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방랑자
11.09.17 교육자의 꿈을 접는 순간 교육자가 되다 본문
아이러니라는 거, 그게 삶일까? 포기한 순간 기다리던 버스가 오고, 놓아버린 순간 떠난 애인에게서 연락이 온다. 아이러니야말로 삶이 내 맘 같지 않다는 정의인지도 모른다.
작년까지 교육자가 되겠다고 공부에 매진했었다. 과연 난 어떤 교사가 되길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단순히 이야기하면 아이들 편에 설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성적 따위로 아이들을 줄 세우지 않고 규정된 틀로 아이들을 획일화 시키지 않고 아이들 안에 있는 가치에 집중하며 옹호해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 교사라면 어떻게 수업하는 게 맞을까?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고 나의 진의가 전달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지금껏 그런 환경에서만 자라왔으니, 그리고 그런 수업만 받아왔으니 다른 상상은 해볼 수도 없었다. 약간 다르게 한다는 게 놀이를 응용하거나 서당식 성독문화를 도입한다거나 하는 정도였다. 꿈은 있되 현실적인 대응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어찌되었건 제도권 교육제도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걸 꿈꿨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인 셈이다. 작은 실천으로 교육계에 작은 돌파구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육자가 되진 못했다. 꿈은 있었으나 그 실력을 뒷받침 할만한 무언가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낙방을 했고 그동안 관성처럼 잡고 있던 것을 그만두리라 맘먹었다. 애초에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게 될지도 몰랐고 이게 내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몰랐다. 그 늪에 빠져 계속 허우적거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처음으로 모색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고3 때도 달리 내 길을 고민하진 않았는데 10년여가 흐른 지금 본격적으로 나다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선택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었다. 육체노동도 하리라 맘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내달려야 하니 오히려 암담해지더라. 허허벌판에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란 게 그거였다. 그러다 운 좋게 출판 편집자를 알게 되었고 그 덕에 편집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좀 더 내실있게 준비하여 올해 말까진 도전해 보겠다고 계획했으나 여차 싶으면 변산공동체로 들어가려는 마음도 있었다. 왠지 그게 내 마지막 피난처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꿈을 바꾼 그 때, 대안학교에의 도전이 이어졌다. 성미산 학교에의 도전은 의미가 있었다. 대안교육에 대해 생각해보는, 정리해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낙방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었다. 그 후 단재학교에서 채용되는 행운을 누렸다. 교육자의 꿈을 접자 교육자의 길이 열린 것이다. 지금은 작년의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수업, 내가 이끌어 간다는 것, 어떤 틀 자체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게 어떻게 교육으로 드러날지는 나도 모르지만 올해의 방황을 통해 좀 더 유연해진 게 사실이다. 유연해진, 그럼에도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길에는 무엇이 있는지 다시 고민하고 이젠 행동해야 한다. 꿈은 열망하는 것이지 집착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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