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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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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단상 - 정면돌파를 택한 감독, 정면돌파 속에 배인 감동

gunbbang 2015. 9. 19. 14:18

이준익 감독이 사도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던 영화가 드디어 개봉했다.

그가 만든 라디오스타는 최고 흥행작 왕의 남자바로 다음에 만들어졌음에도, 힘을 잔뜩 빼고 스토리가 가진 힘으로 승부를 본 걸작이었고(라디오스타 후기보기), 님은 먼 곳에는 자기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구렁덩덩 신선비의 영화버전 같았다(님은 먼 곳에 후기보기).

 

 

각 영화마다 전혀 다른 색으로 연출을 했다. 음악영화엔 음악영화로, 전통극엔 전통극으로.

 

 

하지만 그 후에 개봉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원작 만화를 다르게 해석하여 연출한 탓에 실패의 쓴 잔을 마셔야 했고, 평양성황산벌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는 바람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의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영화로 풀어내는 것에 늘 공감하던 터라, 그의 연이은 흥행 실패는 무척이나 아쉬웠고 그의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잘 되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늘 승승장구할 순 없나 보다. 아무래도 부침은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평양성] 후 은퇴선언을 했을 땐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소원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다음 작으로 분위기가 무거울 대로 무겁고, 진부할 대로 진부해진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이쯤 되면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과연 그가 만든 사도는 어떤 영화일까?

 

 

[소원]에서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는데, 과연 [사도]는 그의 저력을 보여줄까?

 

 

묵직한 주제를 묵직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장중한 음악으로 풀어냈다. 장헌세자와 영조의 대립은 어찌 보면 아버지의 기대치에 들지 못하는 뭇 아들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조선시대와 현시대에 공감대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그와 같은 아버지와 아들들의 대립일 터다. 아버지는 그 시대에서 우뚝한 존재로 서길 바라며 끊임없이 조금 더를 외치고, 아들들은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날까 노심초사하지만 때론 그 기대를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이중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힘겨워 한다. 이준익 감독은 이 두 감정의 대립을 동시에 비춰주는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고, 우린 영화를 따라가며 둘의 감정이 어떤지, 그리고 무엇이 그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지 여실히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아버지들은 영조의 마음에, 아들들은 장헌세자의 마음에 이입할 수 있는 것이다.

장헌세자가 아들인 이산에게 넌 공부를 왜 이리 좋아하냐?”라고 묻자, 이산은 할아바마가 좋아하시니까요.”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장헌세자는 난 그래서 공부를 싫어한다라고 말한다. 대사를 100% 기억할 순 없기에 떠오르는 대로 써본 것이지만, 이 대사야말로 어찌 보면 영조와 장헌세자의 비극을 압축한 대사라 할 수 있다.

 

 

[사도]는 세상 모든 아버지와 아들들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개그 요소나 느슨해지는 에피소드 없이 진행된다. 그렇다고 그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극이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하지도 않는다(물론 이런 무게감 있는 내용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다). 요소요소 흘러나오는 옥추경玉樞經’은 격정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가슴 뛰는 흥분을 자아낸다.

여러 번 울컥하긴 했는데, 영빈 이씨 회갑연을 치룬 후 대문 밖으로 행차하며 장헌세자는 정순왕후 때문에 여러모로 핍박을 받고 뒤웅박 신세가 된 어머니의 한을 생각하며 중전마마(중전은 정순왕후이나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려 그리 부름) 납시오를 외치며 행차를 방해하는 날파리들에게 칼을 휘두른다. 자신의 한과 어머니의 한을 그리도 처절한 몸부림으로 표현하고 있었기에 절로 눈물이 났다.

 

 

나도 이분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쳐본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면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더욱 풍성해지겠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이고, 이준익 감독의 저력을 느낄 수 있던 영화이며, 정면 돌파를 택해 제대로 먹혀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묵직한 주제를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역사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아버지와 아들들의 감정을 동시에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