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망각의 능력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 본문
김연아가 놀라운 일을 해냈다. 파이널 그랑프리에서 2연패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살펴보고자 하는 건 2연패를 했다는 그 성취감이 아니라 실수를 딛고서 우승을 했다는 사실이다. 사진에도 잘 나와 있다시피 트리플 악셀을 하던 도중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피겨스케이팅에선 단 한 번의 실수로 4~5점이 날라가기 때문에 실수 자체는 실패와도 같다. 그런 까닭에 한 번의 실수는 육체적 위축과 심적인 부담을 낳아 연이은 실수로 이어진다. 바로 이런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놀랍다는 것이다. 그 한 번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더욱 열심히 정석에 따라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가산점을 많이 받음으로 우승할 수 있었다. 최초에 목표했던 200점대를 넘지는 못했으나 그의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를 이겼으며 2연패를 달성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하겠다.
김연아가 전해온 낭보를 들으면서 왠지 몸이 떨리는 전율이 느껴졌다. 그 순간 떠오른 단어들은 '실수, 극복, 과거, 망각의 능력' 따위였다. 그녀에게 탁월한 점이 있었다면 피겨스케이팅 기술보다 실수를 인정하고 망각할 수 있었던 힘이다. 실수하는 순간,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게 마련이다. 그 실망은 고스란히 자기의 행동으로 나타나 행동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즉, 자기의 실수를 자기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난 완벽한 사람인데....', 아니면 적어도 '이런 실수를 할 만한 사람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있다 보니, 실수를 하고난 후의 자신의 모습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의식과 행동 사이의 괴리는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여기서 정작 중요한 건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건 곧 자아에 대한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즉,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실수를 인정하기 쉬운 반면, 자아비하감이 높은 사람은 실수를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왜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 있는가? 자아존중감은 자기에 대한 긍정적 심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 자체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게 자기에게 엄청난 결점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그 실수를 하나의 계기로 삼아 더 나은 자신을 만들려 한다. 하지만 자기비하감이 높은 사람은 실수 그 자체가 자기의 결점이 노출된 것에 다름 아니기에 그걸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인정함으로 감내해야 할 심적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방침은 문제에 직면하여 넘어서려하기보다는 늘 회피하여 얼렁뚱땅 사태를 넘기려 한다. 바로 이런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김연아가 둘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정작 낭보에 전율을 느낀 까닭은 단순히 그녀가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실수를 인정하고 그걸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정신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정하되 그 실수에 얽매인 사람은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 일찍이 니체는 '망각'을 하나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망각이 건망증처럼 인식되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상 망각은 건망증과 다르다. 건망증은 기억해야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인 반면, 망각은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을 잊는 것이니 말이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건망증은 무의식적이지만 망각은 의식적이다. 즉,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망각함으로 평소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니체가 권한 망각은 그냥 단순히 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일종의 휴식 또는 충전과도 같은 것이다. (....) 니체의 망각은 잊어야 할 것을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는 초월론적 결단의 자리에 주체가 서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니체는 '망각'을 "망각이란 단순한 타성이 아니라 일종의 능동적인 엄밀한 의미에서 적극적인 저지 능력"이라고 정의한다.(131P) 『노자:국가의...』 강신주 저' 김연아는 실수를 초월론적 결단의 자리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내린 망각을 통해 하나의 계기이자 기회로 바꿀 수 있었다.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이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어찌보면 지금의 내 상황이 김연아가 실수했던 그 순간과 같기 때문이다. 주저앉아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그런 나에게 필요한 건 왜 이런 상황에 닥쳤는지 따져보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실패 자체가 나에게 엄청난 고통이 되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바로 그럴 때에 그 인정한 것 자체를 적극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망각이 가능해지니 말이다. 그것을 나의 강박관념이나 자격지심으로 남겨놓지 않으려는, 그렇게 함으로 나의 창조하려는 의지를 키울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넘어서야 하는 건 타인이나 환경 따위의 외부조건이 아니다. 정작 나를 뛰어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바로 그런 삶의 모습을 파이널 그랑프리에서 요약적으로 잘 보여줬다. 낙담한 표정과 우승메달을 목에 걸 때 환한 표정이 매치를 이루며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울린다. 망각과 창조는 사랑과 미움만큼이나 동전의 앞뒷면처럼 맞닿아 있다. 김연아야, 넌 어리지만 어찌보면 나의 인생 선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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