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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방랑자

11.09.06 단재학교 면접기 본문

직장/학교 수업

11.09.06 단재학교 면접기

gunbbang 2011. 9. 6. 17:56

10시에 면접이란다. 그 전날에 가서 준비해도 되지만 당일에 가기로 했다. 오히려 그게 컨디션도, 준비도 잘 될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단 세미나라던데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 줄 몰라 전날 늦게까지 홈페이지를 뒤져가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건 불안한 마음을 무마하려는 것뿐이었다. 10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無備有患

 

모든 게 너무 미비했다. 막상 챙겨놓고 잤어야 할 것들을 챙기지 않았다. 구두를 닦아놓는 것, 하얀 러닝 준비, 기타 준비물 등 챙겨놓고 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서울행 버스 시간표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핏 보고 6시라고 생각했고 그 시간에만 맞춰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이니 아침부터 마음은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러닝은 없지, 구두는 안 닦여 있지 여유 있다고 생각하고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꼬여가고 있었다. 어머님이 태워다 주셔서 가까스로 도착했지 그러지 않았으면 아예 늦었을 것이다.

 

 

 

온갖 감정이 파도를 타다

 

근데 버스가 545분 차인 거 있지. 다음 차는 무려 630분 차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부리나케 달렸다. 가까스로 강남터미널행 버스에 탈 수 있었는데 핸드폰 배터리도 간당간당 하여 정말 최악의 날이었다. 하는 수없이 핸드폰을 꺼놓아야만 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두려움, 긴장, 짜증에 집중해야 했다. 그건 어찌 보면 꼬인 현실에 대한 불만이며 어제 잘 챙기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짜증이긴 했지만 다시 찾아온 취업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겠다는 조급함, 불안 온갖 감정이 드러난 것이리라. 어떤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가는, 그럼에도 난 낙관한 건지, 무관한 건지도 모르게 끌려 다니는 걸 보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핸드폰이 나갔기에 최단 경로를 확인할 순 없었다. 남부터미널로 내려가 가는 수밖에는. 9시가 가까이 된 시간인데도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3번이나 환승해야 했다. 좀 느긋하게 걸었지만 마음은 늦지나 않을까 불안했다.

 

 

 

세미나식 면접과 미진함

 

도착한 시각은 945분이었다. 이미 4~5명 정도 오셨더라. 어색함과 함께 침묵이 감돌았다. 곧 교장쌤이 들어오셨고 체계가 잡히지 않은 가운데 이야기가 시작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게 어떻게 평가되었는지는 모른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다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오신 분들의 나이대는 정말 다양했다. 오죽하면 나도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이 중에서 5명이 뽑힐 거란다. 4:1의 경쟁률이라 해볼만 했다. 한데 어떤 기준에 의해 뽑히는지 걱정이 되긴 했다.

점심으론 중화요리를 먹었다. 거기서도 한참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나는 듣는 입장이었다. 간혹 내가 생각하던 교육관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말하진 않았다. 참 색다른 방식의 면접이었던 셈인데 중언부언, 난장판을 방불케 했다. 그걸 마치고 나니 피곤이 몰려오더라.

 

 

 

두 가지 앎, 지식과 지혜

 

알고 있는 게 많으면 이야기할 때 자신감이 넘친다.’

당연하게 들릴 것 같은 이 마에 회의감이 들었다. 왜냐 하면 어제의 난 어버버거리고만 있을 뿐 제대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꼭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많이 알고 있다고 자임하는 꼴이지만,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건 위에서 이야기한 말의 속성일 뿐이다. 아는 게 많으면 이야기할 거리도 많고 당연히 자신감도 넘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산을 산이라 하고 물을 물이라 하는 것일 뿐이다.

앎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1+1=2’란 공식이나 민주주의 선거의 4요소는 비밀, 보통, 직접, 평등이라 하는 상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사회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하얀 거짓말은 용서되는 거짓말인가?’, ‘안중근은 의사인가, 테러리스트인가?’하는 것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며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전자는 모든 사람의 합의에 따른 것이기에 많이 지니면 지닐수록 자신감이 오르며 이야기를 이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지식이기에 허영심만 불러일으킬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알면 알수록 그것을 통해 남위에 군림하려고 하며 자기를 드러내려 한다. 하지만 후자는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는 것, 그래서 타인의 말에 더 귀 기울어야겠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언가 대답을 하면서도 두루뭉술하다고 잘 모르겠다고 느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난 점점 더 비워져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