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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옛 일기장을 정리하며 -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불살라 버리는 법 본문
방학을 맞이하여 전주 집에 왔다.
오랜만에 간 것이다. 그리곤 책장을 보니 책장 한 쪽에 위용을 뽐내며 꽂혀 있는 일기장이 보인다.
예전엔 저렇게 기록을 해놓았다는 게 나에겐 분명한 자부심이었다. 『미생』에서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다’라고 속마음을 표현하듯, 그 말 그대로 ‘저 기록은 나의 자부심이다’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자부심으로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쾌쾌 묵은 잡념 덩어리이며, 삶의 잡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의미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기독교가 한 때의 나에겐 마음을 다잡고 일어설 수 있는 하나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되었듯, 저 기록물들도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무언가 맘 속 응어리가 있을 때 그걸 표출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그것 또한 지나갔다는 것을 알기에 서서히 저 기록물들을 없애려 한다. 이를 테면 ‘강을 건넌 후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불살라 버리는 법捨筏登岸’이다.
날 유지해 오던 것을 버린다는 게 좀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끝까지 연연하지도 않겠다. 이젠 뗏목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언덕을 힘껏 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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