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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旅程錄卷之九序(아홉 번째 일기장을 시작하며) 본문

건빵/글쓰기

旅程錄卷之九序(아홉 번째 일기장을 시작하며)

gunbbang 2008. 8. 18. 22:30

 

새로운 일기의 첫 장을 쓸 때면 언제나 약간 긴장이 된다. 늘 쓰던 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지극히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긴장을 하게 되는 걸까? 어찌 보면 이 질문 자체가 우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봐도 처음이란 관념엔 언제나 긴장과 기대가 따르게 마련이다.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있고 어떤 식으로 변화를 줘야하는지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긴장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 할 것 같다. 과연 무엇 때문에 긴장하는 것인가? 바로 이 무엇이란 것에 이 서문을 쓰는 이유가 담겨 있다.

 

 

 

언제나 첫 장을 쓰는 건 떨린다

 

벌써 9권 째 일기를 쓰고 있다. 그 중 7권과 8권은 진짜로 두꺼운 일기장이었으니, 이미 그 일기양은 9권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일기를 쓰면서 나의 생각들이 변했고 나의 생활들이 변했다. 그 변화는 완만한 것이어서 변화가 있는 듯 마는 듯 그렇게 변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1권에서 2권으로의 변화는 두드러져 보이지 않지만(물론 7권에서 8권으로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1권을 보고 8권을 본다면 그 변화는 현격하게 느껴질 것이다.

10년 전의 나의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이 모습이야말로 변화에 대한 내 모습을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급작스런 변화는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씩 자연스레 변해가서 그게 엄청난 변화와 같은 효과가 나길 기다릴 뿐이다. 변화를 추구하되 완만히 변하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 일기장에서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기대되기에, 그런 중압감이 알게 모르게 있기 때문에 긴장이 되는 거다.

고로 이 간장은 아주 긍정적인 긴장이라 할만하다. 생성하게 만드는 긴장(어디로 어떻게 튀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긴장이 되는)으로 난 첫 페이지에 오늘의 기분과 맘가짐을 하나하나 담아가고 있는 것이다. 첫 페이지는 아무 것도 담고 있지 않는 존재 의 빈 공간일 뿐이었는데, 여기에 나의 글들을 담음으로 존재 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즐겁지 않은가? 펜이 스치고 지나감으로 존재감에 엄청 난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담아놓느냐에 따라서 꼭 있어야할 존재’, ‘있으나 마나한 존재’,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등으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하기 때문에 떨리게 되는 것이다. 나 지금 떨고 있니?

 

 

 

아홉 번째라 붙인 이유

 

이번 일기장부터는 특별히 이름을 넣었다. 그동안의 일기장들이 특별한 이름 없이 일기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 반해 이 일기장엔 버젓이 이름을 달고 있다. 왜 기존에 유지해온 방식을 깬 것인가? 그러면서도 卷之一이라 하지 않고 아홉 번째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특별한 명칭을 정한 이유는 일기라는 형식의 한계 상 완벽하진 못했다. 바로 그걸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이 일기라는 글쓰기 장르를 넘어 독자적인 이름을 가지게 되는 곳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 도발을 감행했으면서도 아홉 번째라 이름 한 이유는 다들 잘 알리라 믿는다. 그건 정통성은 그대로 지닌 채 여러 가지 실험 등을 하겠다는 의지이니 말이다. 고로 이 일기장의 의미는 일기이면서도 일기가 아니고 잡록집이면서도 잡록집이 아닌 경계상에서 마음껏 노니는 자유로운 기록장 되시겠다.

 

 

 

여정록이라 이름을 붙인 이유

 

그렇게 이름을 갖게 된 연유를 다 들었다면 당연히 그런 이름으로 짓게 된 이유와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질 터다. 당연히 이름엔 이름의 의미가 있고 그러한 이름으로 짓게 된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이 둘을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설명하다 보면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대답이 다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하나로 정하기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 이름들을 적어보자면, ‘捨筏登岸章(사벌등안장)毫釐之差 千里之繆章(호리지차 천리지무장)등이 있다. 어떤 이름이 든 품고 있는 내용은 동일하다. 그러니 좀 더 함축적이며 깊은 내용을 담은, 그러면서도 간결한 그런 이름을 원했다. 그렇게 고심고심하다가 다음 내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명상의 출발은 정확히 보는 것이다. ‘보면 사라진다.’는 말도 있잖은가. 자의식의 뿌리를 볼 수 있으면 그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오래된 습속, 자신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벗어나지 않는 한 코뮌은 불가능하다. 욕망과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활동하되, 코뮌적 리듬을 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습속이 나로 하여금 그리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것을 돌파하는 출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이 여정에는 어떤 예외도 업다. 누구든 자신이 선 그 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돈 안토니오 할아버지의 말마따나, “투쟁은 둥근 원과 같다.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의식, 그것은 코뮌의 가장 큰 적이다. 아니, 능동적 접속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넘어서야 할 문턱이다.

-고미숙,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휴머니스트, 189

 

 

이 글을 읽고 나면 내가 어디에서 이 책의 이름을 따왔는지 알 수 있다. 여정, 왠지 아리따운 여성의 이름인 것 같지만, 그건 삶을 살아가는 길에 대한 기록이다. 일상의 일들을 담은 기록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기록인 것이다. 길은 이미 만들어진 길도 있지만 내가 처음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길을 만들어갈 것인지, 그리고 그 길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여기에 생생히 담길 것이다. 이름하야 길이란 걸어 다니다보면 만들어진다(道行之而成)’의 기록이라고나 할까. 그런 외적인 기록과 함께 나 자신 내부의 길에 대한 탐색도 빠짐없이 기록될 것이다. 그건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기 위한 준비운동이며 그런 탄탄한 기반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오래된 습속에 대한 탐구와 함께 미래로 향하는 마음에 대한 연구가 아울러 이루어져야 한다. 고로 여정에는 과정 중시의 태도와 삶을 계속 변화시켜 나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함께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첫 출발은 언제나 싱그럽고 기대도 가득하다. 그 마음가짐을 어떻게 계속 이어갈 것인지는 언제나 문제로 남지만, 이 첫 출발의 의미를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이런 출발을 축하하며 이 여정록에 어떤 자취들이 어떻게 담길지 기대해본다. 이 기록장이 추구하는 바는 능동적 접속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안에서 충분히 느끼며 그걸 여기에 빠짐없이 담아보려 한다. 이 여정록이 마무리 지어지는 날 어떤 길을 걸어왔다고 자평하게 될지 정말 기대된다. 그런 기대를 품으며 서문을 마치겠다.

 

임용고시반 19번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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