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11.09.11 단재학교에 합격하다 본문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찾아올 줄은 꿈도 못 꾸고 있었다. 솔직히 면접을 보고나선 느긋하게 기다렸지만, 금요일이 지나고 나선 포기 상태였다. 정말 넷상에서 메일이 공중분해 되었든, 아예 보내지 않았든 좋은 증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이상 미련이 남게 마련이었다. 오늘 아침에 전을 부치고 11시가 넘어서 학교에 왔고 습관적으로 메일을 열어보니 글쎄 메일함에 편지가 한 통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나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나도 누군가에게 어필하는 존재였을 줄이야.
교사의 꿈을 접는 순간, 교사의 꿈이 이루어지다
솔직히 어안이 벙벙하다. 이게 과연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교사에 대한 꿈을 꾸며 작년까지 지냈다. 교육에 대해 고민했고 좋은 선생님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교육관도 나름 체계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늘 좌절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결국 교직의 꿈을 포기했던 것이다.
지금껏 꿈꿔왔던 꿈이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된 순간, 앞이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꿈이란 게 기실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힘이 사라졌으니 무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한겨레 교육’의 기획자를 뽑는다기에 이력서를 내봤고 출판사에도 이력서를 넣었다. 어찌되었든 출판사 편집자가 되어야겠다고 맘을 먹고나선 기본부터 새롭게 세우려 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기본부터 착실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다 성미산 학교에서 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그간 준비된(?) 역량을 결집하여 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면접 요청마저 없이 끝났다. 그간 교육에 대해 생각해 왔다고 생각했던 게 착각이었단 말인가. 그게 8월 16일의 일이다. 편집자가 아닌 10년 가까이 고민해온 교사로서 거부당한 것이니, 존재 자체가 위태위태하더라. 죽지 못해 산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러다 8월 30일 신문 광고란에서 단재학교에 대한 내용을 본 것이다. 그걸 봤을 땐 자세한 내용(과목, 바라는 교사상)이 없었기에 마음이 울렁이진 않았다. 더욱 이력서만 내도 된다고 하여 더 감흥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드러내고 싶었다. 이력서만 보더라도 ‘이 사람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이력서에 블로그의 내용을 대폭 실은 것이다. 운 좋게 바로 다음날 면접신청이 왔고 결국 이렇게 졸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나도 내가 왜 뽑혔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어떤 분들이 뽑혔는지도 모른다. 단지 교직을 포기한 순간 교직의 기회가 날 찾아왔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이래서 삶은 아리송하다는 걸까. 어쨌든 오늘은 최고의 날이니, 기쁨을 만끽하며 보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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