 매도하고, 새시대 새질서를 강조하고,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자 일제히 이제까지 우러러 모시던 전정권을 매도하는, 하룻밤 사이에 표변하는 자주성없는 그 제작 태도야 말로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지극히 위험한 언론으로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별히 야당 여당 할것없이 어떠한 정치세력과도 특별히 가까이 하지도 않고, 특별히 적대시 하지도 않고 오로지 국민대중의 이익과 주장만을 대변하겠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재래 신문사의 많은 언론인들이 이렇게 표변하는 까닭은 그 원인을 그들이 윤리도덕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늘의 한국언론기업의 구성이 이미 순수성을 잃고 독립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이 정치세력 앞에 공정할 수 있는 힘은 무엇보다도 신문사의 자본구성이 국민대중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겨레신문이 정치적으로 절대 자주독립적임을 거듭 밝히고자 한다.

둘째, 한겨레신문은 절대로, 특정사상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시종일관 이 나라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분투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안에서 사상적으로 자유로운 입장임을 거듭 밝힌다.

한겨레신문이 이 사회에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염원외에는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과도 까닭없이 가까이 하거나 멀리하지 않을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일부 정치군인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 고도성장을 이루어 놓았다고 구가하고 있으나, 안으로는 빈부의 차를 심화시키고 밖으로는 예속적 경제구조를 굳혀, 성장이 되면 될수록 오히려 사회불안이 조성된다는 지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반항적인 민중이 경제성장이 되면 될수록 더욱 거세게 저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제까지 집권자들은 이러한 불안정을 경제정책의 민주화로 개혁할 생각은 않고, 안보를 강조하여 반항하는 민중을 탄압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각종 구실로 언론자유를 억압하여 정보를 독점하고, 그 뒤에서는 권력을 휘둘러 부정과 도둑질을 자행하여 당대에 천문학적인 치부를 하는 것이 이제까지 우리나라 권력의 일반적 행태였다.

자유롭고 독립된 언론은 따라서 권력의 방종과 부패를 막고 국민의 민권을 신장하여 사회안정을 기할 수 있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운동이랄 것이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남북간의 관계개선을 위해서 특히 동족의 군사대결을 지양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치부를 위해 광분하는 자일수록 남북간의 군사대결을 필요로 하고 그럴수록 안보를 강조하고, 정보를 독점하여 독재를 자행하는 것이 이제까지 이 나라의 독재정권의 특징이기도 했다.

따라서 민주화는 남북문제의 해결에 불가격의 조건이 되나 한편 남북관계의 개선은 민주화를 위해 불가결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민주화와 남북관계의 개선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한가지 문제의 표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남북통일 문제는 전민족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생사가 걸린 문제로서, 어느 누구도 이를 독점할 수 없으며, 이런 뜻에서도 민주화는 기필코 실현되어야 한다.

한겨레신문은 따라서 이 나라에 이제까지 이데올로기로서만 이용되어온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언론을 실현하기 위해 앞장서 노력할 것이다.

신문사에는 자기 봉급의 절반도 안되는 수입을 감수하고, 참된 신문기자가 되어보겠다고 기성 타신문사에서 옮겨온 야심적인 기자들이 수십명에 달하고, 다른 어느 신문사 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한 유능한 수습사원들이 수두룩하고, 그리고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십여년간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어 보겠다고 온갖 고난을 참고 오늘까지 견뎌온 수십명의 해직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제작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한겨레신문의 등장은 틀림없이 타성과 안일속에 젖어있는 기성 언론계에 크나큰 충격과 파문을 일으켜 한국 언론에 하나의 획기적 전기를 가져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겨레신문의 3만명에 달하는 주주들은 참된 신문을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투자를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염원은 오늘날 4천만 전체 국민 대중의 꿈이지 어찌 한겨레 주주들만의 꿈이겠는가.

한겨레신문은 실로 4천만 국민의 염원을 일신에 안고 있다 해서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겨레는 기성언론과는 달리 집권층이 아닌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위에서가 아니라 밑에서 볼 것이다. 기성언론과는 시각을 달리 할 것이다.

515일 창간일을 맞아 밤잠을 설치고 창간준비에 심혈을 바친 3백여 사원들의 노고를 만천하의 독자들에게 알리며, 참된 언론을 지향하는 한겨레신문에 뜨거운 격려와 성원을 보내 주시기를 손모아 빌고자 한다.     송건호 <본사 발행인>

 


 

YTN 해직 기자 노종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