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님은 먼 곳에 -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본문
내가 좋아하는 이준익 감독의 최신(08년작)이다.
이 영화는 이준익 감독이 계획한 음악 영화 3부작 중 마지막 영화이다. 1편은 라디오스타(한물 간 스타의 이야기), 2편은 즐거운 인생 (40대 가장의 밴드 이야기) , 3편은 님은 먼 곳에 (여성의 시각으로 본 사회).
‘님은 먼 곳에’란 제목이 와닿았던 이유는 노래 가사만큼이나 애절한 영상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순이는 남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나? 가부장제의 삶, 그 부조리를 맞설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시댁에서도 처가에서도 눈엣가시로 취급당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떠난다. 거기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감이나 거부감 따위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냥 지금껏 수동적으로 살아왔듯 누군가가 하라는 대로 끌려 다니면 된다.
참한, 그래서 바보였던 순이. 그녀는 누군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 어떤 대체물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떠난 그 자리에서 순이는 예기치 못했던 수많은 클리나멘과 부딪친다. 그러면서 점차 알아간다. 아니 조금씩 성장해 간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자신의 안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있음을 말이다.
첫 공연에서 뼈저린 실패를 경험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더 강해진다. 당당히 자신의 요구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살았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길 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게 되었으며 그걸 당당히 말하게 된 것이다. 그간 숨겨두었던 자신의 모습이 그 때부터 여지없이 드러난다.
써니, 위에 있는 '순이'와 같은 사람이라 볼 수 있을까? 그 혁명과도 같은 변화 속에 삶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의문이 남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자신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변했으면서,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변했으면서 왜 끝까지 남편을 찾으려 했던 걸까? 이 곳까지 왔다는 아쉬움 때문인가? 아니면 아직도 남편에게 미련 같은 게 남아 있기 때문인가? 이런 심리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건 남편과의 재회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집고 넘어서야할 통과의례였다는 사실이다. 만약 순이가 그 자리에서 남편을 보고 예전에도 그랬듯이 순한 양처럼 가만히 처분을 바라고 있었다면, 이건 혁명이 반쯤 이루어지다가 만 어정쩡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미완의 상태로 이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뺨을 때린다. 그것도 연거푸~ 그건 악이 받힌 폭력이 아니다. 회한의 심정이 가득 담긴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그간의 억압된 자기 자신에 대해, 세상과 인간관계에 맞서지 못하고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남편과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럴 듯한 명분으로 국민을 수단으로 몰아붙인 국가에 대해. 그 장면이 유독 감동적이며 통쾌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세상과 사람의 명분과 용기 없음에 대한 일갈이었으니까.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상 주체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이 영화만큼 그 가능성을 적절히 보여주는 영화도 드물다. 어떤 구호에 멈춰선 안 된다. 지금도 그렇듯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끝이 없기에. 과연 이 두 사람이 훗날 행복하게 지냈을까 하는 건 논외로 쳐야 한다.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삶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 속에서 이루어질 테니까. 혹 훗날의 삶이 불행하다 하더라도 어쩔 텐가? 그 경계선 상에서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인 것을.
鶴山守 通國之善歌者也 入山 習每一曲 拾沙投履 滿履乃歸 嘗遇盜 將殺之 依風而歌 群盜莫不感激泣下者 此所謂死生不入於心 <燕巖集>
(학산수는 나라에서 제일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다. 산 속에 들어가서 매일 한 곡씩 부른 후에 모래 한 알을 들어 신발에 넣는다. 그 모래가 신발에 가득 찬 후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루는 도적을 만났는데 곧 그를 죽이려 하자 바람 소리에 장단을 맞춰 노래를 불렀다. 도적들이 그 노래를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바로 이런 경우를 '죽음과 삶 마저도 마음에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연암집의 내용과 영화에서 노래를 하여 위기를 벗어나던 저 장면이 포개진다. 써니도 겨눠진 총구 앞에서 노래를 불렀으니까. 정말 멋진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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